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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녕 Nov 01. 2021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간
그림책 함께 읽기

책 읽는 소년원 이야기 - #1 첫 만남


그녀들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92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드디어 수업이 가능하다는 연락이 왔다. 과연 그녀들도 우리와의 만남을 기다렸을까? 궁금해졌다. 사전모임에서 작성했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읽어보고 얼굴도 떠올려보았다. 어떤 모습으로 우린 만나게 될까? 만남 전날 종일 비가 내렸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갇혀 있던 나에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업 시간인데 비라니.. 소풍 전날 아이처럼 그렇게 내일 날씨가 맑기를 기도했다.



  오전 내내 비가 내려서 너무 걱정했는데, 수업 전에 해님이 얼굴을 보여준 덕분일까?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오랜만에 만나는 아이들과의 서먹함도 뽀송뽀송 말려버렸다. 설레는 마음으로 소년원에 도착했다. 출입을 하기 위한 과정이 복잡하다. 코로나 때문에 체온 재기와 이름을 적고 신분증을 제시하고 출입증과 바꾸었다. 교무과에 들려 간단한 서류에 사인을 하고, 담당 선생님께 소년원에서의 주의사항과 당부의 말씀을 들었다. 아이들이 있는 관사로 들어와서도 입구에서 핸드폰을 반납하고, 방명록에 나의 자취를 남기고, 드디어 계단을 올라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향했다. 

  그녀들을 만나기 딱 십 분 전. 살짝 긴장된 나는 교실에서 컴퓨터를 켜고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교실 문이 활짝 열리며 밝게 상기된 친구들의 우렁찬(?) 목소리 떼가 말을 쏟아놓는다. ‘그동안 심심했다고, 오랜만이라고, 너무 반갑다고, 자기 혹시 달라진 거 없냐, 오늘은 뭐할 거냐고, 간식은 뭐냐, 독서수업을 기다렸다”라고 물어보는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로 인사를 나누고 시끌벅적하게 자리 정돈을 하고 수업 시작을 알렸다. 
   오늘의 책 소개를 하고 가방에서 빨간색 커다란 책을 꺼내자. 처음 아이들은 호기심을 보였지만 책을 받은 후 책을 펼쳐보더니 그림책이라는 것을 알고 표정관리가 힘든 친구도 있었다. 각자 혼자 읽고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림책을 읽는 아이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작은 글씨를 읽으려고 노력하는 친구, 작은 글씨를 읽다가 짜증을 내는 친구, 그냥 그림만 스르륵 보면서 다 읽었다고 말하는 친구. 작은 글씨는 읽지 않고 큰 글씨 위주로 읽으면서 글씨가 별로 없네요. 무슨 이야기냐고,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연결이 안 된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쉽다, 성의 없이 그림을 그렸다. 글씨를 그림으로 그리다니 할 일 없다. 대체로 그림책을 혼자 읽은 아이들의 첫 소감과 반응은 뜨악했다. 심지어 뒤표지에 쓰여있는 4세 이상이란 말에 꽂혀서 우리한테 왜 이렇게 쉬운 그림책을 주는 거냐고 질문했다. 그림책은 좀 자기 수준과 맞지 않은 것 같으니 다음에는 소설책이나 수필집으로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저마다 감상을 발표한 친구들에게 다시 한번 차근차근 읽어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거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장면과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자며 다시 한번 그림책을 읽었다. 이제 혼자가 아닌 함께 읽으면서 어떻게 바뀌는지 살펴보자고 했다. 아이들이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각 장마다 궁금한 것들에 대한 질문을 만들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장면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냥 자신이 느낀 점만 보고, 나와 다른 장면을 선택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각자 재미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서로가 만든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답이나 생각을 나누었다. 물론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들도 많이 나왔지만 친구들이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그림책을 보니까 다시 보인다, 처음 느낌은 재미없다고 했는데, 질문도 만들고 함께 읽으니 신기하고 무지 재미있다고. 




   그녀들의 독서습관이나 읽은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마트 폰도 없고, 텔레비전도 마음대로 볼 수 없는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그녀들에게 책은 위안이 되기도 하고, 친구가 되기도 하고, 그곳의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좋은 도구이기도 했다. 모인 친구들 중에는 밖에서도 책을 좋아하던 친구도 있지만, 이곳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책을 읽게 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하루에 책을 매일 읽는 친구들이 많았고, 이틀에 4시간 정도 읽는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녀들이 즐겨 읽는 책은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현재 가족이나 친구도 못 만나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감정을 다독여주는 책이었다. 물론 원래 역사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역사 관련 책을 너무 좋아하는 친구는 여기서도 여전히 역사책을 주로 본다고 했다. 연애를 시작한 친구는 설레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말이 담긴 책을, 전과자의 삶을 보여주는 책을 통해서 자신의 잘못 살아온 삶을 되돌아본다는 친구도 있었다. 또 여러 가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는 솔직한 친구도 있었다.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책을 읽고 독후감 숙제를 하면 상점을 받는다든지, 국어교과시간에 시를 외우거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 자신의 소년원 생활이 조금 편하게 지낼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읽는 거라는 친구도 있었다.

상점을 받거나 벌점을 없애주는 강화물로서의 책 읽기, 줄거리 요약과 재미있었다는 한 줄의 감상평 숙제로서의 책 읽기가 아니라, 그림책 한 장면에 머무르며 자신의 느낌과 생각과 경험을 함께 나누는 책 읽기가 되길 희망한다. 다음 차시 도서(시집)를 안내할 때 시집은 싫다며 그냥 소설책이나 에세이같이 가벼운 책을 함께 읽으면 안 되느냐는 의견에 도서 선정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수기나 에세이, 연애소설류의 편독 현상이 있는 친구들에게 스스로는 절대로 고르지 않을 것 같은 책 혹은 혼자 읽기 어려운 책(고전 포함)을 함께 읽으면서 행복한 경험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물론 고전을 알아야만 세상에 나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니지만)과 청소년 소설의 경우의 자신들의 문제를 다룬 책이기에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고, 공감과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참여자들이 여기서 나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나침판이나 지침이 될 수 있는 책,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경제서나 인권, 노동법 관련 책도 읽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처음 이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고민했던, 그러나 아직 답을 찾지 못한 그 문제가 스멀스멀 나를 괴롭힌다. 



*책 읽는 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책 읽는 소년원 강사로 안양 정심 중고등학교 학생들과 책 읽기 수업을 한 소감을 쓴 글..(책 읽는 문화재단 온라인에 올렸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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