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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May 26. 2021

잊혀진 사람들

장애인 복지의 주인공

고등학교 때에 마치 내 이야기를 읊조리듯 아파하며 외우던 “잊혀진 여자”라는 시가 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마리 로당셍 (Marie Laurencin 1883-1956)이라는 프랑스 여자로 원래는 화가였으나 1900년 초반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미술활동을 하며 운명적으로 여성해방운동가의 역할을 하게 되며 쓴 글이다. 여자들 향해 쓴 그의 글이지만 거기에 “우리”를 넣어 읽는다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꼭 맞아떨어지는 글이다. 소개하면 이렇다.    


권태로운 여인보다도 

    더 불쌍한 여인은 

        슬픔에 싸인 여인입니다.

슬픔에 싸인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입니다. 

불행을 겪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병을 앓고 있는 여인입니다. 

병을 앓고 있는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버림받은 여인입니다.

버림받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쫓겨난 여인입니다. 

쫓겨난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죽은 여인입니다. 

죽은 여인보다 

    더 불쌍한 여인은 

        잊혀진 여인입니다.


실연을 당하거나 누구에게 잊힐 정도로 무시를 당한 경험도 없지만 감수성이 풍부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마치 내 모습인양 스스로 아파하며 암송하던 때가 생각난다. 요즘 사회에서 쉽게 이해가 되는 말이 악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플이라는 말이 같은 맥락이라 남보다 그 느낌까지 맘으로 다가오는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장애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 시를 읽어보면 새삼 가슴이 저려온다. 


유럽을 다니면서도 지울 수 없었던 생각이 복지가 잘 이루어진 유럽의 선진 국가라지만 복지시설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은 일반인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진 사람들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지워진 그들은 바로 슬퍼하거나, 당장 불행을 겪고 있거나, 병을 앓고 있는 어떤 사람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버림받고 쫓겨난 사람이라는데 그래도 그들은 죽은 사람보다는 덜 불쌍한 입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보면 이 세상을 떠난 죽은 사람이 늘 불쌍한 법이다. 어디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말한 것이 이런 맥락이 아닐까? 그런데 온 세상 사람이 불쌍하다고 느끼는 그 죽은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있으니 잊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유럽에 강의를 다니며 복지가 잘 되어있는 유럽 국가에서 사는 장애인들은 잘 먹고 잘 살고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미국에서도 같은 말을 듣는다. 미국은 장애인의 천국이라는데 과연 그럴까? 사회복지프로그램이 잘 이루어져 있는 나라의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는 장애인이 사회가 보장하는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잘살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개인들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들을 하고 있다. 이렇게 비장애인들의 마음속에서 잊혀 버린 장애인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이고 그런 구조로 되어있는 복지는 인간성을 빼앗아버린 황폐한 프로그램이다. 먹고사는 기본생활이 마련된 사회라 하더라도 따뜻하게 주고받는 대화와 인간관계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우리 주변의 장애인을 기억하고 환한 인사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사회가 진정한 복지사회의 구현이 아닐까? 그리고 복지사회는 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복지... 바로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마음을 전하는 사회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Image by Piyapong Saydaung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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