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십, 들어보셨나요?
인턴(intern), 인턴십(internship)이라는 단어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리턴십은 돌아온다는 뜻의 ‘return’과 잘 알려진 단어 인턴십 ‘internship’ 두 단어를 합쳐 만들어졌다. 풀어서 이야기하면 ‘일터로 돌아오(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턴십과 유사한 프로그램’ 정도가 될까. 일터 (노동 시장)에서 한동안 일을 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일터를 떠났지만, 다시 돌아오(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바로 리턴십 프로그램이다. 직관적으로 return-to-work program이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리턴십의 시작과 초기
미국의 경우, 이제는 return-to-work program, returnship program 등의 단어를 검색하면 관련 검색 결과가 수십 만개가 나올 만큼 보편적인 단어가 되었지만 리턴십이라는 단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이십여 년 정도 되었을 뿐이다. 언론과 기업과 정부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고 대중들 사이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것은 십 년이 채 안 된다. 정확히 언제 처음 이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몇 가지 자료를 살펴보니, 2000년대 초반에 투자은행 (investment bank)을 포함한 금융 업계에서 리턴십이라는 개념이 등장했다고 한다. 당시 남성 편중이 더욱 심했던 월스트리트에서는 특히 중간 관리자 및 임원 직급 여성의 비율이 급격하게 낮아지면서 극심한 인력 부족의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2000년대 중반부터 골드만삭스, UBS 등 대표적인 금융기업에서 “리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우수한 인재 영입을 위한 새로운 전략으로 경력직 여성 인력 채용을 공식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켰다.
이렇게 리턴십 프로그램의 선구자 역할을 한 기업들도 있었지만 이런 시도가 곧바로 널리 적용된 것은 아니었다. 공백을 겪은 인력들은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에 뒤처져 있어서 빠른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워할 것이고, 일에 대한 열정이나 욕심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러한 편견이나 의심을 차치할 만큼 절실한 니즈가 필요했던 시절이었다. 초반에는 주로 대학 교육 이상의 고학력 우수 인력을 대상으로 전문 기술이나 지식이 있어야 하는 직군과 산업에 한정되어 리턴십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 왔다.
리턴십의 성장 동력, 실리콘밸리
2010년대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소프트웨어, 모바일, 바이오산업 등을 필두로 실리콘밸리 기술 산업 생태계가 단단하게 성장하면서 STEM 분야 인력난이 큰 과제로 떠올랐다. 많은 기업이 인력 확보 전쟁이라도 치르듯 현존 최고 인재들을 서로 빼앗고 뺏기는 싸움을 계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새로운 묘책이 간절해졌고 실리콘밸리 대표 기업들도 리턴십을 인력 채용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방법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IBM의 경우는 기술 중심 기업들 가운데에서는 매우 빠른 편인 2012년에 리턴십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리고 2016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애플,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現 메타), 넷플릭스, 오라클 등 다수의 실리콘밸리 공룡 기업들이 리턴십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Fortune 1000 정도 규모의 기업에서는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고, 중소 규모의 기업은 리턴십 프로그램 전문 기관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진행하는 경우도 많다. 기업의 특성에 맞게 리턴십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영리 및 비영리 기업들 또한 발맞추어 성장하고 있다. 2021년 6월, 아마존은 리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1천 명을 채용하겠다고 발표해서 주목을 받았다. 직무 범위는 채용, 프로젝트 관리, 비즈니스 운영, 재무 및 회계,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 개발, 품질 관리 등 다양하다. 16주 동안의 리턴십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참가자들은 전일제 정규직으로 전환될 기회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전담 팀을 만들고 기존의 방식과 차별화된 접근 방법으로 인력의 다양성과 경쟁력을 모두 잡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밝혔다.
진화하는 리턴십, 인식과 환경의 변화
누군가가 지난 몇 년 동안 급속도로 확대된 리턴십 프로그램의 긍정적인 변화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경력 보유 인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꼽을 것 같다. 리턴십 등장 초반의 다소 부정적인 선입견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이제는 리턴십 프로그램 지원자들을 능력과 경험을 갖춘 훌륭한 인력 자원으로 여기고 앞으로 함께 일할 미래의 동료로 대우하는 태도가 늘고 있다. 지원자들의 풍부하고 전문성 있는 경력과 높은 업무 능력을 관찰하고 또 직접 경험하면서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하다.
팬데믹 또한 다른 측면에서 영향을 끼쳤다. 통계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미국 노동 시장 기준으로 팬데믹이 시작된 후 최소 3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의적으로 또는 타의적으로 일터를 떠났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학교가 문을 닫고 보육 및 의료 관련 시설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어 가족들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전통적으로 가족 돌봄의 몫을 주로 감당했던 여성들이 훨씬 더 많이 일터를 떠났다. 팬데믹 이전부터 오랫동안 여성 인력이 노동 시장을 떠나게 되는 첫 번째 이유와 같다. 그런데 팬데믹을 겪으면서 남성들 또한 예사롭지 않게 많은 사람이 일터를 떠났다. 리턴십 프로그램의 초반과 달리 더욱 다양한 직군, 산업, 학력과 경력 스펙트럼에 걸쳐 폭넓은 인력 자원들이 필요하게 된 셈이다. 경력을 보유한 이들은 ‘잠재력, 유연성과 업무 적응력이 높은’ 인력으로 인식되어 가치가 높아졌다.
노동 시장의 35% 이상을 차지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 연구 결과도 눈길을 끈다. ManPowerGroup에 따르면, 84%의 응답자가 (여성과 남성 모두 포함) 일하는 동안 중간에 쉬어가는 공백기를 가질 예정이라고 답했다. 아이, 부모, 배우자 등 다른 이들을 돌보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 휴식을 하고 필요한 공부를 하거나 충분히 여행하기 위해서 쉬어감을 선택할 거라고 이야기했다. 돌봄을 이유로 선택한 비율은 74%로 여성이 더 높았지만, 남성도 57%를 차지했다. 자기를 위한 휴식을 선택한 비율은 여성이 84%, 남성이 87%로 유사했다. (중복 답변 가능) 어쩌면 십 년 이십 년 후에는 리턴십의 대상이 ‘모두’가 될 날이 올 수도 있겠다. 인턴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성별과 무관하게 다수의 사람이 겪는 커리어 여정의 한 과정인 것처럼.
다양화, 전문화되는 리턴십 프로그램
점점 더 많은 기업이 리턴십을 전담하는 조직을 꾸리고 프로그램을 정교화하고 있다. 가장 보편적인 리턴십 프로그램은 코호트(cohort) 그룹으로 운영되는데 보통 5-25명 사이의 참가자들이 12~24주 기간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종료하는 형식이다. 프로그램 운영 모델에 있어서는 대표적으로 프로젝트 방식과 상시 진행 방식으로 나뉜다. 프로젝트 방식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생기면 정해진 과제, 목표, 기간에 맞춰서 필요한 인력을 리턴십을 통해 모집하고 프로젝트 종료 후 정규직 채용 여부를 결정한다. 상시 진행 방식은 오픈 포지션이 나올 때마다 수시로 채용을 하고 업무 수행 능력이 검증되면 이어서 정규직으로 전환되어 계속 업무를 할 수 있게 된다. 각 방식의 장단점이 있기 때문에 기업마다 더 잘 맞는 방법을 택한다.
리턴십 프로그램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 조건도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대체로 커리어 공백 기간이 2년 이상이고 경력이 3년 이상인 사람들에게 지원 자격이 주어지는데, 최근에는 1년 또는 18개월 이상으로 공백 기간을 줄인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아마존 리턴십의 경우, 공백의 정의를 넓혀서 본인의 능력치 이하의 일을 하는 ‘underemployed’ 기간도 포함할 수 있도록 완화했다. 리턴십 프로그램 참가 대상의 범위를 크게 넓히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더 나아가 글로벌 기업의 경우, 리턴십 프로그램을 미국 국내에 머물지 않고 글로벌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는데 국가별 노동법과 규제가 달라서 생기는 차이도 있다. 호주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짧은 6개월 공백을 요구하고, 중국의 경우는 1년의 근로계약 기간이 필요하다.
또한 리턴십 대상의 다각화를 위한 노력이 높아지고 있다. 전통적인 리턴십 프로그램 대상이었던 ‘여성’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측면에서의 다양성을 고려한 프로그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군인으로 복무하고 퇴역한 재향 군인(veteran)은 새로운 경력의 진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능력치에 못 미치는 일을 하고 낮은 임금을 받는 시기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민자 또한 잠재력이 큰 대상자들이다. 대표적으로 실리콘밸리 지역은 전체 노동 인력의 40% 정도가 이민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외국인 인력의 배우자 그룹에는 비자 문제로 임금을 받고 일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어 경력의 공백을 경험한 이들이 많다. 다수가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았고 적게는 3~5년, 많게는 10~15년의 업무 경력을 갖고 있다. 아이가 있는 가정의 경우, 공백기를 기다려 외국인에게 발급되는 취업 허가증(work permit)이 나오면 그동안 아이들이 많이 자라서 부모가 모두 노동 시장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잠재력이 높은 리턴십 대상이다.
리턴십 성공 사례 소개
최근 5-6년 동안의 급속한 성장 덕에 리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적으로 노동 시장에 재진입한 사례를 찾는 것은 더 이상 어렵지 않다. 그리고 미국 학위가 없는 외국인의 경우에도 성공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한 예로, 굴지의 한국 대기업에서 엔지니어로 10년 넘게 일한 A 씨는 작년에 페이스북 리턴십 프로그램에 참가했고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페이스북의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밖에도 음악 전공자에서 웹 개발 엔지니어로, 비즈니스 세일즈에서 데이터 분석가로, 원하는 커리어로의 전환을 이루면서 미국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고무적인 성공 사례가 여기저기에서 들린다.
마무리하며
리턴십은 한동안 계속해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는 의견이 많은데, 큰 이유 중 하나는 테크 산업의 인력의 부족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대학 등 고등 교육 기관들과의 협업으로 차세대 STEM 분야 인재 육성을 위한 노력을 병행하면서 이미 경력을 보유한 능숙한 경력자들이 어떻게 더욱 효과적으로 비즈니스 성장의 동력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결책 중 하나로 리턴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초기 단계일 뿐이다. Fortune 500 기업 중에서 리턴십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업은 10%가 되지 않는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리턴십이 인재 채용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될 수 있다는 기대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