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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movie color Jun 23. 2021

영화 <데몰리션>에 대한 나의 감정과 생각 / 리뷰

나의 모든 것이 부셔지고 나서야 내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어...

감정에 대한 영화



영화 <데몰리션>은 자신과 함께 차에 타고 있던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은 후 남편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 제이크 질렌할이 나오기도 하고, 영화 <더 임파서블>에서 나에게 감동을 준 연기를 한 나오미 왓츠도 나와서 보고 싶었던 영화이다. 그리고 포스터에 보여지는 제이크 질렌할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서 저 남자는 왜 저렇게 도시를 걷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영화는 인간의 감정에 포커싱을 두었다. 영화는 도시와 같이 삭막한 한 남자의 감정이 어떤지 보여준다. 그의 감정은 도시의 건물을 파괴하듯이 자신을 파괴시키면서 그 속에 어떤 감정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어떤 사건으로 인해 모두가 다 같은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다. 각자만의 감정이 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같은 감정을 요구받는 것 같다. 저마다의 감정이 있는 것인데,,, 그런 감정들이 모두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해주는 영화이다.

뭔가 간지이다...ㅎ

영화 <데몰리션>의 줄거리


데이비스(제이크 질렌할)가 아내 줄리아(헤더 린드)와 함께 차를 타고 장인 어른(크리스 쿠퍼)와 전화 통화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 된다. 전화가 끝난 후 아내가 냉장고 좀 고쳐달라고 한다. 물이 샌다고. 데이비스는 아내 줄리아의 말을 반복한다. 아내는 아버님이 주신 연장으로 고치라고 한다. 그는 자신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연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아내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짓는다. 남편은 멋쩍은 듯 웃디가 놀란다. 그 순간 남편이 앉은 조수석 에어백이 터진다.


아내를 잃고 병원에서의 데이비스의 모습


아내는 결국 죽었다. 장인 어른은 오열을 한다. 데이브스는 멍하다. 그는 자판기로 가 초콜렛을 하나 산다. 하지만 자판기에서 초콜렛은 나오지 않는다. 간호사한테 물어보니 종종 그러니 자판기 회사에 문의하라고 한다. 데이비스는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아내의 장례식장에서도 장인 어른의 집에서도. 그는 화장실에 가서 울려고 했지만 결국 눈물은 터지지 않았다. 옆에서 아이들은 그의 모습을 보면서 깔깔된다. 데이비스는 차분히 서재실에 앉아 자판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쓴다. 쓰면서 자신의 상황을 들을 쭉 적어 놓는다. 아내가 죽고 10분 후 자판기에서 초콜렛을 먹으려는데 안 나왔다는 이야기. 자신이 장인 어른의 회사에 일하는 것이 마치 원숭이들이 단장하는 것처럼 '단장'된 것과 같다는 이야기. 아내와 어떻게 만났고 결혼을 한 이야기. 등등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은 적어 놓는다. 사실 그 이야기들은 초콜렛 환불 요청과는 관련 없지만 전체 이야기가 필요한 것 같다면서 써놓는다.


환불 요청 편지를 쓰는 데이비스


데이비스는 바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런 데이비스를 보면서 사람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장인 어른은 그런 사위가 걱정되어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다른 곳에 한눈을 팔고 있다. 장인 어른은 줄리아의 보험금으로 재단을 설립하여 아이들에게 꿈 펼쳐주겠다고 말한다. 그 말 역시 잘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저 귀에 맴돌뿐. 어느 날은 평소 자신에게 귀찮게 굴던 기차 승객과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는 아내가 죽어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솔직히 말한다. 그랬더니 그 승객이 그런 어떠냐고 물어보자 데이비스는 급정거 레버를 내린다. 그는 그 순간이 위급한 상황이라고 느껴졌다고 생각한다. 데이비스는 계속해서 자판기 회사에 항의 편지를 보내며 지낸다. 자신은 요즘 주위가 눈에 들어온다고 말한다. 모든것이 은유인 것 같다고. 평소 일에만 집중하던 그는 그녀가 죽고 나서야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이비스


데이비스는 그러다가 문득 냉장고를 고쳐야겠다고 생각한다. 장인 어른이 말씀하길 '뭔가를 고치려면 모두 분해한 다음에 무엇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라고 하여 데이비스는 냉장고를 모두 뜯는다. 그 후 망가진 사무실 책상 위 기계나 삐그덕거리는 회사 화장실 문을 분해해 놓기 시작한다. 그런 데이비스의 사연을 문의 편지로 접한 캐런(나오미 왓츠)는 그에게 전화통화를 한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터놓고 말할 캐런을 찾아가게 된다. 물건을 분해나는 사위를 보면서 장인 어른은 데이비스한테 휴직을 권고한다. 데이비스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집을 부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돈을 줄테니 자신도 부수게 해달라고 한다. 데이비스는 점점 주위의 보이는 것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이제는 집까지 분해하는 데이비스

데이비스와 캐런을 만나서 자신들의 이야기들 솔직히 털어 놓는다. 그렇게 친해진 둘은 캐런의 집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물론 잠자리는 갖지는 않는다. 캐런의 아들 크리스(주다 루이스)는 자신의 집에 자주 오는 데이비스가 처음에는 싫었지만 이야기를 해보니 마음이 통하는 아저씨라고 느낀다. 무엇보다 데이비스의 솔직함에 반한 크리스. 그러면서 자신의 고민도 털어놓기 시작한다. 자신이  그렇게 또 친해진 데이비스와 크리스. 데이비스는 크리스와 함께 아내와의 추억이 있는 자신의 집을 부수기 시작한다. 부수다가 아내의 서랍장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데이비스. 그의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집을 부수는 데이비스와 크리스


과연 데이비스는 모든 것을 분해한 후 자신 속의 중요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감정의 솔직함과 다른 사람의 시선


영화는 아내를 잃은 데이비스에 초점을 두어 시작하지만 점점 넓혀지면서 캐런, 그녀의 아들 유리스의 이야기도 같이 들려준다. 그들 모두 남들에게는 솔직하지 못할 감정이 있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시종일관 솔직하다. 아내를 잃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출근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은 그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데이비스는 정말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도 알고 있다. 소중한 사람을 잃으면 슬퍼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거울 앞에서도 그는 눈물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 감독은 데이비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누구나 감정이 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다른 사람들하고 같다고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사회는 개인에게 어떤한 감정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결혼식에서는 기쁜 감정을, 장례식장에서는 슬픈 감정을. 사실 어떤 상황에서 꼭 그 감정만을 느끼라는 세상의 법칙은 없다. 결국 사회가 만들어낸 것뿐이다. 그것은 보통 어른들에게 해당한다. 나이가 들수록 엄격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 거울을 보면 가짜 슬픈 표정을 짓는 데이비스를 보며 관객들은 데이비스가 소시오패스라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깔깔 웃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생각도 들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아내를 잃은 남편에게 어떻게 웃을 수가 있냐고 따지지는 않는다.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은 데이비스의 표정을 보고 웃을 수 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도 결국 자라면서 감정을 숨기며 사회가 원하는 표정을 지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영화 속 '은유'라는 키워드


데이비스는 캐런에게 편지를 쓰면서 아내가 죽은 뒤 자신의 주위가 보인다며 모든 것은 은유(메타포)라고 말한다. 이 점에서 2가지 정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첫 번째는 은유가 보여지는 방식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은유는 일단 본뜻을 숨기기 때문에 바로 그 뜻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본뜻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위해 그 은유적인 단어를 집중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데이비스는 평소 주위를 신경쓰는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관객은 초반 몇분만에 알 수 있다. 데이비스는 아내와의 이야기를 할 때도 그녀의 말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 그가 '모든 것이 은유'라고 하는 것은 이제서야 주위를 둘러보고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면서 자신도 둘러보게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 마음 속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아가는 데이비스이다. 데이비스는 결국 자신이 줄리아를 사랑했다는 감정이자 추억을 발견한다. 두 번째는 은유라는 자체의 수사학적 의미이다.  은유는 본뜻을 숨기고 유사성을 갖는 보조관념으로 표현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때에는 본뜻을 모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의 '모든 것이 은유'라는 것은 세상은 이미 진실되지 못한 세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현대 사회가 가짜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화 속 데이비스의 직업은 투자 분석사이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회사는 실체가 없는 숫자로 놀이 하는 회사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회는 실제는 없고 그저 은유와 같은 가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은유(가짜) 속에 살면서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간다. 크리스는 데이비스한테 어디론가 가보라고 권유한다. 데이비스 그 장소에서 건물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데이비스는 미소가 지어진다. 영화를 보면서 몇 없던 데이비스의 미소같다. 데이비스 뿐만 아니라 뒤에 있던 사람들도 사진을 찍으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도 사회라는 억압 속에서 억눌렸던 감정이 표출되는 것 같다. 그리고 건물이 무너지면서 관객들은 데이비스와 크리스 둘다 앞으로 자신의 진심을 표출하며 살아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끝맺음


그렇다면 여기서 생각해봐야 하는 것은 데이비스와 줄리아의 관계이다. 그것도 가짜였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 데이비스 그녀와 관련된 물건들을 하나 둘씩 파괴한다. 냉장고부터 시작해서 결국은 집까지 파괴하게 된다. 그러면서 자신이 줄리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단편적인 추억으로 다가오게 된다. 1초도 안되는 컷컷마다의 줄리아가 데이비스의 마음 속으로 다가온다. 데이비스는 그제서야 깨닫게 된다. 줄리아를 사랑했다고. 그 후 장인 어른을 다시 찾아간다. 영화 초반에 장인 어른과 이야기 했던 바에서. 영화 초반과 다른 데이비스의 표정. 영화 초반 장인 어른이 감정을 잘 다스린다는 데이비스의 표정은 마치 사막 같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후반 자신이 줄리아를 사랑했다는 진심을 알게 된 데이비스의 표정은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와 같았다. 그 장면에서 제이크 질렌할의 표정연기는 이 영화를 관통하는 연기였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슬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우리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너무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살아가고 있는게 아닌가? 어느 새부터 나의 진심은 신경쓰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고 사회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 이제는 그것을 향해 다시 찾아가야겠다. 그러면 영화 마지막의 데이비스처럼 아이들과 함께 달리면서 웃는 표정을 짓지 않을까 싶다.


왓챠 평점: 4.0 / 5.0


몇줄평: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후에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곳에 진실된 감정이 있었다.

우리는 그 감정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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