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을 살아주고 있는 또 다른 나
나는 태어나서 10개월쯤부터 한 발자국씩 발을 떼기 시작한 우량아였다. 어느 날 소아마비라는 질병으로 고열과 함께 쓰러진 후 다시 걷기까지 2년이 넘게 걸렸다. 3살쯤 되어 다리를 절며 걷자 그때부터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투쟁을 시작한 전사였다. 이름이 나빠서 장애가 되었다는 한 무속인의 말에 엄마는 당장 유명한 작명가를 찾아 새로운 이름을 지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한번 호적에 올린 이름은 바꿀 수가 없었다. 가까이 지내던 안양사 주지스님이 호적이 없던 꼬마스님을 양녀 삼아 나의 호적을 주는 방법을 언질 했다. 엄마는 꼬마스님을 귀여워하며 나의 호적을 그를 위해 놔두고 나를 1년 아우로 하여 새로운 이름으로 호적신고를 했다.
나는 이렇게 내 호적 바로 위에 적힌 생소한 이름의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자랐다. 그 생소한 "나"를 실존으로 만난 짧은 기억도 있다. 한 5-6세 때 나는 병치료를 위해 가끔 절에 머물곤 했다. 조금만 방안에 혼자 있는 것이 심심해 많이 울었다. 그때마다 또 다른 "나"인 꼬마스님이 나를 절 뒤편에 있는 작은 폭포수 옆 언덕으로 데리고 갔었다. 폭포수 위에 올라가면 소나무 숲이 무성했고 그중 한 커다란 나무에 그네를 걸어 나를 밀어주는 위로로 명랑한 까르르 웃음소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기억의 한 조각이 끝이 난다.
늘 위로를 받던 폭포와 소나무 숲의 그네, 그리고 꼬마스님의 따뜻한 손길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고, 또 미신이라며 믿지 않으면서도 나의 "나쁜 운명"을 짊어지고 대신 살아가는 꼬마스님을 찾아 나서지는 못했다. 나쁜 운명을 전가했다는 죄책감도 있었고 성인이 되어 서로 모르는 사람으로 만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올해는 용기를 낼 필요도 없이 무작정 어렸을 적 만났던 꼬마스님이 살던 절을 찾아갔다. 너무 용기를 늦게 낸 바람에 그때의 사람이 아무도 없을지라도 그냥 꼬마스님의 흔적을 느끼고 싶었다.
안양사 근처를 가니 거짓말처럼 소나무 숲이 있었고 절이 있었다. 나는 걸어 올라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가장 아래 위치한 안내소를 찾았다. 다가서자 사무실 안쪽 저 멀리서 “무슨 일이셔?”하는 소리가 들린다.
"여쭙고 싶은 것이 있어서요." 노스님은 그냥 멀리서 크게 질문을 하라고 종용하신다.
나는 멀리서 지나가듯 쉽게 할 수 없는 질문이라… ”신발을 벗을 수 없어서요 “라며 생뚱맞은 말을 했다. 노스님도 몸이 불편하신지 힘들게 일어서셔서 단장을 짚고 난감한 표정으로 문밖에서 빼꼼히 들여다보고 서있는 내 곁으로 한 발짝씩 걸어오셨다.
뒤쪽에서 또 다른 스님이 나오시며 몸이 불편하신 노스님의 걸음걸이를 아끼고자 나를 쳐다보고 “무엇을 드릴까요?”라며 늘 해왔던 능숙함이 묻어나는 사무적 말투로 묻는다. 계단아래 불공하러 오는 사람들에게 초와 향을 판매한다는 입간판을 읽은 것과 매치가 되었다.
”질문이 있어서요 “하며 간곡한 표정으로 다시 시작하려는 순간 노스님이 내 옆에 도착해 의자에 앉으셨다. 신발을 벗을 수 없었던 나는 엉거주춤하게 문지방에 걸터앉아 어디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잠시 망설이다가 실망과 직시할 용기를 내어 차분히 말했다. "60여 년 전에... 나와 놀아주며 위로해 주던 꼬마스님을 찾아요."
노스님은 "쟤네"하며 다른 스님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손가락 끝에 있던 스님의 얼굴에 거짓말 같은 상황에 순간 당황하시는 듯 보였고 "어릴 때 다리 못쓰던 아이를 도와준 적이 있어"라고 하시곤 바로 "커피를 가져올게요"하고 뒤편으로 사라지셨다. 잠시 후 커피를 들고 나오셔서 "동기"를 아느냐고 물으신다. 당장에 나는 그 스님이 나를 대신해 살아주신 꼬마스님, 또 다른 "나"임을 알았다. 동기는 큰오빠 이름이고 우리 엄마는 바로 "동기엄마"로 불렸었다. 그 꼬마스님은 또 "큰 철공소를 하던 집"이라고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냥 하루종일 꼬마스님이 살아온 이야기를 한마디도 빠짐없이 듣고 싶었다. 꼬마스님은 너무도 반갑게 맞아주었고 안양사 식구들에게 "내 친동생을 65년 만에 찾았어"라고 신나게 말씀하셨다. 우리 모두는 "세상에 이런 일이..."를 계속 외쳤다.
"좀 더 일찍 만날 것을..."이란 생각은 전혀 없다. 우리 둘 다 힘들고 거친 세상을 살아냈고 이제는 세상의 이치에 순종하게 되어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된 지금이 가장 적절한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꼬마스님이 안양사에 평생을 살고 계셔 준 신 것이 감사했고 꼬마스님은 내가 잊지 않고 찾아준 것을 감사했다. 꼬마스님과의 두 번째 만남은 꼬마스님에게는 "부처님의 은공"이고 나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여겨진다. 앞으로 함께 써 나갈 이야기들이 궁금해진다.
이제 사랑할 사람이 한명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