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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쌤 Apr 04. 2023

요상한 출근길

엄마의 비밀


1

출근길에 비가 온다.

운전대를 잡고 비의 리듬에 맞춰 출근을 하는 나는 워킹맘.

비가 점점 더  내리기 시작하던 그때

폰 벨소리가  차 안을 가득 채운다.

화면에 나타난 '엄마'라는 글자.

나에게 위킹맘인 우리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응. 엄마. 왜?"


_ "제주도에 비 마이 오제? 어디고?"


"차 안, 출근길"


_ "운전 단디 해래이. 비 마이 온단다!"



2

그날도 엄마는 나에게 흰 블라우스를 입혔다.

그러면서 당신은 옥스포드 남방을  입었다.

마치 교복 같은 느낌으로 우리는 '그날' 이면

나는 흰 블라우스, 그리고 당신은 옥스포드 남방을 입었다.

'그날'은 다름 아닌  엄마가 출근하는 날.

일주일에 3번 엄마는 출근을 했다.

우리 엄마의 출근길은 요상했다.

핸드백 대신 짐 가방을 들고

뭔 이상한 통에 내가 알지 못하는 물건들을 잔뜩 가지고

위험한 핀, 쇠가위, 알 수 없는 잡동사니에

베고 자면 딱 좋을 책도 들고 다녔다.

이러니 아무래도 요상하다. 

도대체 엄마의 직장은 무엇을 하는 곳일까.



3

엄마의 출근길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나는 보기 좋게

유치원에 들어간다.

유치원이 끝나면 이모님 기다리고 계셨고

이모님은 내 머리칼을 몇 번이고 정리시키며

나와 집으로 걸어간다.

엄마는 일을 가야 하니까 나의 하원길은 늘 이모님과 함께 다.

가끔 이모님이 아예 우리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4

시장놀이를 하는 날.

유치원 준비물로 엄마가 챙겨준 샛노란 참외.

엄마가 바빠 깎아주지 못해 냉장고에 방치되던

참외 두 알을 까만 봉지에 넣어 준비물로 가져갔던 그날.

이모님이 우리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루종일 생각했다.

이모님이 우리 집에 살았다면, 그랬다면 바쁜 엄마가 챙겨 준 씨가 농해 썩어 먹지 못하는 참외  따위를 유치원 시장놀이 준비물로 가져가지는 않았을 텐데!



5

엄마가 바빠서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엄마가 이상스러운 일을 한다고 생각했기에

엄마가 부끄러웠다.

꽤 오랫동안 나와 함께 나의 성장을 지켜 봐주던 엄마가

온갖 잡동사니를 들고 출근을 하면서

일을 가지 않는 날에는

혼자 잠도 늦도록 자지 않는 눈치였다.

나에게 그림을 그려주던 엄마가.

내가 먹을 간식을 해주던 엄마가.

이제는 썩은 참외를 나에게 챙겨주고

요상한 출근을 한다.



6

이모님은 일주일에 3번 나를 보러 왔었다.

그랬던 이모님이 언제부턴가는 나와 꽤 자주,

아니 늘 함께 있게 되었다.

'이모'라고 부르지 않고 '이모님'이라 불려지는

이모님이 이제는 엄마의 일을 대신한다.

내 머리를 빗겨주고 내 준비물을 챙긴다.

엄마가 필요 없었다.

이모님이  내게 그림만 그려줄 수 있다면

이제는 진짜 엄마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딸이 엄마를 잊어가던 시간.

그렇게 무서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엄마는

여지없이 부지런히 출근길을 서두른다.



7

출근은 아까 벌써 했는데

엄마는 전화기 너머로 아직도


 "다 왔나? 어디고? 비 아직 마이 오나?"


_ "엄마. 내 그때 6살 을라였을 때 엄마가 학교 다니는지 모르고 직장에 출근하는 줄 알았다 아이가! 우리 엄마 진짜 대단하데이! 그때 우째 대학교 다닐 생각을 했노!"


"캐샀지마라. 내가 그때 니 눈치를 얼마나 마이 봤는 줄 아나? 보모까지 들이가 니 비위 다 맞추고. 니도 그랬지만은

나도 어린 마음에  맘고생 좀 했다 알기는 아나!"


그때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


("이 선생님. 색 맞나 봐주세요. 조색 더 들어갈까요?")

"진아, 내 인자 바쁘다! 끊으래이!"


그렇게 요상한 출근길에

대학교를 다니고 있던

우리 엄마는 오늘도 출근한 '디자이너' 다.



_ 사진 출처 : 블로그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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