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아홉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 이야기입니다
내 고향 금산은 해양 낚시의 명소다. 면적은 62.08㎢, 인구 6천 명.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인데, 겨울이면 감성돔, 봄에는 볼락과 농어, 여름엔 장어, 가을엔 갈치가 많이 잡혀 전국의 낚시인들이 몰려든다. 그래서 금산 앞바다에는 해양낚시공원까지 조성이 되어있다.
유년시절 내 어린 손에 가장 잘 잡혔던 고기는 문저리였다. 돔이나 장어, 농어도 더러 잡았는데, 문저리든 돔이든 어머니는 그날 상에 올릴 것을 남기고는 바로 손질을 해서 바구니에 말리곤 하셨다. 해풍에 말려 찜이나 탕을 하면 쫄깃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났다.
섬소년의 입맛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하다. 어디서든 바닷고기가 나오면 참 좋은데, 청와대 밥상에서도 야채와 바다고기는 늘 반가웠다. 그래도 청와대 밥상에서 기억에 남는 생선요리를 꼽으라면 ‘도미찜’이다.
참돔을 쪄서 간장소스를 곁들이고, 위에는 파릇한 미나리를 올리는 도미찜은 요란하지 않고 깔끔하다. 참돔, 감성돔, 옥돔, 줄돔, 자리돔 등등 돔은 종류도 다양한데 놀라운 것은 돔이 자그마치 30년에서 50년을 사는 장수 어종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회갑연이나 혼례상에 도미찜이 오른다고 한다. 장수의 의미,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며 살자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남북정상회담 테이블에도 도미찜이 나왔고, 여당 원내대표단 초청 만찬의 메인 요리도 ‘도미찜’이었다.
2020년 1월 1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여당 원내대표단 초청 만찬이 있었다. 이인영 원내대표,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12명의 원내 부대표단과 함께 자리를 했다.
대통령님이 먼저 넥타이를 푸시며 편하게 밥을 먹자고 말씀을 하신다. 연말에 검찰개혁법과 선거법을 통과시키느라 고생한 이들을 배려하는 마음이시다. 함께 넥타이를 풀면서 마음이 찡하다. 큰 산 하나를 넘은 느낌이랄까. 사실 선거법과 검찰개혁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후 장장 259일 동안 패스트트랙 정국이 계속됐다.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표결에 자유 한국당은 끝내 불참을 했고, 여야 5당 공조를 통해 극적으로 법안 처리가 이뤄졌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 정부 1호 공약인 검찰개혁 입법의 '두 축'이 완성된 것이다. 대통령님께 1호 공약 축하드립니다,라고 말하며 박수를 쳤더니 모두 호응해서 박수를 보낸다. 가슴이 벅찼다.
그동안 검찰개혁을 위한 노력들은 계속되어 왔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검찰만이 기소권을 가지는 기소독점주의의 예외로 고위 권력 비리 등에 특별검사를 임명하는 특별검사제를 도입하는 성과를 냈다. 노무현 정부 때는 총장을 중심으로 하나의 유기체로 움직이는 검사동일체 원칙을 폐지했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데 공을 들였다. 그러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기대는 수포로 돌아갔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기신 회고록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돌파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회한의 글이 많다.
민주정부의 검찰개혁 노력과 아쉬웠던 부분까지를 모두 지켜보신 분이 바로 문재인 대통령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처음부터 제도개혁에 방점을 두고 검찰개혁을 시작하신 것이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신설이라는 민주정부 3대 20년의 숙원사업, 아니 온 국민의 숙원사업은 비로소 우리 정부에 들어 첫발을 뗄 수 있게 됐다. 기적 같은 일이다.
대통령님이 생각하신 검찰개혁의 첫 단추는 법무부의 비검찰화였다. 법무부 산하에 검찰이 있지만 사실 법무부에는 검찰 관련 일 말고도 인권 옹호, 출입국 관리, 교정 등의 중요한 업무들이 산재해있다. 하지만 법무부를 온통 검찰이 장악하면서 여러 문제들이 생겼다. 법무부를 통한 검찰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검사 한 명의 권력만도 막강한데 자그마치 2천 명이 넘는 검사들이 모인 곳이니 그 권력이 얼마나 막강할지. 막말로 맘만 먹으면 죄 없는 사람도 얼마든지 죄인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다. 그러니 지난 역사 속에서 검찰에 찍힌 수많은 이들이 검찰 권력의 먹잇감이 되고 말았지 않았던가.
법무부의 비검찰화는 시작부터 어려움에 봉착했다. 비검찰 출신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할 조국 장관은 그 뜻을 펼치기도 전에 검찰의 수사대상이 되고 말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통령의 인사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검찰은 자신들이 생각하고 행동한 일이 옳다는 신념 주의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그게 검찰 공화국을 만드는 동력이라면 그 신념을 깨트리는 일이 어디 쉽겠는가? 후임인 추미애 장관도 순탄치 않았다. 추 장관의 아들 관련 수사는 무리수를 두었지만 전원 무죄가 나왔다. 하지만 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 정보는 언론으로 흘러 들어갔다. 피의자 모욕주기가 거침없이 자행됐다. 검찰 왕국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기소 전 공개 금지 조항은 지켜지지 않는다. 수사 검사는 매주 브링핑을 한다. 강금실 전 장관의 말씀처럼 검찰의 홍보비가 지나치게 많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으로 벌어지는 일들이다.
검찰의 또 다른 칼날은 정무수석인 나를 향하고 있었다. 육군 현역 복무를 잘 마친 아들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강원도 고성에서 그리고 인재에서 가족 캠핑을 하던 날이었다. 사실 청와대에 근무하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면회 한 번을 제대로 못 간 아빠였다. 언젠가 뉴스를 보는데 군인들에게 새로 지급된 방한복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아들이 스쳐갔다. 화면에서 잠깐 만나는 아들의 얼굴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런 아들의 군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고기를 구워주고 있는데, 뉴스를 보라는 연락이 왔다. 링크를 걸어준 뉴스에는 내가 라임 관계자에게서 뇌물 5천만 원을 현금으로 그것도 청와대에서 받았다는 이야기다.
웃음꽃이 피었던 캠핑장에서 가족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청와대 검색대를 현금다발을 들고서 통과해서 집무실에서 뇌물을 전달했다는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무엇을 공격하기 위한 시나리오일까. 도대체 무엇을 스크래치 내고 분탕질하기 위해 이런 날조가 필요했을까 생각하니 참담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없는 죄를 만들고, 죄 없는 사람을 몰아가는 이 수법은 그들에게 얼마나 익숙한 것일까를 생각하니 분노를 넘어 소름이 끼친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날조된 혐의사실은 언론에 마구잡이로 흘려지고, 언론은 마치 사실인 양 대서특필을 한다. 역시 국민의 알 권리라는 미명이 따라붙는다. 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 앞에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며 답변을 했다. 단돈 1원도 받은 적이 없다고. 이런 가짜 뉴스를 듣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하는 국민들은 또 무슨 죄인가. 참담하고, 씁쓸했다.
이후 강기정을 잡아주면 형량을 낮춰준다는 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금품수수 역시 날조라는 사실이 증명됐다. 금품수수가 있었다는 헤드라인으로 공직자인 내 명예를 실추시킨 조선일보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언론중재위에서도 언론사의 잘못을 인정했다. 문제는 정정 보도에 대한 합의였다. 조선일보 인터넷판에 실렸던 오보와 똑같은 크기, 똑같은 면에 정정 보도를 게시해 달라는 나의 요구가 합의가 안 된 것이다.
뒤처리가 이렇기에 언론에서는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과장보도, 허위보도를 한다. 하지만 가짜 뉴스라는 것이 확인된 이후에는 보일 듯 말 듯 작은 크기의 정정 보도로 마무리 짓는 것이 관행이다. 허위보도나 가짜 뉴스를 할 때는 대문짝만 하게 1면에 싣고 정정하거나 사과할 때는 보일 듯 말 듯 싣는 이런 관행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과연 언론의 자유일까. 기사가 나가기 전 기자는 나에게 전혀 확인을 하지 않았다. '김봉현 씨가 돈을 줬다는 진술을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사실관계 확인을 하는 것이 최소한의 취재 원칙이 아닐까.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법이다. 그동안 검찰은 수사 개시권, 수사지휘권, 수사 종결권, 기소독점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수사를 시작하고 싶으면 수사하고, 종결하고 싶으면 종결하고,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권리 또한 독점하고 있었다. 일본은 수사권은 경찰이, 기소권은 검찰이 갖고 있다. 독일은 수사 후에 혐의가 확인되면 검사는 무조건 기소를 해야 된다. 재량권이 없다는 의미다. 미국과 영국은 수사권이 없고 검사장을 선출로 뽑는다. 독일, 프랑스 검찰은 독자 수사 인력이 없다. 하지만 한국 검찰은 무소불휘다. 어떤 견제 장치도 없었다.
하지만 검찰의 극렬한 저항 속에서도 검경수사권 조정안과 공수처법은 국회를 통과했다. 지금 검찰의 직접 수사가 가능한 범죄는 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6개 분야와 경찰공무원의 범죄로 제한된다. 서울, 대구, 광주를 제외하고 전국 검찰청 특수부가 폐지됐다. 직접 수사 담당 부서가 없어지고 형사부와 공판부가 강화됐다. 사건 관계인을 검찰청에 공개 소환하지 못하고 심야 조사도 폐지가 됐다.
검찰을 개혁하기 위한 이 치열한 과정을 모르는 이들은 조국, 추미애 등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정권과 검찰총장의 불협화음에 피로감부터 느끼겠지만 이 모든 과정은 한마디로 전쟁이었다. 제도 자체를 바꿔서 검찰개혁의 틀을 새롭게 하기 위한 역사였다.
이제 역사의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고 해도 검찰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릴 수 없다. 시간이 더디게 흘러도 검찰개혁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검찰개혁을 위한 열차는 출발했고, 어려움 속에서도 멈추지 않을 것을 믿는다. 그것은 바로 국민들이 촛불을 들어 우리 정부를 만들어 주신 이유이기 때문이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