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셋
요리책은 아니지만
모두를 위한 밥상이야기입니다
청와대에 있는 동안에 두 번의 5.18을 맞았다. 39주년과 40주년 5.18이다. 39주년 5.18은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이 큰 숙제였다. 해마다 5.18을 맞을 때면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청와대에 있으면서 맞게 되는 5.18은 여느때보다 무거웠다.
특조위 조사가 마무리되고, 진상규명위원회를 띄워야하는데 그 구성부터 매끄럽지가 않았다. 게다가 자유한국당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라는 행사를 개최했는데 망언대회라고 해야 할 수준이었다. 자유한국당 김진태·김순례·이종명 의원은 지만원의 '5.18 북한군 개입설'에 적극 동조하면서 "5.18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5.18 유공자는 괴물집단" 등 망언을 쏟아냈다. “광주는 우리의 적”이라는 시대착오적이고 차별적인 발언들이 이어졌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대표는 유감을 표했을 뿐 해당 의원들의 징계에는 나서지 않는 상황이었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사실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부터 추진을 해야하겠다고 맘먹었던 일이었다.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에도 힘을 보태고, 자유한국당의 오일팔 망언으로 끓어오른 광주의 민심도 전달하는 자리가 필요했다. 광주의 오일팔 원로들과 대통령님과의 오찬자리는 그렇게 오일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취지로 마련이 됐다.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 고등학교 은사님이기도 한 윤광장선생님을 비롯해 리명한, 이강, 안성례, 이철우, 김정길, 이홍길, 정동년 선생님 등 광주의 어른들이 오셨다. 가슴이 찡하다. 나를 눈뜨게 만드신 어른들이시고 오늘의 나를 있게 해주신 정신적 스승과도 같은 분들이시다.
대통령님은 일일이 한분 한분의 손을 잡으시며 반갑게 인사를 건네신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5.18 역사 왜곡을 바로 잡으려 나서시는 광주의 어른들에게 감사한 마음과 함께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다는 여는 말씀을 하신다. 음식을 나누면서도 여러 이야기들이 오간다. 진상규명에 대한 바람, 역사 왜곡 사태에 대한 염려, 진상규명위원회 출범과 5.18진상조사특별법 제정에 대한 기대가 절절하게 전해져왔다.
오찬 테이블에는 단호박편과 해산물 냉채, 방풍 녹두죽, 은대구구이와 두릅버섯산적, 한방갈비찜, 잡곡밥과 달래냉이된장국, 과일과 전통떡, 대추차가 나왔다고 한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날 나는 무슨 메뉴가 나왔는지 제대로 기억이 안난다. 어른들께서 식사를 제대로 하시는지, 어떤 말씀들을 놓치지 않아야 할지에 신경이 쓰여 그저 눈 앞에 있는 달래냉이된장국만 몇 번 떠먹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봄나물국이 향긋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참 서글프다. 달래와 냉이가 파릇하게 돋아나고, 목련이 화사하게 피어나는 찬란한 봄이 광주에서는 참 아프다. 그 아픈 봄이 벌써 몇번째인가. 그 아픈 봄을 함께 해오신 광주의 어른들께 청와대 최고 인기 굿즈인 이니시계와 내가 따로 마련한 목도리를 선물했지만 광주로 돌아가는 어르신들의 뒷모습에 마음은 여전히 짠했다. 진상규명을 위한 여러 절차들이 여전히 더딘 상태이기 때문이다. ‘가짜와의 전쟁’은 이렇게 어렵다. 고의로 삭제됐거나 왜곡 폐기돼버린 기록들, 관련자들의 집단 반발, 침묵과 허위 증언은 넘쳐나는데 조사권한은 제한적이다. 압수수색 요청권이나 동행명령제도와 같은 실질적 조사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역으로 특조위 조사결과가 입증하는 셈이 됐다. 하지만 진상규명위원회는 그 구성부터 매끄럽지가 않았고 온갖 입에 담지 못할 망언과 폄훼가 난무했다. 역사의 시계가 거꾸로 가고 있었다.
5.18 39주년이 다가오자 문재인대통령은 2년마다 참석하겠다던 스스로의 약속을 뒤로하고 5.18기념식에 참석하시겠다고 하신다. 여러 사람들이 내년이 40주년이니 그때 가셔도 된다고 말씀드렸건만 대통령님은 그 너머를 보고 계신다. 대통령님은 그 너머를 보고 계신다.
“아니요. 광주가 이렇게 폄훼되고 고립될 때는 힘을 보태야 합니다. 제가 <운명>이라는 책에도 쓴 글인데 80년 5월 16일에 서울에서는 회군을 하지요. 그 후 광주만 거리로 다시 나오게 되고요. 지금은 모든 사람이 공감을 가지던데, 광주가 포위되고 고립되던 때, 그 시작이 그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을 하면서 광주전남 대선공약 1호로 5.18 헌법전문수록을 제안했다. 그 공약을 단번에 수용한 분이 문재인 대통령이시다.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확대하며 시대를 거스르는 이들은 부마항쟁에서도 부산 독침사건을 말했던 사람들이다. 5.18에 대한 대통령님의 의지는 그렇게 확고하셨다.
5.18 40주년은 코로나로 인해 고민이 많았다. 나의 고민은 방역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었다. ‘추모제는 묘역에서 기념식은 광장에서’ 는 나의 오래된 생각이다. 그 시작은 40주년 5.18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5.18이 이제 광장의 축제가 돼야한다는 생각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장소의 변화만은 아니다. 40년을 넘어서면서 우리는 넘어서야 할 것들이 있다. 그 첫걸음은 묘역에서 광장으로 나오는 일이다. 물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되어있지 않는 현실에서 우리가 한결같이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80년에 외쳐온 구호에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시대의 과제를 담아내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되살아나는 5·18을 바라며 정부는 처음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망월동 묘역이 아닌 이곳 전남도청 앞 광장에서 거행합니다. 5·18 항쟁 기간 동안 광장은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사랑방이었고 용기를 나누는 항쟁의 지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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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앞 광장에 흩뿌려진 우리의 민주주의는 지난 40년, 전국의 광장으로 퍼져나가 서로의 손을 맞잡게 했습니다. 드디어 5월 광주는 전국으로 확장되었고 열사들이 꿈꾸었던 내일이 우리의 오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은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더 많은 광장이 필요합니다.
- 5.18 40주년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 중에서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거행된 5·18 4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는 광장의 의미를 짚어나가는 것으로 시작이 됐다. 거기에 진상규명에 대한 강한 의지가 담겨있다. 진상규명은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며, 진실만이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 것이라는 절절한 메시지가 잘 전달됐다. 묘역이 아니라 광장에 울린 대통령의 목소리에서 이제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승리의 관점에서 5.18을 이야기하는 새로운 출발이 된 것 같았다.
41주년 기념으로 계엄군의 도청진압작전 후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에 들어가 취재를 했던 외신기자 노먼 소프 의 사진전을 보았다. 사진에는 '최후의 항쟁'을 벌였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 등 아홉열사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 너무도 생생한 그 사진들을 보면서 심장이 쿵광거리고 눈물이 핑 돈다.
또 다른 감동은 당시 기자들의 분투다. 신군부가 보안사를 동원해 모든 매체에 대한 보도검열을 자행하자 당시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이 집단사표를 쓴 후 시민들에게 배포한 격문은 감동적이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일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당시 거대언론들은 신군부를 찬양하는데 앞장섰고, 검찰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구속했으며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권력의 충견노릇을 했다. 4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검찰과 언론은 스스로의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반성없는 영혼으로 오늘의 권력을 탐하고 있다. 그러니 생각한다. 지금의 광주정신은 바로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을 완수하는 일이라고.
5.18 41주년을 하루 앞둔 날, 오월의 집 어머니들과 주먹밥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좋은 쌀에 좋은 김, 깨와 참기름이 들어가 고소하고 맛있다. 그 당시에 쌌던 주먹밥은 이렇게 예쁘고 맛있지 않았다. 다급하기도 했고 재료도 충분하지 않아서 투박했다. 고등학생 때 산수동 형님집에 머물렀는데 그때 형수님이 시민군에게 줄 주먹밥을 싸시는 걸 봤다. 보리도 섞여있고 김도 좋지 않았다. 주먹밥을 쌌던 주역들도 당시 주먹밥을 회상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신다.
그런데 나는 한층 맛있어졌다는 주먹밥에 조금 더 욕심이 생긴다. 크기도 초콜릿처럼 한입에 쏙 들어가기 좋으면 어떨까? 치즈가 들어가고, 명란 마요가 들어가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젊은 세대들이 오월의 주먹밥에 더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내가 오일팔 진상규명을 외치던 청년시절은 6.25 전쟁에서 30년이 지난 무렵이었다. 그때 내가 느낀 6.25는 얼마나 아득히 먼 이야기였던가를 생각하면 40년이 지난 오일팔이 이후 세대들에게 얼마나 먼 이야기일까 이해가 된다. 그래도 오일팔이 아주 먼 옛이야기가 아니길 바란다. 그 정신과 가치가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임을 알리고 싶다. 그래서 치즈 주먹밥을 생각하고, 초콜릿만한 한입 주먹밥을 생각한다. 젊은 세대들에게 자꾸만 생각나는 오늘날의 간식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