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 (?)
생활에 자율이 주어지자 게으름도 편안하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하지만 머리 뒤쪽 어딘가에서 "이래도 되나?" 하는 어렴풋한 의구심이 고개를 든다. 그때 바로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의식이 불끈하면 스트레스는 슬그머니 뒷걸음을 친다. 스트레스가 없는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꿈을 꾸는 것 같은 내 삶의 제2장은 시작부터 아주 만족하다. 사람들은 그 기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며 남의 행복한 기분에 구멍을 내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걸. 나는 설명 같은 변명을 하지 않고 웃는다. 그들은 내가 살아온 길을 모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낸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가. 한때 나도 그렇게 강한 나를 스스로 싫어했던 적도 있기 때문에 그냥 웃는 것이 전부다.
생활 속에서 집요할 정도로 강한 나의 모습이 스스로 보기 싫어 수없이 많은 나날을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나약하며 보호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여성상을 장착해 보려고 노력에 노력을 하다가 결국 포기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살아오며 경험한 실패를 손꼽아 본다면 그 포기와 실패는 손가락 하나둘에 속할 것이다. 남처럼 약한 모습을 갖고자 했던 노력도 수없이 했고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자 나는 그냥 나이기를 허락했고 그 대신 나의 실패를 입에 올리지 않았었다. 어려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던 나를 스스로 연민하고 자위하려고 읊조렸던 로랑생(Marie Laurencin)의 "잊힌 여자"라는 글이 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여자가 "잊혀진 여자"라고 했다. 나는 그의 글에 기초해 장애인 복지의 실천에 대한 고찰을 브런치에 올린 적도 있다 (https://brunch.co.kr/@kyoju/30). 그런데 퇴직을 한 노인이 된 내 모습을 보면서 로랑생의 글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글을 뒤집어 본 것이다. 그리고 노인으로 대상을 바꾸어 봤다. 너무 다르다.
잊혀진 여자 / 로랑생
따분한 여자보다 불쌍한 여자는
슬픈 여자입니다.
슬픈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불행한 여자입니다.
불행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병든 여자입니다.
병든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버림받은 여자입니다.
버림받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고독한 여자입니다.
고독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쫓겨난 여자입니다.
쫓겨난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죽은 여자입니다.
죽은 여자보다 더 불쌍한 여자는
잊혀진 여자입니다.
뒤집힌 버전 / 생랑로 (?) (도발적 재발상 by 교주)
잊혀진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죽은 노인입니다.
죽은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쫓겨난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고독한 노인입니다.
고독한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버림받은 노인입니다.
버림받은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병든 노인입니다.
병든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불행한 노인입니다.
불행한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슬픈 노인입니다.
슬픈 노인보다 더 불쌍한 노인은
따분한 노인입니다.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잊혔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당신은 불쌍하지 않아요. 그래도 밤에 누울 곳이 있고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찾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죽은 사람보다도 훨씬 행복한 사람입니다. 고독하십니까? 그래도 현재 버림받은 아픔 속에 살고 있지 않다면 고독을 느낄 수 있는 당신은 스스로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버림받아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도 아직 병들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면 감사할 일입니다. 병들지 않고 불행 속에서라도 좌절하지 않고 불행을 버텨내며 사는 당신은 훌륭한 겁니다. 슬프십니까? 아직 불쌍하다고 보기에는 당신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따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전 상황들은 내가 나의 혼자의 힘으로만 상황을 바꿀 수 없는 것들이지만 "따분함"은 나 혼자의 변화만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기에 우리는 아직도 행복함을 영위할 수 있는 아주 쉽고 좋은 기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퇴직한 많은 노인분들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고 불행한 이유가 할 일이 없어 "따분하기"때문이다. 나는 따분하지 않다. 그러니 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아님을 깨달았다. 살아가는 인간에게 불행함의 최고봉은 "따분함"인 것이다. 로랑생의 글을 뒤집어 생각하니 나는 더 이상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막상 현직을 떠나고 보니 "잊혀진 사람"이 아니었단 걸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불행한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노년이 되어보니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히 로랑생의 원문에 하나를 더 첨부해 나누고 싶다. 그러면 따분함을 가뿐히 이겨낼 수 있다. 바로~
"따분한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은
감사함이 없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