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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영운 Feb 16. 2024

[장영운의 오역]펀딩을 받으려면 재수 없는 놈이 될 것

믿으세요. 제 말이 아니라 Andrew Chen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스타트업이 초기 투자를 받으려면 적당히 재수 없는 놈이 될 필요가 있다

이 말을 내가 했다면 헛소리라며 비웃고 뒤로 가기 버튼을 클릭해도 할 말이 없지만, 이건 우버의 초기 그로스 담당자이자 a16의 투자자 Andrew Chen이 한 이야기다. 앤드류가 어떤 근거로 이런 대범한 주장을 하는지 살펴보자.


초기투자를 받고 싶은 당신의 이야기

아마도 첫 투자를 받기 위해 VC에 메일을 보내기 시작한 창업자는 아래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장 기회를 포착했다는 확신이 든다. 초기 팀원을 모으고 MVP 제품/서비스를 판매하기 시작한다. 놀랍게도 부족한 점이 많은 우리 서비스를 기쁘게 사용해 주는 고객들을 만나게 된다.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들고 난생처음으로 투자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힌다. 이때 받게 되는 투자는 프리시드에서 시드 투자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VC는 어떤 기준으로 투자사를 고를까? 스타트업의 투자 라운드  투자 기준을 아래처럼 요약할 수 있다.


프리시드: 팀에 투자한다
시드: 제품에 투자한다
시리즈 A: 지표에 투자한다
시리즈 B: 매출에 투자한다
시리즈 C: 유닛 이코노믹스에 투자한다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똑똑하니까 위 내용이 꽤나 과격하게 요약된 것이고, 세부 기준은 VC마다 다르며 수많은 예외 사항이 있다는 것 또한 이해할 것이다.


일단 재수 없어지면 투자받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모임에서 자기 자랑만 떠드는 그 녀석"

위 문장을 읽으며 머릿속에 누군가가 떠올랐다면 그 사람을 떠올리며 이 글을 읽어나가자. 누구나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며 살아가지만 그걸 모두의 앞에서 지치지 않고 떠드는 건 낯 뜨거운 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투자를 위한 피칭의 핵심은 자기 자랑이어야 한다.


당신이 피칭을 할 때는 듣는 사람이 조금 불편해질 정도 당신의 팀이 뭘 잘하는지, 왜 잘났는지 명확하게 강조해서 전달을 해야 한다. 당신과 당신의 팀원, 펼쳐진 시장 기회, 그동안의 경력과 업적까지. 이런 태도는 투자자 외에도, 초기에 합류할 동료, 고객, 파트너사를 상대할 때에도 도움이 된다. 물론 너무 과하지 않다면.


그러니까 이 글에서 말하는 재수 없음은 조금은 과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고, 성과를 자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자세를 뜻한다.


실리콘 벨리에서 북유럽 출신의 창업자들을 만난 일이 있다. 그들에게 실리콘 벨리에서 지내며 배운 가장 값진 교훈이 무엇인지 물었는데 '미국에서는 다들 적극적으로 자기를 홍보하고 다니고, 팀이나 제품의 현재 모습이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강조한다는 점을 배웠다'는 답을 들었다. 실리콘 벨리의 창업자들은 오늘의 매출이 아닌 내일의 스토리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집단의 조화와 개인의 겸손을 강조하는 문화권 출신의 창업자들은 이런 "미국식 피칭"에 불편함을 느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겸손하고 성실하기만 한 태도는 일상생활에서나 가치 있을 뿐, 투자를 받는데 도움이 되진 않는다. 주저하지 말고 더 강하게 피치 하라.


'충분히 재수 없어지지 못하는 문제'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엘리베이터 피치에서 더 크게 드러난다. 창업자들은 자기의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기고 팀의 배경, 경력, 성취에 대해서는 충분히 강조하지 못하게 되니까. 하지만 아직 아무런 성취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


그때에는 당신이 "찾아낸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투자자인 피터 틸은 창업자에게 "당신에게는 매우 중요한 진실이지만, 남들이 동의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한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상식이 되겠지만 아직은 소수의 몇 명만 눈치챈 커다란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전기, 전화기, 인터넷, 스마트폰 같은 기술들도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는 망상이라고 여겨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는 처음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변화를 상상해 냈고, 그걸 실현하는 과정에서 General Eletronics, AT&T, Meta, Apple 같은 초거대 기업이 태어난다. 물론 당신이 역사에 남을 대기업을 일궈야 할 필요는 없다. 이런 "찾아낸 비밀"이 큰 시장 기회를 찾는 힌트가 된다는 의미이다. 찾아낸 비밀이 당신의 배경과 연결되어 있다면 설득력은 더 높아진다. 예컨대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반복되는 문제를 발견할 있다. 스마트스토어를 운영하는데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셀러들도 같은 문제로 고통받고 있다는 걸 깨달을 있다. 당신의 전문성 덕분에 발견할 수 있던, 다른 비전문가들이 간과하고 있는 큰 시장 기회는 무엇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뽐내야 하는가?

투자를 위한 피치는 객관적인 현재의 상황을 전달하는 게 아닌, 긍정적인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아래 항목


과거가 아닌 미래를 강조할 것

현재의 상태가 아닌 미래의 가능성을 이야기할 것

모든 상황이 계획대로 잘 풀리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인 형태를 그려낼 것

잠재된 위기보다는 가시적인 기회들을 강조할 것

당장의 매출보다, 고객이 얼마나 만족하는지 근거를 제시할 것

팀원들의 학력이나 성취보다는, 팀원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는 근성을 보여줄 것

세계가 변화하는 거시적인 방향에 대한 자기만의 관점을 제시할 것

초기는 니치 마켓을 대상으로 사업을 하겠지만,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시장의 크기는 매우 크다는 것을 알릴 것


재수 없는 창업자, 실전 편

여기서는 투자자와, 초기 직원 두 가지 관점에서 창업자가 재수 없어야 할 이유를 제시한다.


1. 투자자가 보는 재수 없는 창업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투자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만약 주식 거래를 해봤다면 투자를 하기 전에 그 회사의 명성, 사업 계획, 대표의 역량, 재무제표, 그도 아니라면 유튜브 선전지라도 참고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투자는 스타트업의 프리시드 ~ 시드 수준의 투자인데 이 경우는 투자자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매우 적다.


VC라는 게 그런 게임이다. 투자한 열 중 일곱은 망하고 둘은 적당한 성공을 거두며, 하나만이 10배 이상의 대성공을 거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이들은 사업이 이뤄낼 수 있는 가장 멋진 가능성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과장된 자신감은 투자자가 알아서 걸러내 가며 들을 것이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이야기 한 사업 모델이 바뀌거나, 로드맵이 어그러지는 일은 흔한 일이니까. 즉 어느 정도 재수 없는 건 투자자 입장에서도 긍정적이다.


2. 초기 직원이 보는 재수 없는 창업자

생각해 보면 스타트업을 직접 창업하는 일 보다,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은 초기 팀에 합류하는 것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창업은 본인의 아이디어에 도전하는 것이지만, 초기 팀에 합류하는 것은 타인의 아이디어를 신뢰해야 가능한 일이니까. 제한된 자원 탓에 초기 멤버에게는 높은 급여나 우수한 복지를 제공할 수도 없다. 그 대신 회사의 지분을 떼어준다고 해도 처참하게 낮은 초기 스타트업의 생존율(신생기업 5년 차 생존율 30%)을 생각하면 그 또한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투자자와 마찬가지로 초기 직원이 신뢰할 수 있는 지표는 창업자의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비전뿐이다.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 재수가 없는 편이 좋은 초기 직원을 만나는 데에 유리하다.


주의!

그렇다고 본인의 이야기에 본인이 취하지는 말 것

오해가 없도록 명확히 말하자면 이 글은 "목표를 크게 갖고, 최대한 긍정적인 미래를 그리는 게 스타트업 성공의 필수 요소"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여기서 초기 기업들은 투자를 받기 위해 좀 더 대범하게 비전을 제시해도 좋다는 말을 하는 것뿐이며, 그 비전에 본인이 취해버리는 것은 곤란하다.


현실로 돌아오자. 초기 기업이 PMF를 찾는 기간은 당신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문제들로 개발 일정이 몇 주, 몇 개월씩이나 밀릴 수 있다. 힘들게 채용한 멤버가 이내 그만두거나, 오히려 팀의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한 다는 건 주변 모든 게 나사 한두 개쯤 빠진 듯 어설픈 게 정상이다. 오늘 마주한 문제들을 명확히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는 동시에, 내일에 대한 긍정적인 관점을 함께 유지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왜 우리는 좀 더 뽐내지 않는가? 순응의 함정

재수 없을 정도로 잘난 척하는 게 그렇게나 유리한 선택이라면 왜 우리는 좀 더 자주 뽐내지 않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을 진화 심리학에 기반해 답해보려고 한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오랜 기간 동안 집단생활에 잘 적응하는 건 죽고 사는 데에 직결되는 문제였을 것이다. 주변 동료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순응하면 튀어 보일일이 없을 테고 이런 과정이 오랜 기간 동안 반복되어 본능의 일부로 자리 잡힌 게 아닐까?


실전 피치덱 구성

그래서 구체적으로 피치 덱에는 어떤 내용이 어떤 순서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까?

마찬가지로 정답은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피치 덱 구성을 공유한다.


1. 시장에 대한 이해: 투자자도 모든 산업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스타트업이 위치한 산업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한다. 독특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산업을 배경으로 일하는 스타트업일수록 이 부분이 중요해진다.

2. 문제의 정의: 그래서 누구를 위해서 어떤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건지? 이게 왜 문제인지? 그동안 고객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어떤 대안을 사용해 왔는지? 그러니까 "우리가 뭘 하려는 팀인지"를 지나가는 행인에게 설명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정의한다.

3. 기회의 크기: 시장 규모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다. TAM, SAM, SOM을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수준으로 제시한다.

4. 우리가 이걸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의 증명: 왜 다른 팀이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적합한 팀인지를 제시한다. 사실 대단한 근거가 없을 수도 있다.

5. 팀원 + 외부 협력자 구성: 초기 팀원과 외부에서 도와주시는 분들의 소개. 특히 도메인 

6. 그동안의 성과 수치: 매출과 이익이 증가해 온 모습을 제시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아직 사업이 그 단계까지 진입하지 못했다면 소비자 리뷰, 고객 인터뷰등 무엇이라도 성과를 내고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한다.


장영운의 오역

장영운의 오역은 해외의 마케팅, 그로스 아티클을 읽고 번역하면서 제 생각을 섞어 넣은 연재물입니다. 원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옮기기보다 제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인사이트를 더하는데 중점을 두었고, 그래서 '오역'이라는 농담 섞인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번 글은 제가 좋아하는 투자자 Andrew Chen의 뉴스레터를 받고 혼자만 읽기엔 아깝다고 생각해서 평소에 하고 있던 생각과 함께 적어냈습니다.


이번 글을 읽으실 때는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여러 아티클을 하나로 정리한 글이고, 저는 이 글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저는 투자 유치를 받아본 경험이 없는 비전문가입니다. 미국 투자자들이 쓴 글이기 때문에 한국 사정하고는 다를 가능성도 있습니다.


참고자료

https://andrewchen.com/the-dinner-party-jerk-test/


작가소개

저는 7년동안 다양한 산업, 특히 스타트업들에서 경험을 쌓은 마케터입니다.

글쓰기를 즐겨하며 특히 고객 인터뷰, 그로스 마케팅을 잘 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고 있는 중인데요. 저와 함께 일해보고 싶은 분은 브런치의 제안하기 기능이나 링크드인 메세지를 통해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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