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만 지금은 고마운 일

보이스피싱 사고

by 김인순

​2010년, 남동생이 운영하는 부동산 사무실에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집에서 공부방을 하던 나는 동생의 권유로 일을 정리하고 부동산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업무는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려웠다. 손님을 맞이하는 일부터 아파트 매매나 전세 물건을 찾아 손님과 함께 보러 다니는 일까지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잠시 눈을 붙이려고 차 안으로 들어갔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나 물건을 찾는 손님일까 싶어 얼른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자신을 '사이버 수사대 경찰'이라고 소개했던 것 같다. 그는 이것저 캐묻더니 급기야 계좌번호까지 요구했다. ​나는 지금 차 안이라 통장이 없다고 했지만, 남자는 계좌 번호를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나를 다그쳤다. 그는 사무실에 가서 통장을 가지고 다시 차로 돌아오라고 지시했다. '경찰'이라는 말에 완전히 압도된 나는 조금의 의심도 없이 사무실로 달려가 통장을 꺼냈다.


​한창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있는데, 내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동생이 다가와 물었다.


​"누구인데 통장 번호를 불러주고 있어?"


​내가 "무슨 사이버 경찰 수사국이라는데..."


​라고 말하기가 무섭게, 동생은 내 전화기를 낚아채더니 고함을 쳤다.


​"당신 누군데 남의 통장 번호를 알려 달라는 거야!"


​그러자 상대방은 곧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동생은 눈을 부릅뜨고


"누나는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보이스피싱이잖아!"


​라며 정신 차리라고 나무랐다. 그 순간 무서움과 창피함이 동시에 몰려왔다.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동생은 참 듬직했다. 통장에 있던 5,600,000원을 그대로 다 털릴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비밀번호까지 알려주었다면 정말 끝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 곁에 동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동생 앞에서 어리숙한 행동을 한 것이 창피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동생이 곁에 있어서 정말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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