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물건 3
캠핑을 다녀오자마자 추억의 물건이
뭐가 있을까 두리번거리며 찾아보았다
30년 가까이 내 곁을 지켜온 그 돌을 다시 꺼내 보니, 순간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손바닥에 놓자마자 그때의 감정과 남편의 모습과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은 모습들이 스멀스멀 되살아났다.
이 돌비석은 결혼 3주년 즈음, 결혼기념일 선물로 남편에게 받았던 것이다. 친정집 근처 냇가로 놀러 갔을 때, 남편은 혼자 돌무더기 사이를 뒤지며 한참 동안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알고 보니 나에게 선물할 이 돌을 미리 골라두었던 것이었다. 돌 위에는 짧은 성경 구절을 새겨 넣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시절 나는 이런 선물이 조금 시시하게 느껴졌다. 주변 아내들은 결혼기념일마다 금목걸이나 명품 가방을 받는다며 자랑하곤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도 저런 거 받고 싶은데…’ 하는 서운함을 마음속에 품었다. “왜 우리 남편은 나에게 이런 것만 선물할까?” 하는 불만도 있었다. 비싼 것을 해주는 게 사랑의 척도라고 믿던 때였다. 어느 해에는 천 원짜리 손거울을 내밀던 남편을 보고 ‘장난하나?’ 싶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속엔 늘 깊은 생각과 의미가 있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 마음을 헤아릴 여유가 없었다.
남편은 늘 성경을 가까이하며 묵상하는 사람이었다. 집 현관, 벽, 싱크대 위—집안 곳곳에 말씀을 적어 붙여 놓곤 했다. 묵상 중 깨달은 구절을 메모지에 적어 하나씩 붙여두었지만, 아들 셋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던 나는 그 글귀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작은 개척교회를 다니던 시절이라 식사 당번도 자주 맡았고, 갑상선 항진증까지 겹쳐 몸도 마음도 늘 지쳐 있었다. 그런 나를 위해 남편은 말씀이 위로가 되기를, 영혼이 힘을 얻기를 바라며 조용히 곁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돌 위에 새겨진 구절은 이렇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그때는 그 뜻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이 말씀이 얼마나 귀한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것을 나에게 건넨 남편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된다.
세월이 흘러 돌에 적힌 글씨는 희미해졌지만, 돌만큼은 여전히 내 곁에 남아 있다. 그것은 단순한 돌이 아니라 남편이 내 영혼을 위해 써 내려간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돌을 바라보면 묵묵히, 인내하며,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걸어온 긴 세월이 떠오른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넘칠 뿐이다.
오늘도 돌을 쓰다듬으며 생각한다.
이 돌에 새겨진 글씨야말로
지금의 내게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고.
남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