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든 제품들은 서로 비슷해지는가?
(바쁘신 분은 이 단락을 건너 뛰고 읽어주세요)
글도 쓰고 마케팅도 하는 장영운입니다. 오늘은 새로운 형태의 글을 준비해봤습니다.
"장영운의 오역" 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아무리 봐도 매력적인 제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장영운의 오역은 해외의 마케팅, 그로스 관련 아티클들을 읽고 번역하되 그 과정에서 제 생각을 섞어 넣은 것을 말합니다. 원래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기 보다 제 관점에서 재해석 하는데에 중점을 두었고, 그래서 '오역'이라는 농담 섞인 이름을 붙였습니다. 한번 읽어보시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의견을 남겨주시면 좋겠어요.
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긴 글을 작성해야 했고, 수백개에 달하는 질문에 답을 해야 했다. 그 답변을 바탕으로 서로의 궁합을 0에서 100까지의 숫자로 표현해줬고, 결과적으로 궁합이 잘 맞는 상대를 쉽게 만날 수 있었다. OKCupid를 통해서 만난 모든 상대방과 연인이 된 건 아니지만, 적어도 꽤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OKCupid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OKCupid는 틴더의 모기업으로 유명한 Match.com에 인수된 후 수많은, 그저 그런 틴더 짝퉁 앱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데이팅 앱에서만 발생하는 일이 아니다. SNS, SaaS, 커머스 등 다른 분야에서도 초기에는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던 서비스가 시간이 지날수록 유행하는 기능들을 덧붙이고, 누구를 위한건지 모를 신기능들을 추가해 나간다. 그 결과로 경쟁 서비스간의 차별점도 희미해진다. 얼마 전에는 클럽하우스를 시작으로 한 음성 기반 커뮤니케이션이 유행했고, 더 최근에는 커머스 앱에 게이미피케이션 요소를 넣는게 유행이 된 일이 있다.
나는 이런 현상을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시도’라고 부르려고 한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걸까? 사실 이유는 꽤나 명확하다. 제품은, 특히 VC의 투자를 받은 제품은 끝없이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준이 성장이라면 기존 사용자를 더 만족시키는 것 보다 새로운 유형의 사용자를 유입시키는게 더 유리하다. 애초에 새로 추가되는 기능은 기존 사용자를 위한게 아니다. 제품에 새로운 유형의 신규 사용자를 추가로 유입시키기 위한 시도인 것이다. 이러다보니 제품은 점점 ‘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가 되어버린다. 식당으로 치면 김밥천국이랄까.
아마도 제품 담당자는 기존 사용자가 이탈하더라도 그보다 많은 신규 사용자를 더 확보하면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데 제품이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인간 관계에서 같은 시도를 하는 것 만큼이나 힘겨운 싸움일 수 있다. 그나마 인간관계에서는 상대방에 따라 다르게 행동해서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제품은 사용자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게 어려우니 그 싸움은 더 힘겨워진다.
사실 이 시도가 꼭 나쁘다고 말하려는건 아니다. 제품이 성장할수록 기능이 넓게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일런지도 모른다. 멀리는 검색엔진으로 시작한 구글도 지금은 수십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며, 좀 더 가깝게는 채팅 앱에서 종합 생활 플랫폼이 되어버린 카카오톡,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지역 기반 종합 서비스로 발전하려는 당근도 같은 길을 걸어왔으니까. 소수의 사용자를 만족시키는 제품에서, 세상을 바꾸는 큰 서비스가 되는 과정에는 필수적인 중간 과정일 수 있다. 다만 이런 ‘모두를 만족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제품이 잃게 되는 것(기존 사용자의 만족도)를 미리 인지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Y 콤비네이터 커뮤니티에 OKCupid에서 근무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글이 올라왔다. OKCupid가 틴더처럼 변한건 Match.com의 입김이 있었다기 보다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의 더 큰 시장 기회가 모바일 환경에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고 한다. 기존의 PC 기반 서비스에서 모바일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큰 장벽으로 작용하던 자기소개서 작성과 질문 과정이 간소화 되었고 더 쉬워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일종의 순환 효과(Feedback loop)가 형성된 것 같다. 서비스를 사용하기 더 쉬워지니 가벼운 마음으로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사용자들이 늘어났고, 새로운 주류가 된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려다보니 OKCupid는 점점 더 틴더와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해 갔던 것 같다. 흥미로운 이야기다.
이 글을 오역하는데 참고한 두 아티클의 원문 주소입니다.
https://nothinghuman.substack.com/p/the-tyranny-of-the-marginal-user
https://news.ycombinator.com/item?id=37509507
이 브런치에는 스타트업의 마케팅, 그로스, 제품 이야기와 제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이런 저런 일들을 게시합니다. 글을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다음 글은 제품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는 시도를 할 때에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 될 지 알아보는 내용으로 작성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