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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그린 Jul 23. 2022

4살 아이가 좋아하는 유행어


작년 크리스마스 즈음 ,산타 복장이 택배로 도착했다. 남편이 딸에게 이벤트로 놀라게 해주겠다며 주문한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행사날 어린이집에서는 이미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셨고 사진도 남겼다. 아이는 받은 선물로 한껏 들떴고 어서 풀어보자며 재촉했다. 괜히 나도 신나서 아이에게 물었다.


“산타 할아버지 보니까 어땠어?”

“산타 하버지? 선생님인 것 같은데?”

이미 알아차렸구나. 작년엔 따로 체육 수업을 한 적도 없고 남자 선생님은 온 적도 없을 텐데 아이는 선생님이 가짜 수염을 달고 나타난 것을 알고 있었다.


그때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메리 크리스마스! 하하하 산타할아버지입니다”

어색하기 그지없는 산타의 등장이었다. 아이는 무서운지 내 다리를 붙잡고 뒤로 숨었다. 남편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지 수염을 내리느라 바빴다. 웃음 참기에 실패한 나는 계속 으하하 웃기 시작했고 남편의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에도 참기가 힘들었다.


처음엔 할아버지처럼 그럴싸하게 하더니 이내 연기도 포기하고 본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얼어버린 아이를 무릎 위에 앉히고 엄마 말 잘 듣겠다는 약속과 함께 선물을 주었다. 산타가 가고 난 자리를 계속 바라보던 아이가 그제야 미소를 보였다.


“우와 선물 또 주셨네? 산타할아버지가 또 오셨나 봐”

“...아빤데”

“아빠? 아냐, 아빠 아닌데”

“아빠야. 아빠가 주고 갔어”

확신의 찬 목소리로 말하는 아이에게 서프라이즈는 실패였지만 행복한 기억은 남았다.     


그렇게 아빠 산타가 준 선물은 콩순이 이 닦기 놀이였다. 처음에는 잘 가지고 놀더니 조금 지나자 쳐다보지 않고 소리를 켜면 극도로 싫어했다. 아빠 산타는 잊었는지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들어서 다시 놀이하기 시작했다. 실물 칫솔을 가지고 하마 이를 닦아주고 거울로 자기 이를 연신 관찰했다.


“엄마, 이가 빠지면 어떻게 돼?”

“나중에 이가 빠지게 되면 또 새로운 이가 나. ”

“어떻게 빠져?”

“흔들흔들하니까 영차하고 빼줘야지. 빠진 이빨은 이빨 요정한테 주고”

“아, 이빨 요정이 가져가면 새로운 이빨을 가져오는 거지? 그렇게 쏙쏙 나는 거고”

요 녀석이 술술 이빨 요정에 대해 읊어댄다. 이건 아무리 봐도 영상에서 본 내용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핸드폰에서 나오던데”


역시나 그랬다. 아이에게 미디어를 보여주는 일은 어린이집 가기 전에 15분 정도 티비를 시청하거나 잠시 잠잠해져야 할 때 본인 동영상 사진을 보여주곤 했다. 그리고 “끄자”라는 말이 나오면 직접 끄고 핸드폰을 올려 두었다. 웬만하면 안 보여주고 싶지만 다 적용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도 아이가 하나이기에 평화로운 협정이 가능했다.


어느 날, 카카오톡 메시지 창 화면에 얼핏 보이는 이모티콘에 아이가 관심을 보였다. 하도 보여 달라고 성화를 부려서 뽀로로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크롱”을 찾아 소리를 들려주었다. 함박웃음이 된 아이는 스스로 화면을 넘기면서 감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며칠 전, 아이가 놀이하다가 “하, 노잼”이라고 했다. 나는 헉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노잼??”

“응. 하, 노잼”

아이는 해맑고 기쁘게 대답했다. 순간 스치는 기억은 이모티콘 속에서 한숨을 푹 쉬는 표정으로 “노잼”을 외치던 그림이었다.


“노잼을 어떻게 기억한 거야. 무슨 뜻인지 알아?”

“잼을 이르케 이르케 바르다 없어지는 거야.”

“맙소사..”

“히히. 토잼~”


이모티콘 속 표정을 보고 지루한 상황에서 쓰인다는 것을 대충 안 것일까. 이래서 미디어가 무섭다는 생각과 함께 “이제 이모티콘 안 보여줄 거야”라고 했다.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말을 꺼낸 나 자신도 웃겼다.

 

괜히 그 말이 아이 입에서 나오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에 차단부터 하고 싶었다. 아이는 내 반응이 웃기는지 “토잼. 그래 토잼”이러고 다녔다. 그 뒤로 크게 반응하지 않고 조용히 웃기만 했다.


핸드폰을 넘겨줬을 땐 아이가 무엇을 하든 그 시간 동안 방관하게 된다. 노출되는 시간을 허락한 것도 나였으니 습득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이모티콘은 잘못이 없는데 그냥 조금 놀랐다. 말을 잘하는 녀석이 이제 줄임말까지 섭렵하면 아이다운 귀염성이 너무 없지 않느냐는 내 걱정이었다.


41개월이 인생의 노잼 시기가 벌써 온 건 아니겠지. 당분간 이모티콘 말고 다른 것으로 대체하면서 조절해 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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