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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주 Aug 04. 2024

성서적 특수교육 4

All means all, "모든 사람"은 "모두"를 의미한다.

미네소타에서 유학중일 때 다니던 교회는 내가 평생 다녀본 교회 중에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 곳이었다.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전 교인이 직장을 마치고 바로 교회로 모였다. 몇몇 중년의 남자 장로님들이 식당을 차지하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내어 가족별로 모여 함께 저녁식사를 하며 너무도 행복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활발한 대화가 가득한 행복하고 건강한 교회였다. 식사가 끝나면 아이들은 어워나(AWANA) 프로그램으로 성경공부를 하러 가고 음악을 좋아하는 엄마아빠들은 성가대 연습을 가고 일부는 성경공부를 간다.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각자 소속된 모임으로 교회활동을 하고 밤이 꽤 깊어져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수요일이 나는 참 좋았다. 주일에는 모든 교회가족들이 오전 대 예배에 참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가 어둑어둑해지는 저녁에는 다시 교회에 모여 특별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다. 일주일이 참 건강한 곳이었다. 


미네소타는 대부분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사람들로 금발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백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외국인이 별로 없는 그 동네교회에 나는 외국학생으로 그들에게는 보기 드문 외국인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어떻게 보였을까? 물론 미국은 세계각국에서 모인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법적으로 인종차별을 금하고 있어 달라 보이는 내가 특별한 의미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과 다른 내 모습 덕분에 예수님의 입장을 생각해 보며 동지감과 감사함을 느끼곤 했다. 만약의 예수님이 없었다면 나는 그들과 함께 예배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상 유대인이 아닌 백인들도 하나님을 구약시대에 가두고 있는 성서적 견해에서는 나와 똑같이 이방인으로 찬밥신세였을 것이다. 


종교와 문화가 한 민족과 엃혀있다 보니 예수님도 유대민족에게 평안을 가져다줄 리더이며 메시아인지가 그들의 관심이었다. 문제는 예수님은 그들이 요구하는 정치적 군사적 힘을 갖고 민족을 이끌어주는 리더상과는 차이가 있었다.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에 관심을 갖고 관찰을 하며 그들의 생각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들은 많은 질문을 통해 확인을 하려다가 결국 예수님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도록 했다. 기존 유대인들은 당연히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민족이기에 하나님은 오직 자신들만의 지도자요 구원자여야만 했다. 그들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예수님의 선택은 이방인들에게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당연히 유대인을 벗어나 이방인에게까지 손길을 벋으신 예수님 은혜 때문에 구원을 받고 매일을 살아가는 용기와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교회와 학교에서 크게 환대를 받지 못하고 가끔은 제지를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나를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왜? 십자가에 죽으심을 당하면서까지 전인류로 대상을 넓히신 예수님의 은혜로 자신들도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데 왜 누구는 더 팔 벌려 환영하고, 누구는 신경도 안 쓰고, 또 어떤 사람들은 격리하거나 참여를 은근히 포기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랫동안 장애학생들을 위한 특수교육도 비장애학생들과 떨어져 분리교육을 받았었다. 


1980년대부터 통합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비장애 아동들과 일반교사들과의 실질적인 통합활동은 도외시되고 있다. 또 미국의 많은 학교에서는 장애학생들을 운동장 맨 구석에 따로 컨테이너로 만든 교실에 배치하고 있다. 물론 접근성이 적은 옛 건물들을 이용하기보다는 넓은 운동장에 쉽게 만든 임시교실을 사용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성서적 특수교육은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서로를 환영하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함께 떡을 나누는 잔치에 이방인과 장애인으로 채우라고 하시고 더 나아가서는 "강권하여" 데려오라고까지 강조를 하셨다 (눅14: 15-24). 나는 이 구절을 읽을 때 음악소리로 가득 차고 사람들의 경쾌한 대화소리와 웃음소리가 가득한 잔치에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즐겁지 비슷한 사람끼리만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교회에서도 예배나 주일학교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들은 따로 분리해 성경공부를 하고 찬양과 예배드리는 방법을 지양하고 장애학생도 모두 함께 주일을 지낼 수 있는 통합주일학교로 운영하는 것이 성서적이다. 그리고 서로 잡아주고 이끌어주고 대화를 건네는 건강한 주일예배가 진정으로 의로움을 강조하시며 계획하신 예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율법의 잣대에 묶여 사람들을 분류하는 배타적인 관습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깨어진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우리도 실천을 해야 한다. 주일예배에 교회를 갔을 때 적어도 옆에 있는 처음 본 사람 또는 장애인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화하는 작은 실천이 성서적 특수교육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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