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엄근진 한 새해 다짐
전세사기 상황을 인지한 지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그동안 어둡고 불안한 환경 속에서 한줄기 빛을 찾기 바빴다. 하지만 희망과 절망은 매번 번갈아가며 다가왔다. 가끔 어떤 게 희망이고 절망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최근 나의 첫 브런치북 <전세사기 극복일지>가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알고리즘에 부응하듯(?) 브런치북을 작성한 이후 현재 상황과 못다 한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이전에 말했다시피 임대인은 대학병원 교수, 즉 의사라는 사실에 작은 희망을 느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칭송받는 직업 중 하나니까. 오래 걸리더라도 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의사 임대인을 상대로 채권 압류 및 추심 명령을 했다. 쉽게 말해 급여 압류를 하기 위한 절차를 밟았다. 대학병원 부원장까지 했던 사람이라면 한 달 월급은 얼마나 받을지 궁금했다. 아무리 못해도 내 월급보다 2배 이상 받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손실을 메꾸는데 큰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까고 보니 절망이었다. 이미 다수의 채권자들이 있었다. 이제 나까지 포함해 한 사람 월급을 나눠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 잘난 의사여도 부질없구나’ 싶었다.
<인생 첫 성과급이 사라졌습니다>에서 살짝 언급한 바 있듯이 변호사를 선임했다. 임대차 계약을 성사시킨 공인중개사에게 과실을 묻기 위해서였다. 선순위보증금을 정확하게 고지하지 않고 무조건 안전한 집이라고 설명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최근 대법원 판례 흐름은 공인중개사 과실이 꽤나 높아 보였다. 나도 그런 사례 중 하나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공인중개사 과실이 높아지려면 ‘명확한 사기 의도’가 있어야 했다. 집주인도 ‘전세 사기’가 아닌 ‘전세 사고’를 주장한다. 본인은 사기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금전 상황이 나아진다면 무조건 변제할 의사가 있기 때문에 사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공인중개사 입장에서도 임대인이 자료 제공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 분명하다.
동작구에 위치한 6평짜리 작은 원룸에서 2년 반 가량 살았다. 여기서 ‘살았다’라고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현재 그 집에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고 낙찰되면서 어쩔 수 없이 낙찰자에게 방을 내어줘야만 했다. 내 물건들이 빠진 텅 빈 방을 보면서 기분이 참 이상했다. 이제 막 30대 문턱을 넘은 나에게 가혹한 현실은 상처로 남았다.
그동안 벌어진 상황을 부정하기 바빴다. 가끔씩 다가온 일말의 희망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잘못한 게 없는 피해자니까. 그런데 이런 생각은 감정에 얽매인 예민한 사람으로 변해갈 뿐이었다. 물론 당연하지 않다. 당연한 건 없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건, 내 삶이 마냥 절망적으로 흘러가진 않았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를 깃털이라 표현하고 싶다. 불어오는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가는 한 없이 가벼운 깃털. 그만큼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깃털도 어딘가에 안착하는 순간이 분명히 온다. 그곳이 꽃잎이나 들판 위면 좋겠지만 쓰레기 더미일 수도 있다. 그래도 조금은 괜찮다. 바람은 다시 불어올 테고, 언젠가는 따뜻한 넓은 들판 위로 나를 앉혀줄 거란 확신이 있으니까. 성큼 다가온 2025년 한 해는 이렇게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