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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May 19. 2021

리더십 계발

자기 결정력과 자기주장

나는 유학 중에도 공부에 열중하는 유학생들과는 달리 늘 공부 외의 다른 일로 잠시도 가만히 있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중 하나가 여기저기 다니며 자원봉사를 하는 일이었는데 특별한 능력이나 기술을 요하는 일이 아니었다. 예를 들면 휠체어 농구단이 연습하는데 가서 공을 집어다 주는 일이라든가 스키장에 가서 장애인의 스키를 들어다 주는 일같이 허드레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중에 신경을 써야 했던 일은 지적장애인의 자기주장 모임에 가서 회의록을 기록해주는 일이었다. 영어도 제대로 못 알아듣던 시절에 정확한 표현이 어려운 사람들의 회의록 하기 작성하기 위해서는 귀를 쫑긋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어야 했다. 


회의는 열댓 명의 지적장애인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자신들에게 있었던 일과 같은 가벼운 대화로 시작을 한다. 회장의 개회선언으로 회의가 시작되면 직장에서 일어났던 자랑거리나 개선책에 대한 진지한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회의록을 기록하던 나는 유독 한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끙끙댔다. 무조건 “쿡”이라는  단어 한마디만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일단 Cook으로 적어 놓고 상황을 자세히 들어보았다. 지적장애를 가진 분들의 모임이라 서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회의의 진지함보다도 더욱 놀라운 것은 서로의 이해를 위해 기다려주는 인내심이었다. 그 사람에게 회장이 여러 가지 질문을 했고 무려 10여분이 지나서야 나를 포함한 회원들이 Cook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발표자는 20대 후반 정도의 남자로 맥도널드에서 청소를 하고 식탁을 치우는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지적장애가 있고 그 정도의 언어장애가 있다면 맥도널드에서 일을 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주장 모임에 꾸준히 나오며 자신의 책임과 의무도 돌아볼 줄 알게 되었고 권리를 찾는 것도 배우게 된 것이다. 그날 그 사람의 발표 내용은 자신도 맥도널드에서 보다 중요하고 어려운 직책인 요리를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저런 회의 내용을 마무리하고 두어 시간이 지나 그날의 모임은 조촐한 간식시간과 수다를 떠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별 신경 쓰지 않고 들나 들던 맥도널드였는데 그 이후 난 늘 그 주방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사실 가만히 보니 프렌치 프라이드도 냉동 보관된 봉지를 찢어 내용물 전체를 그물망에 붓고 기름통에 넣은 후 버튼만 누르면 된다. 잠시 후 자동으로 요리가 끝났음을 알리는 삑 하는 소리가 나면 그물망을 꺼내어 기름이 빠지게 걸어놓는 것이다. 기름이 어느 정도 빠지면 옆에 있는 넓은 곳에 쏟아내고 소금만 적당히 뿌려 세 가지 다른 사이즈가 있는 봉투에 담으면 되는 것이다. 햄버거도 햄버거에 들어갈 재료가 놓여있는 순서대로 조합을 해 전자레인지에 넣고 버튼을 누른 후 삑 소리가 나면 꺼내어 종이로 싸면 된다. 지적장애인이 순서만 정확히 알려주고 차근차근 천천히 해보도록 훈련을 하면 그리 어려울 내용이 전혀 아닌 것이다. 바로 그 수년 전에 자신이 “쿡”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그 사람의 말이 너무도 지당한 권리 주장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적장애인의 자기주장 모임인 “사람 먼저 (People First)”는 전국적 단체이고 peoplefirstca.org 웹사이트를 들어가면 캘리포니아 지역모임들의 소식과 활동들을 알아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리저널 센터를 관장하고 있는 주정부 기관의 발달장애 서비스국 (Department of Developmental Services)과는 다른 단체로 리저널 센터의 행정과 업무 상태를 감시 감독하는 역할을 하는 에어리아 보드 (Area Board) 10에서 자기주장 단체의 모임을 지원하고 장려하며 회의장소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미국에 지적장애인에게 평생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공기관과 사립기관들은 그들의 이사진에 반드시 지적장애 당사자를 포함하도록 되어있고 기관의 운영을 감사할 때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에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지도자 역량을 가진 지적장애인 모시기와 리더십 계발에 힘쓰는 이유이다. 대학 수업에도 지적장애인을 초청강사로 모시고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자신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지만 지적 장애인들이 스스로를, 그리고 서로를 돕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내용의 책을 쓰는 것이 평생의 목표라고 한 이야기가 특수교육을 하는 내 마음속에 장애인 지도자 계발에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늘 메아리치고 있다.


이 글은 2009년 8월 3일 자 미주 한국일보에 게재되었던 내용을 일부 발췌하고 새로운 정보와 내용으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사진출처: bantersnap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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