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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러블린 Mar 11. 2023

왜 자꾸 눈치를 보게 만들어

구냥 요근래 느낀 감정 비슷한 것

올해 읽은 책 중에 내게 가장 위로가 되는 문장을 선사한 책


은유가 아니라 정말로 나이 먹는 일이 두렵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준비하던 직업은 감가상각이 보다 철저하게 지켜지던 곳이었으므로. 

암묵적으로 그들이 정해놓은 나이가 가까워오자 나는 누가 눈치라도 주는 것처럼 불안해졌다.

왕십리 근처 노상 카페에서 '그 직업을 준비하고 싶다'고 가장 친한 친구에게 처음으로 이야기 했을 때, 친구는 양쪽 눈썹 끝을 아래로 내리며 행여나 내 기분이 나쁠까 연신 눈치를 보곤 이렇게 말했다.

"그냥 나랑 다음 학기부터 노량진 들어가자. 공무원 시험 같이 준비해."

그 친구가 공시생을 지나 지방직 공무원이 될 때까지 나는 준비생으로 있었다. 

그만큼 오래 준비했다는 말이다.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이 세계에서는 미켈과 하미레스, 윌리안과 스터리지를 뛰는 폼만으로 구별할 수 있거나 다이아몬드 4-4-2 포메이션을 간결하게 설명할 줄 아는 사람보다, 어디 처음 들어보는 미인대회에서 참가상이라도 받은 사람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아무리 기다려도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주지 않을 버스에서 마침내 내리기로 결심한 것은 서른을 목전에 둔 스물 여덟살 때였다.

언젠가 책에서 그런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다.

세상이 내게 이상한 경쟁을 시킬 땐 참가하지 않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비슷한 맥락에서 나는 오랜 꿈을 놓아버리고 비로소 행복해졌던 것 같다.


인생은 항상 내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잘 풀렸고, 기대한 것보다는 안 풀렸다.

서른은 생각보다 별거아닌 모습으로 다가와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남들은 서른이 넘으면 체력도 달리고 옷도 슬슬 안 맞기 시작한다던데 엄마를 닮은 건지 운이 좋은 건지 아직까지 내 얘기가 되진 않았다.

오히려 20대땐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설렘이라는 감정을, 지금의 직업을 갖고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영상은 내 무수한 새벽들을 흘려보낼 만큼 나를 두근거리게 했고 뻔뻔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심지어 일을 잘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서른 이후부터 자꾸 세상의 눈치를 보게 만드는 건.

결혼할 나이가 됐음에도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이라는 사실.


지난달 회사를 그만두고 한달 째 이직할 회사를 찾고 있는 중인데 

면접장에서 가끔 그런 질문을 들을 때가 있다.

가까운 미래에 결혼이나 출산 계획이 있냐는 것이다. 

나이가 있으니 노파심에 묻는 거겠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이를 낳을 생각은 전혀 없어요, 결혼은..모르겠어요. 지금 만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대충 이렇게 설명하면서 면접관들의 눈치를 본다.

언제까지 이토록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다녀야 할까.


정상과 싸우는 비정상이 되고 싶지 않다.

편견과 그만 싸우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잠재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그냥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

사람에게든 회사에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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