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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쌤 Apr 15. 2023

미나리꽝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아이



1

어째서 '파' 보다 '미나리'는 비싼 것인가.

마트에 진열된 오늘의 상품(세일)에 오늘도 미나리는 없다.

미나리를 전 부쳐 향긋하게 먹어볼 심산이었던 나는 미나리를 들었다 놨다 하다 결국 놓는다.

그래봤자 고기보다 비쌀 턱은 없지만 그래도 미나리는 풀 아닌가.

이 돈 주고는 절대 살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후 지천에 널려서 밟고 다녔던 게 미나리였는데...'





2

그날도 장화를 신었다.

내내 조르고 졸라 샀던 내 노란 고무장화는 비 오는 날이 아니어도 멋들어지게 소화할 수 있던 그 시대의 아이템이었다.


"아이고, 진아! 비도 안 오는데 그거 신었드나? 니 장화 신고 학교 가믄 선생님이 머 라칸데이! 장화는 비 오는 날 신어야지!"


엄마는 패션을 모른다.

패션이란 모름지기 여름에는 가을옷을 입고 겨울에는 봄옷을 입는 게 아닌가.

맑은 날에 운동화 아닌 장화는 패셔니스타의 기본이다.

엄마가 말렸지만 우겨 신고 온 장화가 나는 몹시도 맘에 든다.

그렇지만.

역시 장화는 빗물이 있어야 그 기능을 발휘해 찰방찰방 거리는 소리를 따라 경쾌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빗물.

그래. 하교 후 나는 물을 찾아야 했다.






3

어릴 적  할머니집 앞에는 논이 있어 거기서 모내기철에

모내기를 했다.

논에 물을 대 모를 꾹꾹 눌러 심었던 모내기.

모내기 철이면 품앗이로 농사일을 돕던 동네가 점심시간이 되면 잔칫마을처럼 떠들썩했다.

참을 드시던 어른들 옆에 붙어 앉아 친구들이랑 먹는 중참은 진짜 꿀맛이다.

아니 그런데 그렇게 재미가 있던 논을 논 주인이 외지사람에게 팔았단다.

빈 논이 되어버린 그 논을 바라보던 동네 아주머니들의 말이.


"들었는교?그 논 주인 아인나. 그 집 작은 아들이 읍에서

레쓰또랑 을 했는데 마 망했다 카데!"


_ "우야꼬? 망했다 카드나? 레쓰또랑 그거는 외국음식 파는 식당 아이가? 백반집이나 하지 뭐할라꼬 그거를 해가...

 쯧쯧쯧쯧..."


"아니 그래가 그 부도 막는 다꼬 이 논을 팔았다 칸다 아인교.

죽도록 농사지가 벌믄 뭐하노. 자식들이 다 딲아 쓰는데!"


논 주인의 작은 아들의 사업이 망해 빈 논이 된 논에는

더 이상 물을 댈 이유가 없어 말라갔다.







4

한 달이 지난 그즈음에 동네가 시끄럽다.

논에 물을 댄단다.


"아싸라비요~ 성희야! 상희야! 나와 보래이! 논에 물 댄단다!"


_ "어데? 어데? 논에 물 댄다꼬?"


" 야! 우리 또 중참 묵겠다! 그자?"


그렇게 좋아라 했는데 우리는 좌절했다.

세상에 논에 물을 대는건 맞는데 거기는 더 이상 논이 아니었다.

거기는 '미나리꽝'이 된단다..







5

미나리꽝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나리는 모내기 같은 게 필요가 없다.

헝클어진 미나리를 뿌리째 냅다 쏟아 놓으면 그냥 미나리가 올라오고 그걸 베어 팔면 되니 마을 잔치 같은 분위기를 풍길 수 없다.

쳐다보기도 싫은 미나리꽝.

그 이후 우리 집에는 그 미나리 주인이 준 미나리가 자주 올라왔다.

꼴도 보기 싫었다.






6

어쨌든 그날은 미나리꽝에 화해를 청하러 가야 했다.

내 장화는 물이 필요했으므로.

논을 개간해 만든 미나리꽝은 가장자리는 질퍽한 논의 형태를 하고 있고 안으로 들어갈수록 물이 더 많아 수심이 깊다.

가장자리는 질퍽한 곳과 물이 살짝 있는 물웅덩이 수준이므로

장화 신고 들어가 놀만 하다 생각했다.

두 번 생각지도 않고 들어갔던 미나리꽝 가장자리.

역시나 내 장화는 기능이 최고다.

젖지도 않고 새지도 않는다.

아니 그런데 좀 놀다 보니 내 노란 장화가 흙이 묻어 야단이다.

장화에 흙이 묻은 거야 뭐 놀아서 당연한데 문제는 엄마다.

또 등짝을 맞을 예감에 놀기가 싫어지면서 정신이 번뜻한다.

그런데 암만해도 장화에 묻은 흙을 씻어낼 자작한 물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지.

더 깊이 들어가야지.






7

이만하면 됐나 싶게 안으로 들어왔다.

얼추 씻기나 싶은데 역시나 물이 살짝 더 깊으니 놀 맛이 난다.

그렇게 좀 놀다 보니 너무 깊이 들어왔나 라는 생각이 스치는 그 동시에 일은 벌어졌다.

진흙에 장화가 박혔고 빠지지는 않고 그야말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

힘줘서 발을 뺐는데 정말 발만 빠지고 장화는 진흙에 박혀버렸다.

이러다가 이제 집에를 못 갈 지경.

이미 옷은 다 젖고 장화고 뭐고 목숨이 위태로운 그 순간

내 팔뚝에 흙덩이들이 묻은걸 보고

털어내려 손으로 팔뚝을 훔치는데

흙이 안 떨어진다.

왜 안 떨어지지? 하고 한참 보는데 흙이 꿈틀 거린다.

거머리..

나는 졸도 직전에 소리소리를 지르고

진짜 졸도를 하려는데 그 미나리꽝 주인이 미나리싹을 보러 왔다가 나를 보고는 들어와 들쳐 매고 나를 미나리꽝에서 꺼냈다.






8

졸도 까지는 아니었으나 그 순간 엄마가 떠올라 졸도 한 척을 해야 했다.

열연을 하다 눈을 떠보니 미나리꽝 옆 미나리 정리하는 평상에 드러누워 있는 내 모습이 느껴졌다.


"진아! 진아! 눈 떠봐라! 니 눈 안뜨믄 주사 맞으러 간다이!"


엄마다.


"니 그 뭐 하러 들어갔드노! 어? 눈 안 뜨나!"


_"아니 나는 미나리가 궁금해서..."


"미나리가 궁금해서 미나리꽝에 들어가서 그 호작질 까지 했드나?"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엄마는 미나리꽝 주인한테 고개를 숙여 사과를 했다.


"아이고 우짭니꺼. 우리 아 가 뭐든지 궁금한기 많은 별난 아 거든 예.  죄송합니더. 밭에 밟은 미나리는 우리가 사가께예.

우리 집 아 가 이래 별납니더."


그 미나리꽝 주인은 괜찮다고 했으나

엄마는 5박스나 되는 미나리를 샀고

나는 그 시즌 소풍도 미나리 김밥을 싸가야 했다.

이 말은 온 동네에  미나리를 나눠주고도

토할 정도로 미나리를 먹었다는 뜻.

그리고 나는 그 미나리 반찬들을 싫다 하지 못했다.

달게 받는 벌처럼 그 어린 나이, 8살에 미나리 달게 먹어 치워야 했다.






9

사실 미나리가 궁금해서는 아니었지만

그때 그 사건으로 나는 온 동네에

궁금증이 많은 아이로, 호기심이 많은 아이로,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아이로 불렸다.

그렇게 불려서일까?

나는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어른으로 성장했다.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쓸 가능성이 많다. 작은 자극에도 촉발을 받고 영감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물음표가 어느 순간 느낌표로 변하고 다른 삶의 국면을

통과하면 그 느낌표는 또다시 물음표가 된다.

내가 이렇게 믿었는데 그게 전부가 아닌가 보다, 하는 생각이 찾아드는 것이다.

그 물음표와 느낌표의 반복과 순환이 자기만의 사유를 낳는다.”

_ p.138 <글쓰기의 최전선>



"엄마. 나 정말 가슴에 물음표가 많은가 봐요.

엄마.

나는.

내 가슴에 물음표가 많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면

온통 엄마가 날 위해 살아주었던 그 모든 좋은 날들을 쓰고 싶어요."

_엄마가 해주면 미나리도 맛있었던 진아가





_ 사진출처 : 네이버블로그 굴뚝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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