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netmom Oct 05. 2022

01 미안해 딸. 네가 내 우주여서는 안 됐었는데-1

나의 첫사랑 첫째-1

 7살 루비우리 집 네 명의 아이들 중 첫째입니다.

 세 번의 유산 끝에, 이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난임으로는 전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경주의 한 한의원에 가서 약을 지어먹고는, 그 달에 바로 들어선 아이지요. 유산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적어보도록 하고, 이제부터는 그렇게 태어난 첫째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문화센터 열심히 다니던, 꼬꼬마 아가시절 루비입니다.

 네 번째로 나를 찾아온 아이. 끔찍이도 소중하다는 말이 딱 이 아이에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세 번이나 아이를 보내면서 몸도 정신도 제대로 붙잡고 있기 힘들었던 저에게, 루비는 그야말로 축복이었습니다. 산 송장이나 다름없었던 제가, 뱃속에 루비가 자라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는 신기하게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덧이 생기고, 태동이 생기고, 아이가 점점 제 존재를 알리는 날이 많아질 때 즈음에는 반복된 유산으로 다쳤던 마음이 거의 다 회복되었습니다. 참 고마운 아이지요. 그렇게 저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도치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많은 엄마가 그렇겠지만, 저 역시 태교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사실 이건 첫째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임신 때부터는 태교고 뭐고 정신줄 챙기기에 바쁘더군요.). 출퇴근 길에는 영어동화를 들었고, 퇴근 후 집에서는 정서에 좋다는 책을 읽었고요, 자기 전에는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클래식을 들었습니다. 평소 해산물이라면 냄새만 나도 질색하는 저인데, 희한하게도 임신 후에는 해산물 냄새가 그렇게 싫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입덧 때문에 모든 음식 냄새가 싫어진 터라 상대적으로 해산물 냄새가 덜 싫게 느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저에게 남편은 말했습니다. 아기에게 가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 싫던 해산물 냄새도 싫지 않은 것 같다고. 입덧이 끝나고도 해산물을 먹을 때 큰 어려움이 없었고 출산과 동시에 해산물 냄새가 다시 역하게 느껴졌던 걸 보면, 남편 말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소중했던 아이.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와 저와 처음 눈을 마주했을 때, 저는 알았습니다. 아, 이제 나의 우주는 이 아이겠구나. 나는 이제 죽을 때까지 이 아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겠구나. 그리고 아마도 세상 모든 엄마가 그렇듯, '너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아이로 키워줄게.' 하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그건 그냥 말뿐인 다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아이에게 좋다는 것은 전부 다 했던 것 같습니다. 저를 갈아 넣어서라도 말입니다. 대충 생각나는 리스트만 얘기해 보면 이렇습니다.


1. 모유를 사수하자!

 초유가 아기에게 좋다는 사실은 지나가던 강아지도 아는 사실. 저는 출산 이튿날부터, 아직 제대로 젖이 돌지도 않는 가슴을 조물 거리며 초유를 짜내기 시작했습니다. 젖이 나올 리 만무했지만, 어디선가 계속 자극을 줘야 젖이 잘 돈다는 글을 봤던 기억이 있는지라 틈만 나면 가슴 마사지를 했습니다. 두유가 젖 도는 데 좋다, 물을 많이 마셔야 젖이 잘 돈다, 미역국을 많이 먹어야 물젖이 안 나온다, 온갖 카더라에 정신이 팔려 물을 하루에 2리터도 넘게 마시고 두유도 하루에 두세 팩씩 마셨더랬지요. 평소 미역국은 거의 입에도 대지 않는 제가, 병원에서 매 끼 나오는 미역국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다 마셨습니다. 비위가 상해 웩웩거리면서도 말이지요.

 저는 선천적으로 모유량이 많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초유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모유를 먹이기 위해서는 위에 했던 노력들을 계속해야만 했습니다. 가뜩이나 입이 짧은 저에게는 정말 고문 같은 일이었지만, 모유를 먹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10개월이나 저렇게 먹어 댔습니다. 아이의 수유 간격이 늘어나면서 젖량이 줄어서 결국 분유로 바꾸게 되었는데, 이제 더는 저렇게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제일 기뻤던 기억이 있습니다.


2. 아기 이유식은 엄마 손으로!

 입이 짧은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저는 평소에 요리에는 취미도 흥미도 없습니다. 먹고 싶은 음식이 없으니 하고 싶은 음식도 없었지요.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어린 시절 드래곤볼이라는 만화에 부르마라는 캐릭터가 들고 다니는 캡슐이 있었는데요. 바닥에 던지면 필요한 것이 슝 나오는 캡슐이었습니다. 그걸 보고는 "아 저런 캡슐 하나 있으면 좋겠다! 하나만 먹으면 그날 필요한 영양소가 다 충족되는 캡슐!"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

 결혼 후에야 음식이라는 것을 조금씩 만들어 보기 시작했는데, 지금까지도 요리는 저에게 참 귀찮은 일입니다. 그런 제가, 다른 사람이 만든 이유식은 믿을 수 없어서 아이 이유식만큼은 직접 다 해서 먹였습니다. 매일 쌀을 곱게 갈고, 채소와 소고기를 다지고, 초기에는 체에 곱게 내리고, 3일에 한 번씩 곰솥에 육수를 끓여 얼리고, 필요한 철분량이 부족할까 봐 소고기량을 일일이 재고, 매 끼 다른 메뉴를 먹이기 위해 한 달 단위로 식단표를 짜고. 누군가에게는 별 거 아닌 일일 수도 있지만, 음식을 하는 것도 먹는 것도 귀찮아하는 저에게는 정말 힘든 이유식 기간이었습니다.


3. 책육아, 문화센터육아, 놀이육아, 까짓 거 다 해!

 그뿐일까요. 세 돌 전까지 아이의 뉴런 중 사용 빈도가 높은 부분만 남고는 다 사라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해서, 저는 아이에게 최대한 많은 부분을 경험시켜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영어를 모국어처럼 익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영어로만 말해주고 영어책만 읽어주고 영어노래만 틀어주었고요. 수감각도 있었으면 해서 아직 허리도 못 가누는 아이 눈에 공을 갖다 대며 "one, two" 하며 놀아줬습니다. 아이가 앉을 수 있을 때부터는 촉감놀이, 미술, 음악, 체육, 언어 등 매일 한 가지씩 문화센터에 다녔습니다. 매 학기 분야가 겹치지 않게 문화센터 스케줄을 짜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문화센터가 없는 날에는 그냥 종일 같이 책 읽고 그림 그리고 노래하고 율동하고 밖에 나가서 나무도 만져보고 꽃도 만져보고 지렁이도 찾아보고 놀이터에서 숨이 차도록 뛰어놀기도 했습니다.

 유난스러운 엄마의 냄새가 폴폴 느껴지시나요? 사실 '우리 아기는 이렇게 해 줘야 해!!!' 하고 의무감으로 했다면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저 하루 종일 아이와 시간을 보낼 콘텐츠가 필요했고, 이왕이면 영어로, 이왕이면 숫자로 놀아줬던 것뿐이지요. 아이가 좀 크면서는 제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라 문화센터로 눈을 돌렸던 것이구요. 아이가 심심해할 시간은 전혀 없었습니다. 눈 뜨고 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엄마랑 무언가를 했기 때문이지요.


 덕분에 아이는 8개월 때 이미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멍멍이, 야옹이, 사자, 토끼, 꿀꿀이, 거북이, 자동차, 꽃, 나비, 책, 냉장고 등을 비롯해 개월 수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단어를 알아들었고, 카드를 보여주면 찾아내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비야나 산토끼, 올챙이 노래, 뽀로로 노래 등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면 자주 듣는 노래들은 율동까지 빠짐없이 할 줄 알았지요.


 두 돌이 되기 전에 대부분의 색깔과 숫자를 영어로 말할 줄 알았고,  세돌 정도 되어서는 자기 이름, 나이, 좋아하는 색깔, 음식 등을 문장으로 말할 줄 알았습니다.


 한글도 혼자 뗐네요. 영어만 알려주느라 한글은 따로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세돌이 되기 전에 "엄마 이건 이 글자야? 이건 이렇게 읽는 게 맞아?" 하며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고, 네 돌 즈음에는 아예 유창하게 읽고 쓸 줄 알았습니다.


 7살이 된 지금도 어느 하나 특별히 빠지는 것 없이 잘합니다. 영어로 술술 말도 하고 꽤나 수준 높은 내용의 영어 책도 읽고 내용을 설명해 주고요, 그림이나 노래도 어디 가서 1등은 못해도 상 하나 탈 정도는 합니다. 체육도 잘해서 팀을 나눠 경기할 때 친구들이 같은 팀이 되고 싶어 한다고 유치원 선생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촉감놀이를 많이 해서인지, 처음 느끼는 감각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는 아이입니다.


 사실 첫째만 있을 때는 아이가 특별히 빠르다거나 잘한다거나 하는 감도 전혀 없었습니다. 아래로 동생들을 낳고 키우면서 '아 첫째가 무섭게 빠르고 잘하는 아이였구나.' 알게 된 것이지요.


 어떤가요. 여기까지만 읽어서는 제가 천재를 낳은 것 같지요.

 네. 사실 이런 부분들은 아이에게 감사하고 어느 정도 뿌듯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

.

#inetmom #육아이야기



* 다음 글에 계속됩니다.

* 아이 넷 키우는 워킹맘이다 보니 발행기간이 일정치 않지만 이해 부탁드려요.

* 좋아요&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동화책에서 만난 일상, 그리고 일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