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책수다#11]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앗싸들의책수다#11] 김호연, 『불편한 편의점』
저는 소위 '편세권'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집 근처에 여러 개의 편의점이 있고, 그날의 기분과 필요에 따라 다른 편의점을 이용합니다. 편의점을 좋아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간섭받지 않아도 되고, 말을 섞지 않아도 되며, 필요한 것은 대부분 그 안에 있습니다.
진열은 깔끔하고, 계산은 빠르며, 1+1과 2+1이 주는 소소한 보상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24시간 불이 켜져 있다는 사실은, 불면의 밤을 견디는 사람에게 묘한 안도감을 줍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은 묘하게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편의점'이 불편하다니요. 편의점이야말로 가장 편리한 공간의 상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한 인물의 서사가 아니라, 한 공간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소설에서 자주 보이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염여사, 그의 아들 민식, 20대 취준생 알바 시현, 50대 생계형 알바 선숙, 노숙자였던 독고씨, '참참참'을 먹는 회사원 경만, 배우이자 희곡작가 인경, 그리고 사설탐정 곽씨까지.
이들은 서로 깊이 얽히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각자 삶의 유통기한 앞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이 소설이 따뜻하게 읽히는 이유는, 이들이 갑자기 서로를 이해하거나 누군가를 구원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편의점은, 현대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적당한 거리의 관계 맺기'를 복원하는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불편한 편의점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역설적입니다.
이곳은 기존의 편의점이 제공하던 완벽한 편리함을 조금씩 포기합니다. 대신 염여사는 노숙자였던 독고씨를 알바로 채용하고, 독고씨는 노인분들을 위해 배달을 고민하며, 매장 밖 파라솔 아래에 사비를 털어 열풍기를 설치합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염여사가 독고씨에게 폐기 상품이 아닌 '산해진미 도시락'을 건네는 순간입니다. 한 끼의 식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한 인간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이 장면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도움'이라기보다 '환대'에 가깝습니다.
수천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성장시켜 온 교사였던 염여사는, 은퇴 후에도 여전히 누군가를 성장시키는 일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이번엔 교실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학생이 아니라 삶에 지친 어른들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이 편의점은 더 이상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동네 구멍가게에 가까워집니다. 불편해진 대신, 관계의 온도가 생깁니다.
염여사가 독고씨에게 건넨 말은 짧지만 강렬합니다.
독고씨, 먼저 스스로를 도우세요.
'힘내세요', '정신 차리세요'가 아닙니다.
타인의 배려나 도움만으로는 사람이 변화할 수 없다는 것, 스스로 자신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이 한 문장이 말해줍니다.
그리고 독고씨는 실제로 변화합니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 체계적이고 세심하게 일을 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 노숙자였던 그가 건강한 독고씨로 되살아가는 과정은, 거창한 구원이 아니라 일상의 회복이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독고씨를 구원한 음식은 다름 아닌 '옥수수수염차'입니다. 브이라인만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었네요. 술도 잊게 해 줍니다.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에피소드는 선숙과 그의 아들 이야기였습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아들과, "열심히 살아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어머니.
그러나 그 열심은 철저히 혼자의 몫이었습니다.
독고씨의 조언으로 등장하는 편의점 음식은 '삼각김밥'입니다.
저는 이 삼각형이 가족의 구조를 상징한다고 느꼈습니다.
가족은 누군가 혼자 앞으로 나아가서 유지되는 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꼭짓점이 제자리에 있을 때 비로소 균형을 이루는 구조가 아닐까요.
가까운 사람일수록 우리는 소통을 생략합니다. '나와 같을 것'이라는 착각 때문입니다.
이 소설은 가족조차도 서로 다른 존재임을 인정하는 데서 관계 회복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시현의 에피소드는 청년 세대의 현실을 비교적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던 시현은, 이곳에서 일하며 한 가지를 배웁니다.
"사장이 직원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직원도 손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 문장은 단순한 아르바이트 경험담을 넘어, 노동과 존엄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소비자와 직원의 관계만이 아니라, 고용하는 사람의 태도가 결국 공간의 분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꽤 현실적으로 다가옵니다.
또한 시현이 편의점을 '자신만의 온실'로 느끼는 장면도 인상 깊습니다. 공무원이 되어도 결국 더 큰 편의점의 직원이 아닐까 하는 질문은,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청년들의 마음을 정확히 건드립니다.
하지만 시현은 이곳에서 단순히 시험 준비만 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보람 있다는 것을 체험했고, 자신에게 그럴 능력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독고씨의 한마디 조언으로 시작한 유튜브는, 시현이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계기가 됩니다.
좀 더 느리게, 천천히 다가가는 것. 그것이 누군가를 돕는 방법이라는 것을 배운 시현은, 카메라 앞에서도 독고씨를 떠올리며 차분히, 천천히 말합니다.
회사원 경만 씨가 힘겨운 하루를 위로하는 것은 편의점 혼술입니다.
바로 '참참참' – 참이슬, 참치김밥, 참깨라면.
이 조합은 단순한 편의점 먹방이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뎌내는 사람들의 의식처럼 느껴집니다.
아무도 없는 편의점 테이블에서 혼자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은 쓸쓸해 보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것이 오늘을 살아낸 자신에게 주는 작은 보상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겨울이 되면 참참참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흥미롭게 느껴진 대목은 '친절'에 대한 정의입니다.
작가는 독고씨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합니다.
"진심 같은 거 없이 그냥 친절한 척만 해도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이 말은 도덕적 이상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늘 진심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 문장은 오히려 숨 쉴 틈을 줍니다.
친절은 위대한 결심이 아니라, 반복되는 태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밥 딜런의 외할머니가 했다는 말 역시 오래 남습니다.
“네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으니 친절해야 한다.”
이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처럼 느껴집니다.
편의점은 유통기한을 관리하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묻습니다.
과연 사람에게도 유통기한이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노숙자였던 독고씨, 실패한 관계, 무너진 삶.
이들은 사회적으로 '폐기 대상'에 가깝지만, 이 편의점 안에서는 다시 유통됩니다.
조금 느리게, 조금 불편하게.
그래서 이 편의점은 불편합니다.
편리함 대신 관계를 요구하고, 무관심 대신 말을 건넵니다.
우리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편의점이 불편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너무 편리해진 나머지 사람을 잃어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문제를 해결하러 나섭니다.
어쩌면 그 문제의 해답은, 가장 가까운 편의점 안에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 당신에게 ‘편의점’은 어떤 공간인가요?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편의점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있었나요?
2. ‘진심이 아니어도 되는 친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형식적인 친절이 관계를 이어준 경험은 없으신가요?
3. 이 소설 속 인물 중, 지금의 나와 가장 닮아 있다고 느껴진 사람은 누구인가요?
그 인물의 어떤 태도나 선택이 마음에 남았나요?
4. 요즘 나의 삶은 너무 ‘편리해지기만’ 한 건 아닐까요?
조금 불편해지더라도 지키고 싶은 관계나 태도는 무엇인가요?
5. 아직 ‘유통기한이 남아 있는 관계’가 있다면,
그 관계를 다시 꺼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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