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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띵 Dec 18. 2024

업무적으로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예비 7년 차 디자이너의 마음가짐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하다’고 말한다. 조금 살을 붙여 말하자면 ‘상냥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한다. 이 표현에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하지 않는다. 어렸을 적 부모님은 예절을 최우선으로 가르치셨다. 타인과 함께하는 상황에서는 혹여나 버릇없게 보이지 않을까 촉을 세우고 살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친절한 사람’처럼 비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스스로 친절한 사람이라는 믿음에 의구심 들기 시작했다. 한 달 전쯤 평화로운 점심시간이었다. 직장 동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팀장님께서 같은 자리에 있던 직원 A의 칭찬을 하셨다.


다른 팀장님들끼리 밥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 팀 직원 A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다들 예의 바르고 친절하다고 칭찬이 자자하더라고요.


 무슨 얘긴가 했더니 직원 A가 타 팀 팀장님께 보낸 메일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 회사는 타 팀과 협업하는 업무가 많은데 직원 A가 휴가를 앞두고 인수인계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그 메일이 아주 자세히,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혹시 모를 사소한 부분까지 모두 적어 보내는 정성에 타 팀 팀장님께서 감동을 받으셨다. 이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른 팀장님들도 “직원 A? 인사도 잘하고 딱 보면 착해 보이잖아요.” 같은 칭찬 릴레이가 시작됐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마냥 웃을 수 없었다.


 최근 '친절하지 않은 행동'으로 지적받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휴가를 앞두고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관련 실무자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PL(Project Leader)이 갑자기 휴가 인폼 메일을 왜 보내냐는 것이었다. "이게 뭔 소리지? 휴가를 가니까 보낸 건데 왜 보내냐니?" 머릿속에 물음표가 가득해진 채로 정직하게 말씀드렸다. “제가 다음 주부터 휴가 예정이라 인수인계 내용 전달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휴가 간다고 언제 얘기했었는데요?


 이래 봬도 직장 생활 6년 차다. 그런데 신입 사원이 할 법한 실수를 해버리다니. 생각이 짧았다. 내가 속한 팀 대장은 팀장님이니까 팀장님께만 휴가 간다는 말을 했다. 그로 인해 나와 같은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관련 실무자들은 아무도 몰랐었고 불편한 상황이 생겨버렸다.


 “그리고 휴가를 가니까 공백 기간에 백업을 요청한다는 거예요?

  요청하면 어느 부분을 어떻게 하면 되는지, 그런 건 하나도 안 적혀 있던데요?”


 내가 작성한 메일은 정말 단순하게 ‘인사-휴가 일정 공유-백업 파일 첨부-인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니 참 ‘불친절한’ 메일이었다. 어찌어찌 뒤늦은 수습을 했지만 이미 찝찝해져 버린 내 마음은 휴가 때까지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나라는 사람'은 회사 울타리 밖에서 보면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회사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그 울타리 안에서 만큼은 '불친절하고 업무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비칠 확률이 높다. 최근 들어 업무적으로 비교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 겹치다 보니 디자이너로서 의구심과 부족한 자질에 신빙성까지 더해주는 것 같았다.


 그저 잘 웃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조금 까칠해도 내 업무만큼은 확실하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다가올 내년을 준비하는 예비 7년 차 디자이너의 마음가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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