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몸이 기억하는 온기

추억의 물건 5

by 스마일맘

15년 전, 나는 내 몸을 위해 처음으로 ‘통 큰 선택’을 했다.

지인이 초대로 의료기 체험 자리에서 마주한 것은 편백나무로 만든 건식 반신욕기였다.


저주파 기계가 부착되어 있고 따뜻한 편백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그 자리—그곳에 앉는 순간 마음이 스르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와, 이거 좋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내 몸이 먼저 알아보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그때의 나의 몸은 늘 차가웠다.

손끝과 발끝은 얼음처럼 식어 있었고, 하루를 버티느라 힘없이 축 처진 근육들은 내 고단함을 말없이 대신했다.

세 아들을 키우느라 내 몸의 감각은 늘 뒤로 밀렸고, 체력과 마음은 바닥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반신욕기는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을 다시 일으킨 작은 불씨였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바로 결제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나 용감한 선택이었다. 그때 돈이면 중고차 한 대는 거뜬히 살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어디에선가 마지막 체력을 끌어모아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함이야.”


​그 후로 매해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반신욕기는 내 일상의 한자리를 차지했다.


나는 편백나무통 속에서 책을 읽고, 필사를 하고, 조용히 글을 낭독했다.


평소 땀이 잘 나지 않는 체질인데도 반신욕기 안에서는 신기하게도 굵은 땀이 맺혔다.

몸이 서서히 뜨거워지며 살아나는 느낌이랄까

그것은 어떤 말보다도 강한 위로였다.


​한 시간 정도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셔가면서

이열치열의 여유를 즐겼다.

심장의 리듬은 고르게 정돈되고, 굳어 있던 몸도 혈기 왕성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그렇게 나는 ‘따뜻함’이라는 감각을 잊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다.


​중년이 된 지금, 단순히 걷는 것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나의 건강을 채워주었다.


내 몸은 더 세심한 관리와 깊은 휴식을 필요로 한다.

그런 나에게 반신욕기는 운동 친구이자 명상 장소이며, 혼자만의 치유 공간이다.

특히 이른 아침, 반신욕기 안에 몸을 넣는 순간은 더욱 특별하다.

일상의 소음이 잠시 멈추고 몸과 마음의 불빛만 은은하게 켜지는 듯하다.


​우리 집에는 반신욕기 외에도 몇 가지 의료기기가 있다 보니, 아이들은 가끔 장난스럽게 말한다.

“엄마, 비싼 기계 살 땐 아빠랑 상의 좀 하고 사요!”

하지만 상의했다면 나는 아마 이 반신욕기를 사지 못했을 것이다.


검소한 남편은 늘 말한다.

“기계에 의지하지 말고 직접 몸을 써서 운동해야지.”

그 말도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이 반신욕기는 내가 다시 몸을 움직일 힘을 얻기 위해 필요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기초 체력의 출발점이 되었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15년.

아이들은 훌쩍 자랐고, 나의 삶도 쉼 없이 굴러가고 있지만, 반신욕기는 단 한 번의 큰 고장도 없이 묵묵히 내 곁을 지켜주었다.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지금 나는 반신욕기 속에 앉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 시절의 나를 떠올린다.

아들 셋을 키우느라 정신없이 살아내던 순간들, 내 몸이 차갑게 식어가던 시간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용기를 냈던 그때 그 순간들.

여전히 반신욕기 속에 앉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마를 타고 흐르는 땀 한 방울이 그동안 버텨온 시간들을 조용히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나를 따스하게 감싸준 통 속에서 조용히 되뇌어본다.


​“오늘도 나에게 온기를 선물해 줘서 고마워.”


​편백나무통 안에 스며 있는 따뜻한 온기와 향과 조용한 숨결.


내 몸이 다시 살아난 시간들이 거기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때의 나는, 정말 필요했던 것을 놓치지 않았다.

과감하게 선택했던 그 배짱이 지금의 나를 지켜주었다.


나 자신을 지켜낸 나에게,

살아 있어 주어서 고마워.

건장한 세 아들에게 엄마를

선물할 수 있어서 감사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코치라서 감사한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