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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정 Jun 22. 2021

저도어장의 대문어는 분단을 알까

밥상 여덟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 이야기입니다




대통령님과 강원도 산불 현장으로

아들의 군 훈련부대인 22사단으로 강원도 산불이 번지고 있다는 속보가 뜬다. 아내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아침이 되니 22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무사히 교육생들이 잘 대피해 있다는 문자가 온다. 걱정할 가족들을 위해 군이 연락을 해주다니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안 속에 밤을 새우셨을 지역 분들을 생각하니 맘이 무겁다. 아침에 내리는 비가 반갑다. 산불이 번지는 고성에 더 많이 내려달라고 기도를 했다.     

오후 2시, 대통령님을 모시고 고성으로 간다. 이재민들을 위로하러 가는 길이다. 강원도 고성과 속초, 강릉 일대를 덮친 대형 산불은 강풍을 타고 야산으로 옮겨 붙어 고성과 속초 두 갈래로 번지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주변으로 번졌다. 불똥이 수백 미터씩 날아가며 불이 번지는 비화(飛火) 현상까지 겹쳐서 피해 지역이 더 커졌다. 발생 12시간여 만에야 주불이 진화됐고, 17시간이 지나고서야 대부분의 불길이 잡혔다.

      

강원도 산불진압의 배경엔 소방청 독립이

정부는 곧바로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하고, 강원도 고성군과 속초시, 강릉시, 동해시, 인제군 등 5개 시·군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대통령님은 국가위기관리센터로 직접 가셔서 상황판단회의를 열고 총력 대응에 나섰다. 전국 각지에서 소방차 872대와 소방관 3천2백 여명이 강원도로 집결을 했고, 헬기만 110여 대가 동원됐다. 단일 화재 역사상 가장 많은 소방차가 출동한 사례다. 이처럼 전국적인 소방력 동원이 가능했던 것은 앞서 2017년 7월 소방청이 독립된 덕이 컸다.

소방청 독립은 대통령 공약이었다. 정부가 출범한 지 약 2개월여 만에 그 공약은 실현이 됐다. 소방과 해경을 독립시켜 재난 현장조직을 확대하고 청와대 중심의 재난대응 컨트롤타워를 구축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42년 만에 소방청 독립시대가 왔고, 그 결과 전국의 소방인력이 총출동해 강원도 산불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후 코로나 위기를 겪으며 질병관리청을 신설했던 우리 정부다. 필요한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는 점이 든든하다.

       

저도어장의 대문어숙회와 오징어순대    

산불피해 현장 방문 이후 일정은 강원도 경제투어다. 오찬은 지역경제인들과의 만남인데 오찬 장소인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으로 40 명의 기업인과 소상공인들이 오셨다. 오찬 밥상에 오른 메뉴는 동해안 최북단 저도어장에서 잡은 해산물들이다.

고성의 저도어장은 북방한계선에서 불과 1.8km 떨어진 곳에 있다. 지난 1972년 4월 1일 최초 개방되면서 매년 4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9개월간 조업을 하고 있다. 저도어장에서는 문어와 해삼, 홍합과 게가 잡히는데 품질이 아주 좋다고 한다. 특히, 저도어장의 대문어는 크고 맛이 월등해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저도어장 수산물 축제 때에도 대문어 인기가 많다는데 살이 연하고 씹을수록 고소하다. 곁들여 나온 오징어순대도 일품이다. 쌈 미역도 향이 깊고 식감이 좋다. 대문어숙회를 먹으면서 이 엄청난 사이즈의 대문어가 헤엄쳤을 바다를 생각해보았다. 경계가 없는 바다였을 것이다.   

    

평화는 경제다

지역경제인들과 오찬을 마친 후에는 '평화경제, 강원 비전 전략보고회‘에 참석했다. 국가의 비전이라 해도 좋을 ‘평화경제’라는 큰 단어를 강원 경제의 핵심의제로 삼은 강원도 최문순 지사의 전략이 돋보였다. 평화경제를 열기 위해 바닷길과 철도길, 하늘길 등을 활짝 열어 평화관광을 활성화시키고, 강원 평화특별자치도 제도를 도입하고, 강원형 일자리를 창출해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들으며 강원도가 많이 달라지겠구나 하는 기대가 들었다. 해금강을 위로 강원 플라이라는 저가비행기를 띄워 관광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놀라웠던 것은 전략보고회 발표 방식이었다. 방송 프로듀서 출신답게 띄워진 화면과 현장 사람들의 인터뷰가 감각적으로 오간다. 화면으로 설명을 하고 화면  주인공이 현장에 앉아있다 생생한 인터뷰를 하는 방식이라 보고회라기보다는  편의  만들어진 라이브 방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액티브 하면서도 실감이 나는 방식의 전략보고회를 연출해낸 최문순 지사의 능력과 감각에 절로 박수가 나왔다.        


DMZ 평화의 길을 빗속에 걷다

마지막 일정은 DMZ 평화의 길을 걷는 것이다. 비가 촉촉이 내려 우산을 쓰고 걷는데 뿌연 안개 저 멀리 북한 고지며, 금강산이 보인다. 처음 이 길의 명칭을 정할 때 평화 두리길, 평화 아리랑길, 평화의 길, 평화 이음길 등이 나왔다. 영어 표현도 로드냐, 루트냐로 의견이 분분했다. 결론은 평화의 길이다. 깔끔하면서도 의미가 깊다.      

'DMZ 평화의 길'은 한국전쟁 이후 65년 동안 민간인들 출입이 제한됐던 지역이다. 분단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4월 27일 최초로 우리 국민들에게 개방이 된다고 했다. 그 하루 전에 대통령님이 먼저 걷는 것이다. 평화의 길 걷기에는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등반에 성공하신 국립공원 홍보대사 오은선 씨와 그동안 그린피스 후원활동을 꾸준히 해왔다는 배우 류준열 씨가 함께 했다.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오월 광주의 대학생으로 출연했던 배우를 직접 보게 되어서 더욱 반가웠다.

 

대통령과 배우 류준열 씨가 함께 세운 평화 솟대  

22 사단장이 직접 평화의 길을 안내했다. 22사단은 옛날 노무현 대통령이 근무했던 부대라고 대통령은 소개를 하신다. 바다를 보며 걷도록 만들어진 평화의 길은 모래로 된 비포장 길이다. 걷다 보면 전망 데크가 곳곳에 있다. 소원을 적는 카드도 있었는데 대통령님은 ‘평화가 경제다. 2019.4.26 문재인'이라고 적은 카드를 한반도 지도 형태의 소원나무에 거신다. 금강통문 앞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염원하는 뜻을 담은 솟대 설치 행사가 열렸다. '평화로 가는 길 이제 시작입니다'라고 적혀 있는 솟대를 대통령과 배우 류준열 씨가 함께 세웠다. 정말 변화가 시작될 것인가 가슴이 뛴다.      

비무장지대가 어떤 곳인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의 현장이다. 항상 중무장한 군인들이 총부리를 겨눈 채 있던 갈등과 충돌 위험이 도사렸던 곳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남북 정상 합의 및 부속 합의 등을 통해 DMZ 평화지대화의 여건을 마련했다. 우리가 DMZ 평화의 길을 걷는 이 날로부터 1년 전에 있었던 2018년 4월 28일 판문점 선언을 통해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어 나가자는 합의를 했다. DMZ 평화의 길 개방은 그 실천의 일환이다.     

 

이제는 분단의 야만성에서 벗어나야  

우리는 그동안 숱하게 분단의 야만성에 고통받아왔다. 선거가 닥치면 민생이나 경제보다는 소위 북풍이 단골 메뉴였다.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가당치 않은 북풍 공작에 고통받은 분들이다.  

1985년 광주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잡혔을 때도 나에게 덧씌워진 죄목은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죄였다. 1948년 제정된 국가보안법은 형법에 대한 특별법의 지위를 갖고 있다. UN에서도 1992년 이후부터 201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국가보안법 7조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찬양 고무의 판단 기준이 주관적인 데다 법 집행자의 정치적 성향이나 가치관, 시대적 변화 등에 따라 해석과 적용도 제멋대로였기에 그 피해는 컸다. 나 역시 그 덫에 걸린 것이다.

그날 재판관은 우리에게 물었다. 삼민투 깃발이  붉은가를. 그때 함께 체포되어 재판을 받던 동기 한경이 재판장에게 되물었다.  재판장은 붉은 의자에 앉아계시느냐고. 순간 재판정에 폭소가 터졌다.

그동안 민주화를 외쳤던 수많은 학생, 시민들이 얼마나 많이 용공 좌경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을 받았는가. 군사독재 반대를 외치다 군대로 강제징집이 된 이른바 녹화사업의 피해자들도 부지기수다. 용공이라는 이름만 걸면 형사를 붙여 감시하고 억압하는 일이 수월했다. 여론몰이를 위한 간첩조작 사건으로 일생이 망가진 분들도 많다. DMZ 평화의 길이 부디 분단의 야만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길이 되기를 희망한다. 전쟁과 죽음과 갈등의 길을 벗어나 평화롭게 공존하고 상생하는 새로운 시대로 가는 아름다운 길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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