개인의 아픔은 어디까지 개인의 책임일까?

[앗싸들의책수다 #10]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by 최은녕 라온나비

[앗싸들의책수다 #10]

개인의 아픔은 어디까지 개인의 책임일까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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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읽으며 시스템의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개인의 고립과 소통 불가능성 뒤에 놓인 구조적 조건들을 따라가다 보니, 문득 몇 년 전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올랐습니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독서모임을 준비하느라 책의 내용과 데이터에 집중했는데, 이번에 다시 펼쳐 들으니 전혀 다른 질문들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고, 다시 썼습니다. 이번에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가 보다, 이 책이 나에게 어떤 질문을 남겼는가에 집중하면서요.


우리는 고통 앞에서 자주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운이 나빴다.”
“내가 조금만 더 강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이 정도는 다들 참고 넘긴다.”


이 말들은 차분해 보이지만, 사실은 질문을 멈추게 만드는 말들입니다. 고통을 개인의 몫으로 정리하는 순간, 더 이상 이유를 묻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벌어진 일은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태도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이 책은 바로 이 익숙함을 흔드는 책입니다. 질병과 고통을 개인의 관리 실패나 마음가짐의 문제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사회가 어떻게 개인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지, 차별과 불평등, 고용 불안과 혐오 같은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이어지는지를 사회역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사회역학자인 저자가 10년 넘게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쓴 책입니다. 학교폭력 피해 청소년, 성소수자, 세월호 생존 학생, 비정규직 노동자, 산재를 은폐당한 노동자들의 건강 데이터를 추적하며, 저자는 질병이 단순히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의 결과임을 입증합니다. 이 책은 통계와 사례를 통해 말하지만 결코 차갑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태도로 가득합니다.


저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된 질병은 존재할 수 없으며,

사회적 원인을 가진 아픔은 사회적 해결 없이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한 상처는 사라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사람들이 아픔을 말하지 않았을 때 오히려 더 아팠다는 연구 결과입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청소년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묻습니다.

“학교폭력을 경험한 뒤, 어떻게 대응했습니까?”

그중 일부 학생들은 이렇게 답합니다.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


겉보기에는 성숙해 보이는 대답입니다. 감정을 키우지 않고 상황을 정리한 선택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정반대를 보여줍니다. 남학생 1,911명을 분석한 결과,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라고 답한 학생들의 우울증상 발생 위험비는 8.34%로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폭력을 경험했다고 말한 학생들보다도 높은 수치였습니다.


말하지 않아서 괜찮았던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아팠던 것입니다.

이 연구는 침묵이 상처를 지우지 못한다는 사실을 숫자로 증명합니다. 말하지 못한 경험은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습니다.





차별은 마음만이 아니라 몸을 병들게 한다

성소수자 차별과 질병의 관계는 이렇게 설명됩니다. 동성애자의 HIV/AIDS 감염 문제는 개인의 성적 선택이나 생활 방식의 결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저자는 질문의 방향을 바꿉니다. 차별받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경험은 사람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김승섭 교수는 여기서 중요한 구분을 제시합니다. 한 사회에서 특정 질병의 발생을 줄이려면 그 질병의 위험요인을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개입해야하는데, 위험요인에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대장암의 위험요인인 고연령과 흡연은 모두 발병 위험을 높이지만, 우리는 이 둘을 다르게 다뤄야 합니다. 흡연율은 사회적 개입으로 낮출 수 있지만, 나이는 낮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소수자의 건강 문제에서 바꿀 수 있는 위험요인은 무엇일까요. 성적 지향 그 자체가 아니라, 차별과 낙인입니다. 혐오와 배제가 강할수록 의료 접근은 늦어지고, 예방과 치료의 기회는 줄어듭니다. 질병은 개인의 방종이 아니라, 배제된 삶의 조건 속에서 더 빠르게 확산됩니다.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개인이 아니라, 그들을 아프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입니다. 이 사례는 질병이 얼마나 사회적인 언어로 설명되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재난 이후, 남겨진 몸들

이 책의 문제의식이 가장 깊게 다가오는 지점은 세월호 참사 생존 학생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아이들은 단지 사고를 겪은 것이 아니라, 사고 이후의 시간을 살아내야 했습니다. 생존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 불안과 우울, 수면 장애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 장면에서 더 아픈 것은 증상 그 자체보다, 그 고통을 설명할 언어와 책임 주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국가는 사고를 관리했지만, 이후의 삶은 관리하지 않았습니다. 책임이 지워진 자리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스스로 감당해야 했습니다.


재난은 개인의 불운이 아닙니다. 안전 시스템과 책임 구조가 작동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사회적 사건입니다. 그러나 책임이 사라진 사회에서, 아픔은 다시 개인의 몫이 됩니다.






아픔이 개인의 문제가 되는 순간

이 책에는 산업재해가 개인의 건강 문제로 축소되는 과정도 등장합니다. 사고는 있었지만 기록되지 않았고, 아픔은 있었지만 말해지지 않았습니다. 산재를 신고하는 순간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은 자신의 몸을 증명할 기회조차 갖지 못합니다.


이렇게 은폐된 사고는 개인의 불운으로 고정되고, 사회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아픔이 개인의 문제로 봉인되는 순간입니다.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의 그늘

우리는 자주 회복탄력성을 이야기합니다. 개인이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다 보면, 그 말이 언제부터 구조적 문제를 가리는 언어가 되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개인을 단련시키는 말은 사회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명분이 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개인의 나약함을 문제 삼지 않습니다. 대신 묻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많이 아플 수밖에 없는 자리에 놓이는가. 그리고 그 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

마지막 장에서 그는 “우리는 연결될수록 건강한 존재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은 막연한 연대의 구호가 아니라, 수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확인된 사실입니다. 사회적 관계망이 탄탄한 공동체일수록 질병과 사망률이 낮았고, 고립될수록 몸은 더 빠르게 무너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연결이 고통을 없애준다는 말이 아니라, 고통이 더 이상 개인에게만 머물지 않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아픔을 함께 바라보고 기록하고 책임질 때, 비로소 개인의 몸은 혼자가 아니게 됩니다.






마무리 – 아픔이 길이 되기 위해

문제는 늘 우리 앞에 놓여 있지만, 질문은 늘 같은 방향을 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느냐보다, 무엇을 묻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같은 아픔을 두고도 누군가는 “그 사람의 문제”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말합니다. 질문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아픔의 무게는 개인에게 쏠리기도 하고 사회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아픔을 새롭게 해석하기보다, 우리가 너무 오래 당연하게 여겨온 질문을 다시 묻도록 만듭니다. 왜 견디지 못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까지 견뎌야 했는가를 묻도록 시선을 바꿉니다. 그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아픈 사람을 평가하는 자리에 서지 않고, 그 아픔이 만들어진 자리를 함께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이 남긴 가장 큰 흔적은 하나의 답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였습니다. 아픔을 개인의 이야기로 빠르게 정리하지 않는 태도, 그리고 고통 앞에서 “각자 알아서”라는 말 대신 “함께 묻자”라고 말하는 태도 말입니다. 질문이 바뀌면 책임의 위치가 바뀌고, 책임이 바뀌면 사회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바로 그 변화의 출발점에, 조용히 질문 하나를 내려놓는 책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정세랑, 『피프티 피플』

가습기 살균제 참사, 층간소음, 성소수자 차별 등 한국 사회의 사건들이 평범한 개인들의 삶에 남긴 생채기를 50명의 이야기로 엮어낸 소설입니다. 시스템의 오류가 개인을 어떻게 아프게 하는지,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버티는지를 보여줍니다.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선의로 포장된 일상이 어떻게 차별의 시스템을 유지하는지를 분석합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차별이 몸을 병들게 하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이 책은 그 차별이 어떻게 사회 속에서 반복되는지를 해부합니다.


- 주디스 버틀러, 『위태로운 삶』
어떤 삶은 애도받고, 어떤 삶은 쉽게 지워지는가를 묻습니다.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존재의 취약성이 어떻게 정치적 문제가 되는지를 사유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앗싸스런 질문들

1. 우리는 언제부터 아픔을 “각자 알아서 견뎌야 할 것”이라고 배우게 되었을까요?


2. 누군가의 침묵을 강인함으로 오해한 적은 없었을까요?


3. 만약 이 아픔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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