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n살 캐나다 워홀 생존기
날씨가 너무 좋았던 9월의 어느 날.
체력 이슈로.. 맨날 늦잠만 자다가, 이 날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Work BC 가서 이력서 수정을 했다. 취업지원센터? 같은 곳인데 구역마다 꽤 많은 지점이 있다. 컴퓨터 사용, 프린트뿐만 아니라 이력서 첨삭도 가능하다고 해서 찾아갔다. 예약이 필요할까 해서 미리 전화로 물어보니 이미 이력서 첨삭은 마감이라 다음날 아침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느지막이 오후 2, 3시쯤 갔는데 이미 대기자가 많아서 또 다음에 오라고 했다. ㅎ 다행히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어서 망정… 그래서 맘먹고 오픈 시간인 오전 9시에 맞춰서 갔더니 나밖에 없었다..
금요일엔 원래 사람 잘 없다고 ㅎ…
전날 도서관에서 수정한 이력서를 준비해 갔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친구가 친절히 첨삭을 봐줬다. 어색한 표현도 고쳐주고, 애매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정리해주고 했다. 나는 이력서를 오피스용이랑 서버용 두 가지 버전으로 작성했었기에, 혹시 둘 다 봐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나보고 참 많은 일을 했다며 ㅎ
나이가 많아~ 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뭔가 하나 했다는 뿌듯함을 앉고, 요새 밴쿠버 성수동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고 해서 찾아가 봤다. 이력서도 돌릴 겸.
트렌디? 못 참지!
바로 Mount Pleasant 마운트 플레젠트라는 곳이다. East Vancouver 이스트밴쿠버 지역에 위치한 동네인데, 나는 버스를 타고 갔다.
이 주변 그렇게 가까운 스카인 트레인 역은 없어서, 버스로 이동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는 응? 이거 맞나? 싶었지만 조금 더 걸어 들어가 보니 정말로 성수동스러운 가게들과 분위기가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캐나다 브랜드 Oak + Fort 오크앤포트 본사도 있었다. 이곳에서는 흔치 않은 ㅎ 트렌디하면서 베이직한 옷들이 많고, 가격도 나름 합리적이라 괜찮은 반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캐나다 사람인 Indeed 인디드에서 한국어 가능자 포지션을 구하길래 사실 여기도 지원했는데, 답이 없네^^… 나중에 다시 기회가 있겠지~
피크닉 즐기기 좋은 날.
그치만 나에겐 피크닉을 즐길 여유 따윈 없다.
당장 일을 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
그래서 시작된 나의 첫! 리쥬메 드롭 resume drop
캐나다는 아직도 지원자가 가게를 찾아가 직접 이력서를 돌리는 방식이 흔하다. 워낙 여러 나라에서 일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온라인 지원했다고 맘 편히 기다리면 답이 오지 않는다. 절대 오지 않는다.
직접 발로 뛰어 나서야 면접의 기회를 잡을까 말까 수준이다.
우선 메뉴하나시키고 앉아서 눈치게임 시작.
배가 고프기도 했다. ㅎ 밖에서 볼 때 괜찮아 보여서 들어갔는데, 나름 유명한 디저트 맛집인 것 같았다. 지점도 여러 곳이라고. 크랜베리와 사워크림, 치즈 등이 들어갔었는데 진하고 맛있었다.
여튼 비운 접시를 건네며, 카운터 직원에게 수줍게 다가가 급히 유튜브로 학습한 리쥬메 드롭 대화를 시도했다.
나: 와 디저트 진짜 맛있더라. 너가 직접 만들었어?직원: 아니, 우리 베이커가 따로 있어.
일단 스몰토크 성공.
어색하지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
나: 사실 나 여기서 일하고 싶은데, 직원 뽑니?
나 요새 일 구하고 있거든~
직원: 음 글쎄 (옆에 있던 직원에게) 우리 요새 사람 뽑나요?
다른 직원: (나를 몇 초 동안 쳐다보다 급 웃으며)
아니 우리 요새 안 뽑아^^
직원: 응 우리 요새 안 뽑는데. 근데 우리 지점 여러 개라서 한 번 온라인으로 지원해 봐~
나: 그래? 고마워. 혹시 내 이력서 두고 가도 될까?
(*보통 당장 뽑지 않더라도 나중에 연락을 줄수도 있다고 한다.)
직원: 응 물론이지.
그렇게 오늘 첨삭받은 따끈따끈한 이력서를 건네주고 문을 열고 나왔다.
오늘의 목표는 시도였으니 이만하면 성공적이다.
그리고 직원 언니들 표정에 웃음기가 별로 없어서 사실 그다지 일하고 싶지 않았어…
카페를 나서면서 바로 건너편에 멕시칸 레스토랑이 있길래 거기도 들어가 봤다. 나름 경리단 멕시칸 레스토랑 1년 경력자라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들어갔지만, 여기도 지금은 직원을 뽑지 않는다고 해서 허탈하게 돌아섰다.
사실 마운트 플레젠트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곳은 Elysian Coffee 엘리시안 카페였다.
그래 이래야 성수동이지 싶었던 외관 분위기.
화창했던 날씨와 매우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기에, 고민 없이 들어갔다.
이날 꽤나 더워서 콜드브루를 주문했다.
사실 정확히 맛이 어땠는지 지금 기억이 안나는 거 보면 그냥 그랬나 보다. ㅎ 나쁘진 않았다.
그래도 포근한 매장 분위기와 새로운 동네,
그리고 밴쿠버에 와서 처음 혼자 카페에 앉아 있어 보는 거라 마냥 좋았다.
날씨도 진짜 진짜 좋았다.
여기에서도 리쥬메 드롭을 시도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니저가 없다고 우선 이력서를 놓고 가라고 했다. 근데 역시나 아마 뽑고 있진 않을 거라고, 다른 지점도 많으니 거길 지원해 보라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동네가 너무 좋아서 여기서 일하고 싶어~
그치 맞지. 나도 여기가 좋아.
라는 직원과의 스몰토크만을 남긴 채 돌아섰다.
생전 처음 남의 나라에 와서 일자리 구하겠다고 이력서를 돌려보는 경험을 언제 하겠나! 이러려고 워홀 온 거 아니겠어!
그리고 생각보다 리쥬메 드롭이 재밌었다. ㅎㅎ 현지에 와서 캐내디언들과 처음 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어서 그런지, 나 혼자 챌린지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처음인 것에 비해 나름 자연스레 해내는 스스로에게 뿌듯함도 느껴졌다.
그런데 사실 이날 메인은 리쥬메 드롭이 아니었다.
예매해 놓은 Vancouver Artgallery 밴쿠버 아트갤러리 전시를 보기 위해 다운타운 방문.
밴쿠버 아트갤러리는 매 달 첫째 주 금요일마다 무료관람이 가능하다. 하지만 반드시 예약을 하고 방문해야 한다. 워낙 인기가 많기 때문에, 전 달에 다음 달 거를 미리 예약해 놓아야 원하는 시간에 관람을 할 수 있다. 나는 정보를 뒤늦게 알아서 급히 찾아봤는데, 유일하게 마지막 타임인 저녁 7시 입장이 남아 있어서 바로 예약을 했다. 예매는 갤러리 공식홈페이지에서 했다.
8시가 갤러리 끝나는 시간이라 1시간 만에 보기 너무 촉박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충분하진 않았지만 생각만큼 타이트하지도 않았다. 결론은 잘한 결정!
입장까지 시간이 남아서 1층에 있던 갤러리 스토어를 구경했다.
(아 아이폰 빛 번짐 진짜…)
뱅크시, 바스키아 등 유명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들 작품과 관련된 상품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뉴욕이랑 비교하자면, MOMA 스토어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예쁘고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정신없이 구경한 것에 비해, 이곳 상품들은 그냥 오 이런 게 있구나 정도? 였다. 기념품 스토어 같은 곳들도 마찬가지다.
상업성은 NEW YORK이 짱이요…
그냥 내 개인적인 취향인 건가
아트갤러리 9월 전시는 컬러가 주제였다.
전시 이름은 A MONOCHROME JOURNEY.
흑과 백 사이에 존재하는 컬러들을 여러 형태로 표현하였다. 각 섹션마다 메인 컬러를 두고, 컨셉에 맞는 작품들이 큐레이션 되어 있었다.
전시의 시작은 흑백.
페인팅뿐만 아니라 조명, 텍스처 등을 활용한 현대적인 작품들이 많았다.
반가운 앤디 워홀의 작품.
전시 한켠에 아이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도 있었다. 역시 가족 중심의 나라 캐나다..
여긴 딱 봐도 레드.
두 친구의 모습이 예뻐 보여서 찰칵.
이 작품 앞에서 찍고 싶어서 몇 분은 서성였던 것 같다. ㅎ 근데 마침 위 사진에서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있던 친구들이 보여서 용기 내어 사진을 부탁했다. 그러고 나서 사실 아까 둘 모습이 예뻐서 찍었다고 원하면 에어드롭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너무 좋다고 해서 보내주었다.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마지막엔 컬러 파티.
마치 궁전 안에 와 있는 듯했던 통로 계단.
어쩌면 전시작품들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다. 사진에는 안 담겼지만 천장 그림이 매우 아름다웠다.
전시장에서 한층 올라오면 또 다양한 작품들이 펼쳐져 있는데, 메인 전시는 아니고 느낌상 신인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훨씬 더 자유분방하고 꾸밈없는 작품들이 많았다.
졸업 전시 보는 느낌.
그중 흥미로웠던 작품.
상징적인 영어 이름들을 가지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아시아인’ 남자로 표현했다. 매칭이 잘 된 건지는 모르겠다. ㅎ
사실 이거보다 훨씬 더 더 많은 작품들이 있었는데, 나에게는 1시간 밖에 허락되지 않았기에 3층은 휘리릭 보고 나왔다. 그래도 메인 전시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전시 말미 나만의 작품 만들기.
시간이 없어 나는 패스.
갤러리에 대한 좋은 첫인상을 남겨준 훌륭한 전시!
해가 지고 나니 더욱 아름다운 갤러리.
갤러리 후문 바로 건너편엔
Fairmont Hotel 페어몬트 호텔 건물이 있었는데, 고풍스러운 건물과 조명으로 장식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멋진 도시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이력서 만들고, 이력서 돌리고, 갤러리 무료관람까지. 3일 치 스케줄을 마친 아주아주 알찬 하루.
이 도시의 매력을 조금 더 깊게 알아차린
9월의 첫 번째 금요일이었다. 오늘도 낭만 밴쿠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