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승띵 Jun 22. 2024

K-직장인의 멜버른 여행기

 시드니에서 황홀한 3일을 보내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뉴질랜드다. 엥? 제목은 멜버른인데요? 네. 맞습니다. 근데 그냥 멜버른부터 쓰고 싶어 졌어요.(?)


 멜버른이라는 도시는 호주 여행 카페에서 처음 알게 됐다. 멜버른 말고도 퍼스, 골드코스트, 브리즈번 등 다양한 도시에 대한 여행 정보가 활발했다. 사실 나에게 호주는 시드니 그 자체였기 때문에 시드니를 제외하곤 크게 관심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하나의 게시글을 발견하게 된다.


멜버른은 뉴욕과 유럽을 섞어놓은 듯한 도시 같아요.


 내 여행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뉴욕에 가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유럽에 가는 것이다. 그런데 멜버른은 한 도시에서 다 느낄 수 있다니... 시간적 여유도 있겠다 충동적으로 멜버른행 티켓까지 끊어버렸다.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왠지 아주 좋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 그 예감은 100% 적중했다. 멜버른 최고!




1. 허투루 만든 게 없는 다양한 문화 시설


 평소 미술관이나 전시회, 박물관 등 문화 시설을 좋아한다면 멜버른은 아주 좋은 도시다. 예술에 깊은 조예를 갖추지 못한 나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구경했으니 말이다. 멜버른 여행 중 하루는 박물관, 미술관, 전시회 투어만 했을 정도다.



 박물관에서는 초등학생 시절 과학책에서 볼 법한 모든 내용들을 실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재연해 놓은 모형들의 높은 퀄리티는 기본이고 관람 동선 또한 아주 편리하게 설계되어 있어 구경하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 층마다 다른 컨셉을 가지고 꾸며놓은 부분도 인상 깊었다. 내가 봐도 흥미롭고 재밌는데 어린 친구들이 보면 얼마나 유익한 시간이 됐을까 싶었다. 멜버른 박물관에서 지불했던 15달러는 전혀 아깝지 않았다.


 미술관은 입구부터 난리 났었다(?) 미술관 벽을 타고 흐르는 물에서 보이는 무지갯빛, 입구에서 버스킹을 하는 남자, 어린아이들이 비눗방울을 불며 뛰어다니는 모습. 문화적 충격을 받은 채 멍 때리고 있으니 어디선가 이런 환청이 들리는 듯했다.



봤지? 멜버른은 이게 일상이란다.

 사소하지만 물품 보관함도 무료라는 점에서 감동받았다. 검은 양복 입으신 가드분들께서 직접 짐을 받아 보관해 주셨다. 미술관에는 피카소, 마네, 모네 등... 나름 대학교 전공 시간에 공부 좀 했다고 낯익은 화가들의 그림이 있어 반가웠다.


 마지막으로 이번 글에서 멜버른 도서관을 빼먹는다면 뭔지 모를 찝찝함에 하루 종일 휩싸일 것 같다(?) 건물 앞에서 체스를 두고 있는 사람들, 공원에 앉아 노는 사람들, 그 사이를 여유롭게 지나가는 트램. 이 3박자가 어우러져 멜버른 도서관 입장을 고조시켰다.



 나에게 도서관이란 조용히 공부하거나 책을 읽어야 한다는 '목적'이 있어야 방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멜버른 도서관은 달랐다. 그런 목적에 부합하는 공간은 물론이고 층마다 다른 콘텐츠를 제공했다. 도서관에서 데이트를 해도 좋을 듯한 그런 느낌?


 "아, 나 혼자였지."



2. 어디서든 많은 공원에서 느꼈던 사람들의 여유로움


 유현준 교수는 '강남'은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쉴 만한 공간이 없고 소비를 부추기는 상점들만 즐비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렇다. 강남역에서 걷다가 좀 쉬고 싶으면 앉을 공간이 없다. 쉬고 싶으면 카페를 가야 한다. 카페를 가면 커피를 주문해야 하고, 결국 나는 쉬기 위해 4,100원을 지불한다.


 과연 멜버른은 어땠을까? 어딜 가든 쾌적하고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널찍한 공원들이 보였다. 공원에서 누워서 자던 뭘 하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괜히 혼자서 불필요한 눈치를 살피다 잔디밭에 앉았다. 그 와중 혹시나 옷에 뭐가 묻을까 봐 최대한 깨끗해 보이는 잔디를 찾느라 바빴다. 예민한 성격이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머뭇거리게 한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잔디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남자에게 내 시야가 꽂혔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잔디밭에 누워 헤드폰을 낀 채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게 느껴진다. 잠시나마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3. 특색 있는 고층 빌딩과 낭만적인 회사 생활


 도쿄 여행기에서도 적어놨듯이 마천루, 스카이라인, 빌딩숲 같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고층 빌딩 보는 걸 좋아한다. 서울에서는 을지로, 강남역, 여의도 정도 되겠다. 그런데 멜버른에서 봤던 고층 빌딩들은 겹치는 디자인이 없고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빌딩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계속 고개를 들고 다니느라 뒷목이 살짝 뻐근하기도 했다.



이 빌딩은 무슨 회사일까?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한참 빌딩숲 사이를 구경하다 점심시간과 맞물리게 됐다. 멜버른 직장인들은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궁금해하던 찰나, 많은 사람들이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근처 공원으로 가는 걸 포착했다. 직원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점심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는 날이란 혼자 조용히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다.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서 구석진 자리에 앉고 에어팟을 낀 채로 잠시나마 방전된 에너지를 충전하고 온다. 멜버른에서 낭만을 느끼기 위해선 부족한 사회성을 많이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 한편에 꾹꾹 담아놓은 기억들이 많은 여행이었다. 버스를 잘못 타서 당황했으나 친절하게 노선을 알려주시며 무료로 태워주신 기사님, 공항까지 가는 방법을 바디랭귀지까지 동원해서 알려준 호텔 직원, 동행이란 걸 처음 구해보고 야리강 산책을 했던 그날 밤.


 이제 마지막 여행지인 뉴질랜드 여행기로 떠나보자. to be continued.

작가의 이전글 전세사기 당한 이야기 좀 그만 쓰고 싶었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