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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그린 Jun 29. 2022

난 너에게 마음을 보내는 중


어릴 때부터 나보다 뭐든 잘했던 남동생을 부러워했다. 공부도 잘하고 손재주 좋은 아들은 어딜 가나 사랑받았다. 할머니 댁에 가면 그 사랑이 더 눈에 띄었는데, 묘하게 난 투명 인간이 되는 기분이었다.


선선한 초가을날, 평상에 앉아서 할머니 집 주변을 거니는 고양이를 보았다. 나는 동물을 무서워했다. 머리로는 동물과 친해지고 싶어도 언젠가 해칠지 모른다는 긴장이 나를 지배했다.


슬금슬금 걸어오는 고양이의 화려한 무늬 사이로 눈이 매섭게 빛났다.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호들갑을 떨었는데 할머니는 “아이고, 시끄러워 죽겠네. 나비야 나비야 하면서 예뻐하면 되지”라며 핀잔을 주셨다. 무안했고 기분이 나빴다.


그때 결심했다. 똑같이 고양이를 무서워 한다면 누나인 내가 동생보다 대단하다는 걸 보여주리라. 할머니가 안고 있던 고양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허세를 장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쟤는 못 안아요. 제가 할게요. 나비 주세요”


내 무릎 위에 올라온 고양이. 힐끔 나를 보던 눈빛. 나는 마음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최대한 티를 내지 않기 위해 태연한 척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으흠“ 소리를 내며 예쁘다고 연발했다. 고양이는 오래 있지 못하고 발톱으로 내 맨다리를 밀어내고 사라졌다. 텅 빈 내 허벅지에 작은 소름이 돋았다.


그날의 현장은 사진으로 남아있다. 다홍색 구두를 신고 체크무늬 치마를 입은 내가 고양이를 안고 있는 모습. 앞니 하나 빠진 채로 활짝 웃는 얼굴이  즐거워 보였다. 실상은 인정받기 위해 쥐어짜  용기였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고양이를 더 무서워하게 되었다. 뒷골이 서늘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는데 고양이는 길가에서도, 친구 집에서도 만나곤 했다. 그리고 복합쇼핑몰 안 실내 동물원에서 제대로 고양이를 만났다.


원래 동물원을 선호하지 않지만, 아이가 잡아끄는 손에 안으로 향했다. 고양이가 잔뜩 모인 방에서 나는 아이 뒤에 숨어 있는 꼴이었다. 4살 아이가 먼저 만져보게 하고 안도하는 유치함도 보였다.


사람들의 방문에 이미 익숙한 고양이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잠이 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을 보이지도, 눈을 부릅뜨지도 않았다. 고마웠다. 보드라운 털을 만지고 나서 뭔가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히 길에서 만난 개냥이들은 피하지도 않고 다가올 때도 있었다. 반면 내가 놀라는 소리에 덩달아 놀란 고양이를 보면 미안했다. 동물 학대가 심한 요즘, 자유롭게 다니는 동물들의 안전도 옛날 같지 않아 안타깝기도 했다.


너희와 친해지면 좋겠지만 그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다. 그래도 작은 마음이라도 보내본다.




친해져야 하는 이유     

열풍이 불었다.

너를 사랑하고 너를 품에 안는 일.

     

그 열풍을 직접적으로 맞으며

나 또한 얹혀 가려 했으나

자꾸만 작은 아이가 내 발목을 잡는다.     


그날도 깊숙한 곳에서

부글부글 올라오는 것은

너를 이용해 내가 인정받는 것.  

  

따뜻하고 몽실한 것이

묘한 기분에 친해질 뻔했는데

다시 마음의 절교를 했다.     


그 눈빛은 다정하지 않았다.

여백이 너무 많아서.

세로로 죽 길게 난 모양 때문에.  

   

나이가 들었으면 좋아해야지.

대화에 끼려면 너에 대해 알아야 해.   

  

새롭게 생겨난 이유로

손끝 저린 것을 숨기고

보드라운 것을 만져본다.   

  

나를 노려보았다면

당장 튀어 나갔을 텐데

너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저 기꺼이 배를 보이고

흙바닥을 뒹군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그게 당연한 줄만 알았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에도

하얗게 부풀어 오른 배가 날 유혹했지만
단 둘뿐인 지금 그냥 스쳐 지나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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