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디는 어디에?
어렸을 때 언니를 따라 처음으로 탁구장을 가본 적이 있었다. 언니가 구슬 방울 같은 땀을 흘리며 탁구를 치는 동안 나는 여기저기 탁구에 몰입되어 온몸을 사용해 치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았다. 공이 도착해 내 쪽의 탁구대를 맞고 뛰어오르기도 전에 미리 공이 올 방향으로 몸을 옮기고 팔을 뒤로 보내어 튀어 오를 탁구공의 정점을 기다리고 있다가 체중을 실어 스매싱을 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언니가 연습을 끝내고 나에게 라켓을 주며 쳐보라고 했다. 본 대로 스윙을 하자 처음에는 헛손질이 몇 번 있었지만 그새 곧 잘 맞추고 공에 무게가 실리고 속도가 있었던 모양이다. 언니는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운동신경이 좋은가?" 하며 혼잣말을 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운동신경"이 있다는 말이 인지적으로 맞지 떨어지지 않는 것이라는 점은 나에게도 그 당시 동의했고 그냥 실수로 한 말이려니 하고 지나갔다.
미네소타에는 커리지센터 (Courage Kenny Center)라는 다양한 장애인 스포츠를 제공하는 곳이 있다. 박사과정을 공부하러 간 건지 장애인 스포츠를 하러 간 건지 헷갈릴 정도로 많은 장애인 스포츠 종목에 참여하고 연습했었다. 그중 장애인 골프가 있었는데 그 당시는 긴 채 끝에 매달린 귀이개정도의 작은 면으로 콩알만 한 공을 치려하니 맘대로 되지도 않고 감질이 나서 나는 곧 응미를 잃었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 후 캘리포니아로 와서 우연히 다시 골프를 접하게 되고 미네소타와는 달리 장애인 스포츠를 접할 수 있는 종합기관이 없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이 좁아 그냥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생각할 틈도 없이 곧바로 빨려 들어갔다. 골프는 나에게 바둑을 두는 것 같은 전략적 두뇌활동과 붓글씨를 쓰는 것과 똑같은 집중력을 갖게 하는 놀라운 운동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골프를 잘 치려면 덤프트럭 10대 정도의 연습공을 쳐야 한다고 조언을 했고 나는 그 말대로 매일 덤프트럭 두대정도에 실릴 양의 공을 놓고 채를 휘두르고 휘두르는 반복연습을 했다. 입문 후 1년이 지나지 않아 90대를 치기 시작했고 곧 80 내 초반을 꾸준하게 치는 것이었다. 좀 보태자면 커리어 최고의 성적은 4 오버파였다!
그동안 나는 골프장에서 아주 특별한 캐디와 함께 한다. 도우미견인 캐프리가 그 캐디이다. 캐프리는 내가 가기 어려운 장소에 공이 있거나 해저드나 스프링클러 밑에 떨어지면 단박에 뛰어가서 집어다 주는 최상의 캐디이다. 사람이 집어 옮긴 것이 아니니 "어머나!" 하며 놀라듯이 입을 막으며 같이 골프를 치는 사람들에게 내가 옮긴 게 아니니 페널티 없이 진행이 가능한 거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하하하! 근데 이 캐디 약점이.. 있다! 다른 개가 지나가도 태연하게 앞만 보고 걸어야 하고, 새나 다람쥐를 봐도 못 본 척 지나가야 하는 인고의 훈련을 했음에도 골프장이라는 넓은 초원에서는 본능이 살아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캐프리는 골프공을 집어다 주는 본연의 일에 집중을 하면서도, 연못 근처에 있는 거위나 다른 새들을 향해서 뛰는 것이다. 아무리 불러 막아보려 해도 귀를 막고 뛰어가 모조리 물속으로 뛰어들거나 날아오르게 만들어 버리며 눈에 보이는 새라는 새는 모두 다 쫓아버린다. 그래서 골프장에 가면 내가 잡을 "새(birdie)"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캐프리가 공을 물고 홀컵에 가져다 넣는 강훈련을 시켜서 독수리 사냥(eagle)이나 해야겠다.
골프도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지적장애인들의 세계 스포츠 축제인 스페셜 올림픽이 2015년에 우리 동네 골프장에서 열렸다. 나의 홈 그라운드라 골프카트가 잘 다닐 수 있게 단장을 하고 스린도 얼음판처럼 곱게 손을 보며 세계인의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 지적장애인 골프는 일반 골프와 다른 것이 없다. 이틀째 경기가 있던 날 한국선수단 응원을 하러 갔다. 마지막 홀에 앉아 라운딩을 다 마치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향해 환성을 올리며 즐거워했다. 일반 올림픽에서는 골프가 112년 만에 다시 정식종목으로 부활을 한 2016년 리우 올림픽에서 박인비가 금메달을 목에 걸어 국위를 선양했다. 불행하게도 2016년 패럴림픽에도 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서도 아직 장애인 골프가 채택되지 않았기에 나는 패럴림픽을 기다리다 골프를 더 이상 칠 수 없게 되었다.
20여 년 전에 PGA골프대회에 참가한 특별한 선수가 있었다. 그는 캐이시 마틴 (Casey Martin) 선수이다. 골프대회는 4일 동안 매일 걸어서 경기를 하도록 되어있다. 케이시는 다리까지의 혈액순환에 어려움이 있는 질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타이거 우드와 대학 동기인 그는 골프를 잘 치면서도 대회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카트를 사용의 권리를 얻기 위해 PGA협회를 상대로 고소를 하여 2001년에 연방 대법원의 원고 승수판결이 났다. 그 후 나는 TV중계를 통해 그를 볼 수 있었다. 골프가 별로 땀 흘리는 다른 종목들과는 달리 "스포츠"라기보다는 "놀이"라고 보는 대중의 인식이 있다. 그래서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골프계에서는 그나마 "걷는다"는 동작까지 빼면 더욱더 스포츠보다는 레크리에이션이란 오명으로 고착될 가능성 때문에 왈가왈부가 심했었다. 2028년 로스앤젤레스 패럴림픽에서는 꼭 골프가 경기종목으로 채택되기를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