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싸들의책수다#12]룰루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앗싸들의책수다#12]룰루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는 분류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책장은 장르별로 정리되어 있고, 메모는 카테고리별로 나뉘어 있으며, 하루 일과는 시간표처럼 구획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정리되어 있을 때, 저는 안심합니다.
혼돈은 불안하니까요.
그래서였을까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은 묘하게 불안하게 다가왔습니다.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니요.
분명 존재하잖아요. 우리는 그것을 '물고기'라고 부르고, 분류하고, 이름 붙여왔는데.
이 책은 한 과학자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스탠퍼드 대학교 초대 총장이자, 평생 2만여 종의 물고기를 발견하고 분류한 어류학자인 데이비드 스타 조던입니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그가 수십 년간 모은 물고기 표본이 모두 바닥에 쏟아져 깨졌을 때, 그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표본 하나하나에 이름표를 꿰어 분류를 시작했습니다.
지진이 와도, 세계가 무너져도,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질서.
저자 룰루 밀러는 삶이 무너졌던 시기에 이 이야기에 깊이 매혹됩니다. 혼돈 앞에서도 질서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 무너진 세계를 다시 쌓아 올리는 사람.
얼마나 감동적인 이야기인가요. 그러나 이 책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룰루 밀러는 조던을 추적할수록 점점 불편한 진실들과 마주하게 됩니다.
조던은 생명을 분류한 과학자였지만, 동시에 인간을 서열화한 우생학의 선구자이기도 했습니다. "열등한 인간"의 번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강제 불임 정책을 옹호했습니다.
물고기를 분류하던 그 정교한 눈은, 사람 역시 분류했습니다.
우수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 살아야 할 사람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저자는 묻습니다.
이것은 우연일까요? 평생 생명을 분류하고 서열화하는 일에 몰두한 사람이, 인간 역시 그렇게 분류하게 된 것은? 분류학과 우생학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스탠퍼드 대학 설립자의 부인 제인 스탠퍼드의 의문사입니다.
1905년, 제인 스탠퍼드는 하와이에서 갑자기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저자는 여러 정황을 따라가며 조던이 그녀를 독살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제인 스탠퍼드는 조던의 우생학 연구에 공개적으로 반대했던 인물이었습니다. 대학 설립자의 부인으로서 조던의 학문적 방향에 제동을 걸고, 방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학문적 진리를 추구한다는 명분이, 그 진리를 반대하는 사람을 제거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이 대목에서 저는 소름이 돋았습니다.
세계를 분류하고 정리하려는 욕망이, 결국 '맞지 않는 것'을 제거하려는 욕망으로 얼마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고, '적합'과 '부적합'을 구분하며, '우리'와 '그들'을 분류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요?
이 믿음에 균열을 내는 인물은 뜻밖에도 저자의 아버지입니다.
어린 시절, 삶의 의미를 묻는 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합니다.
의미는 없어. 신도 없어. 너도 중요하지 않아.
화학자였던 아버지는 열역학 제2법칙, 즉 엔트로피 법칙을 삶의 진실처럼 딸에게 전합니다. 우주는 질서에서 무질서로 나아가며, 혼돈은 우리의 꿈이나 도덕, 고결한 행동에 관심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 말은 어린 룰루 밀러에게 상처가 됩니다.
"넌 중요하지 않아"라는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저자는 아버지의 이 말이 가진 의미를 다시 이해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존재의 무가치함이 아니라, 우주적 관점에서의 겸허함이었습니다.
칼 세이건이 말했듯, 우리는 "창백한 푸른 점" 위에 잠시 머무는 먼지 같은 존재입니다. 광활한 우주 앞에서 인간의 확신이나 판단은 얼마나 작은 것인가요.
과학자는 아마도 이런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내 것만이 옳다"가 아니라, "가설은 언제든 입증되거나 반증될 수 있다"는 자세. 자신의 이론조차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래서 아버지는 단 하나의 도덕률을 세우고 지키며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들도 중요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
내가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게 됩니다. 세계가 내 뜻대로 정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정리되지 않는 존재들을 배제하지 않게 됩니다.
조던과 저자의 아버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조던은 질서를 사랑했고, 그 질서 안에 들어오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아버지는 혼돈을 받아들였고, 그 자리에서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를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책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놀라운 과학적 사실을 알려줍니다.
물고기는 분류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어류(fish)'는 계통학적으로 유효한 분류군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물속에 살고 지느러미가 있다는 피상적인 공통점으로 묶인 것일 뿐입니다. 어떤 물고기는 인간보다 다른 물고기와 더 멀리 떨어진 유전적 관계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조던이 평생 분류했던 대상은, 결국 과학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범주였습니다.
이 사실은 상징적입니다.
우리가 세계에 부여한 질서는, 어쩌면 세계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편의를 위한 틀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제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끊임없이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누고, 시간을 '생산적인 시간'과 '낭비한 시간'으로 구분하고, 감정을 '합리적'과 '비합리적'으로 나누며 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을까요?
분류 체계에 맞지 않는 사람들. 범주 밖의 경험들.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
'정상'이라는 범주가 누군가를 '비정상'으로 만들고, '생산성'이라는 기준이 누군가의 삶을 '쓸모없음'으로 격하하고, '효율'이라는 잣대가 느림을 죄악으로 만들 때. 우리는 조던처럼, 세계를 이해하는 대신 세계를 폭력적으로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분류를 포기하고 혼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까요?
저자는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제안합니다.
우리가 만든 질서가 '진리'가 아니라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말입니다. 우리의 분류 체계는 언제든 무너질 수 있고, 그것이 무너져도 괜찮다는 것을 받아들이라고요.
조던은 지진 후 표본들을 다시 분류했지만, 룰루 밀러는 다른 선택을 합니다. 그녀는 혼돈을 다시 질서로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혼돈 그 자체를 받아들입니다. 세계가 무너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다시 쌓아 올려야 할까요, 아니면 무너진 채로 두어야 할까요?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질서를 만들되, 그 질서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
분류하되, 분류 밖의 존재들을 지워버리지 않는 것.
이름을 붙이되,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이 책을 덮으며, 저는 제 책장을 다시 봅니다.
여전히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지만, 이제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이 분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그저 제가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입니다. 언제든 흐트러질 수 있고, 무너질 수 있고, 바뀔 수 있습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물속에서 헤엄치는 생명들은 분명 존재합니다.
조던은 평생 물고기를 분류했지만, 결국 그가 분류한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그 자신의 세계관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붙인 이름과 범주가 사라져도, 그 존재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정교한 분류 체계가 아니라, 분류하지 않고도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 당신은 어떤 것들을 분류하고 정리하며 살아가나요?
사람, 시간, 경험, 감정... 우리는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고 있나요? 그 분류는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아니면 무언가를 놓치게 만드나요?
2. 당신에게 '영웅'이었던 사람이 무너진 경험이 있나요?
누군가를 이상화했다가, 그의 어두운 면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그 사람을 다시 이해할 수 있을까요?
3. 질서가 무너졌을 때, 당신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조던처럼 다시 질서를 세우려 하나요, 아니면 룰루 밀러의 아버지처럼 혼돈을 받아들이려 하나요? 혼돈 앞에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요?
4. 당신에게 ‘옳다’고 믿었던 기준이 흔들린 경험이 있나요? 그 기준은 언제, 어떤 경험을 통해 만들어졌나요?
5. 당신이 내려놓고 싶은 ‘이름’이나 ‘라벨’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것을 내려놓는다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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