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열넷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 이야기입니다
청와대에 들어간 뒤에 맞는 첫 설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대통령님께 세배를 드리러 갔다가 먹은 평양온반이다. 수석들이 세배를 드리러 관저로 가니 대문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분은 여사님이시다. “돈보스코 씨, 어서 오세요.”
여사님이 다정한 인사를 건네신다. 내 천주교 세례명을 기억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관저로 들어 고운 한복 차림의 대통령님과 여사님께 세배를 드렸다. 두 분도 같이 맞절을 하신다. 덕담과 함께 세뱃돈도 주신다. 나이를 먹은 뒤로는 받아보기 힘든 귀한 세뱃돈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대통령님은 관악구 일대에서 도시락 배달 활동을 하셨고 그 뒤에 양산에 다녀오셨다. 어머님을 모시고 성묘도 다녀오시고 차례도 지내셨다고 한다. <사랑할까, 먹을까 - 어느 잡식 가족의 돼지 관찰기>라는 책도 읽으셨다는데 돈가스와 고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돼지 사육 현장을 보면서 겪는 고민과 딜레마를 담아낸 책이라고 한다. 대통령님은 채식까지는 안 가더라도 '공장형 사육'을 '농장형 사육'으로 바꾸어야 하는 건 분명해 보인다는 소감을 덧붙이신다.
우리 수석들에게도 책 선물이 있었다. 이정동 교수가 쓴 <축적의 길>이다. 부분 부분 읽어서 정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책이라 요긴한 선물이었다.
바로 옆 방으로 자리를 옮기니 여사님이 정성스레 만드신 평양온반이 준비되어있다. 설에 떡국을 먹는 게 보통이지만 북에서는 온반을 많이 먹는다고 설명해주시면서 ‘평양에서 오실 손님’도 생각해 온반을 준비했다는 말씀을 곁들이신다.
온반은 말 그대로 따뜻한 국밥이다. 북쪽 지방에서 먹는 전통음식인데 닭고기나 꿩고기 또는 소고기로 육수를 낸다. 맑은 고깃국물에 밥을 말아내는 장국밥의 일종인데, 고명 차이가 지역이나 집안마다 있다고 한다. 따뜻한 국밥 위에는 살코기를 찢어 올리거나 육전을 부쳐서 얹기도 하고, 달걀지단을 얹기도 한다. 양념장을 곁들여 내서 입맛 따라 간을 조절하게 하는데, 함께 곁들이는 동치미가 일품이다. 따뜻하고 담백한 온반에 시원한 동치미의 조화가 좋다.
온반을 먹으면서 북미회담과 그 뒤를 이어 남북정상회담까지 좋은 결과들로 이어지길 기도해본다. 아무쪼록 더 깊고 튼튼해진 평화의 시대가 열렸으면 하는 생각이다. 분단으로 인한, 분열로 인한 고통이 우리 대에서 끝났으면 하는 마음을 가져보게 된다.
밥을 먹고 관저를 나오는데 풍산개들이 뛰어논다. 2018년 3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청와대로 이사 온 송이와 곰이, 대통령님이 경산에서부터 키우신 마루다. 개들은 우리가 손을 내밀어도 별 반응이 없고, 그저 대통령님께만 달려들고 꼬리를 치며 애정 표시를 한다. 풍산개 세 마리면 호랑이를 잡는다는데, 그만큼 영리하고 용맹하다는 뜻일 것이다.
그해 설 연휴 내내 사실 너무나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윤한덕 중앙응급의료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이다. 윤 센터장은 전남대 의대를 졸업하고 2002년 국립중앙의료원 응급의료센터가 문을 열 때 응급의료 기획팀장으로 합류했던 분이다. 응급의료 전용헬기 도입, 재난·응급의료 상황실 운영 등 국내 응급의료체계 구축에도 앞장을 섰던 분이다. 또 400여 개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응급진료 정보를 수집하는 체계인 국가 응급진료정보망(NEDIS)을 구축하는 큰 일을 해냈다. 응급환자 이송정보 콘텐츠를 개선해서 환자 이송의 적절성 및 신속성을 제고하는 응급의료이송정보망 사업 등도 추진을 해왔다. 윤 센터장이 그런 일들을 추진하던 시기는 바로 내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회 소속일 때였다.
2015년 민주당 정책위의장 시절 메르스대책 특별위원회 일을 할 때도 인연이 있다. 당시 국립중앙의료원 메르스 대책반장이셨던 분이 윤 센터장이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이틀 만에 음압병상을 만들어내셨는데, 메르스 전부터 구상했던 음압 구급차도 현실화시킨 분이다. 응급실에 음압 격리실을 만들고 병상 사이 간격을 넓혀 이를 응급의료기관 평가에 반영한 것도 윤 센터장이다.
응급의료 분야의 또 다른 거목은 이국종 교수다. 2019년 이국종 교수가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추천 포상 무궁화훈장을 받으러 수여식에 오셨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이던 시절, 이국종 교수의 문제의식에 깊이 공감해 관련 법안 개정안을 추진했다. 우리 의원실 보좌진을 필두로 여당 보좌진들을 이국종 교수 방으로 보내 상주하다시피 하도록 해서 직접 현장의 상황을 파악하고 오게 했던 일들, 응급의료법안을 개정했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많이 배웠고, 많이 응원했다.
14여년만에 이국종교수를 청와대 훈장 수여식에서 다시 만나다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교수는 훈장 수여 소감에서 두 번씩이나 나를 언급하면서 "강기정 의원 덕분에 오늘의 외상센터가 유지되고 있고 아무리 좋은 결정도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을 한다. 고맙고 반갑다.
윤한덕 센터장과 이국종 교수 두분은 우리의 응급의료시스템을 불모지에서부터 이끌어온 영웅들이다. 자기 분야에 대한 혁신은 물론 헌신성과 진정성으로 큰 감동을 안겨줬다. 윤한덕 센터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두고 이국종 교수는 "한반도 전체를 들어 올려 거꾸로 흔들어 털어 보아도, 선생님과 같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두려움 없이 헤쳐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교수의 말처럼 실은 사람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 한 사람의 헌신과 의지가 얼음 같은 세상에 균열을 내고, 그 벽을 녹이고, 나아갈 힘을 만든다.
윤센터장의 죽음은 지병 때문이 아니라 과로사였다.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 같은 분이 일에 치어 쓰러지셨다. 장례식장에서 영정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난다. 미안하고 슬프다. 그 자리에서 맘 속으로 생각을 했다. 이런 분이 진짜 영웅이 아닐까. 이런 분들이 유공자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장례식을 치른 뒤 얼마가 지나고 센터장의 배우자께서 공군에 복무 중인 큰 아들 윤형찬 군이 대통령께 쓴 감사편지를 들고 찾아왔다. '기억하고 위로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것이었다.
편지를 대통령께 전달해드린 다음 날, 나는 대통령께 편지 이야기를 여쭤본다. 유공자 지정에 관해서도 말씀을 올린다. 대통령님은 편지를 공개하고, 훈장 수여보다는 국가유공자로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신다. 사실 국가유공자 예우법 4조 16호에 따르면 국가사회발전 특별공로 순직자로 정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는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경우만 지정되었다며 보훈처의 신중한 입장도 보고 드렸다.
그 후 보훈처는 공적심사위원회가 열렸고 유공자 지정을 결정했다. 국무회의에서도 최종 의결이 됐다. 송갑석, 장병완, 윤영일 의원 등도 힘을 보탰다. ‘국가사회발전 특별공로 순직자’ 지정을 강력 촉구하는 등 보건복지부와 국가보훈처 등과 협의를 해주었다.
유공자 지정으로 보답을 다 할 수는 없겠지만 평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한 그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가족들의 말을 들으니 일주일 중 집에 있을 때는 3시간에 불과했다고 한다. 나머지 시간은 온통 직무실에서 일에 매달렸다. 어떤 일들을 추진해나갈 때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성격상 외부에 드러내는 것을 싫어해서 뒤에서 일을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는 대한민국의 응급의료 시스템을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선진국 수준에 가깝게 수준을 높여놓았다고 한다. 공명심이 아닌 진정성으로 그 어려운 일들을 풀어나갔다.
사무실 한쪽에 간이침대를 놓고 선잠을 자며 하루 19시간 이상을 일에 매달렸다는 고인을 생각하면 맘이 너무 아프다. 몇 번이나 퇴직을 하려 했었다 한다. 아무도 모르는 밤을 지새우며 혼자 겪었을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고스란히 다가온다.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는 윤한덕의 정신을 기리는 장학사업과 더불어서 그의 흔적들을 전남대 의대 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기로 했다. 집무실에 있던 유품 20여 점을 비롯한 유물들인데 동료들과 회의 내용이 남아있는 집무실 화이트보드, 집에도 가지 못하고 쪽잠을 자던 간이침대가 있다. 딱딱한 마사지 침대에 윤 센터장의 부인께서 라텍스를 덧대어서 만든 것이라 한다. 윤 센터장의 온기가 마지막으로 남은 낡은 의자도 보관돼 있다.
또 공공의료 발전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윤한덕상’을 제정했는데 그 첫 수상자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선정됐다. 상 제정의 취지도, 선정자도 공공의료의 역할을 생각하게 한다.
동료들이 펴낸 윤한덕 평전을 보면 순직 전 석 달 동안 일주일 평균 122시간을 근무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주일 가운데 반나절밖에 휴무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남긴 업적과 그의 아픈 흔적들을 보면서 고민이 된다. 과연 어느 한 사람의 헌신과 희생이 시스템을 굴러가게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만약 지금까지 어쩔 수 없이 스스로 갈아 넣는 과정 속에서 응급 의료계를 진전시켜왔다면 이제부터는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우리는 공공의료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닫지 않았나. 윤한덕 센터장의 삶과 죽음에 값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공공의료, 응급의료시스템을 끌어올리고 탄탄하게 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가 했던 고민을 이제는 우리 사회가 해야 한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