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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정 Jun 15. 2021

나주곰탕을 먹으며
미래에너지를 생각하다

밥상 일곱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 이야기입니다





대통령님, 저기 고흥 거금도가 제 고향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전국 경제투어, 열 번째 방문지는 전남이다. 칠월의 뜨거운 태양을 뚫고 무안에 있는 전남도청으로 향했다. 블루 이코노미(Blue Economy)가 전남이 잡은 미래전략이다. 비전 선포식이 열리는 도청 1층에 블루 이코노미 산업영역을 볼 수 있는 홍보부스가 마련되어있어 둘러보는데 벽에 걸린 남해안 지도가 보인다. 펼쳐진 지도에서 눈길이 머무는 곳은 내 고향 금산(거금도)이다.

“저기 고흥 거금도라는 섬이 제 고향입니다. 돌김도 많이 나고 레슬링 선수 김일이 난 곳이기도 합니다”

“아, 그래요?”

대통령님이 활짝 웃으시며 고흥 금산 지도를 살피신다.

"우리 임종석 전 실장도 이쪽 출신 아닌가요? “

대통령님이 다시 물으신다.

”거기는 건너편 장흥입니다. “

김영록 전남지사가 답을 하신다. 참석자들 사이에 웃음이 터진다. 대통령님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신다.

나는 다시 한번 남해안 지도를 들여다본다. 남해안의 도시와 알알이 박힌 섬들 사이로 푸른 잉크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어린 시절 저 바다는 헤엄을 치고 놀던 나의 놀이터였고, 김 생산용 대나무 발로 생계를 꾸려가던 우리 집안의 소중한 터전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오진 못하지만 갈 때마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고향 앞바다 갯바람만 맞아도 위안이 되는 느낌이랄까.

놀라운 것은 이토록 애틋한 추억의 바다가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할 미래의 바다라는 사실이다. 해상풍력과 해양관광, 바다와 연안에서 꿈꿀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블루이코노미 홍보관이 보여준다. 가슴이 뛴다.  


전기 전공자로서 오래도록 고민해온 에너지

공과대학을 다녔고 전기가 전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에너지는 나의 오랜 관심사였다. 새정치연합의원 시절이었던 2014년도에는 한·중 에너지 협력연구모임 대표를 맡아 의회와 대학의 에너지 협력 외교활동을 하기도 했다. 당시 중국 인민대학에서 열린 ‘국제 에너지 협력포럼’에 ‘한중 에너지 협력연구모임’ 대표 자격으로 참석해 <한·중 에너지 협력이 기타 APEC 회원국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기조발표를 했던 기억이 난다.  

에너지 문제를 공부하면서 세계의 변화를 늘 주시했었다. 2014년 당시 세계 태양광 시장은 이미 100조 원 규모, 풍력 시장은 70조 원 규모였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적으로 신재생에너지 개발과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지만 박근혜 정부는 MB정부와 마찬가지로 신재생에너지 예산을 오히려 줄이는 상황이었다. 미래 먹거리인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해 세계와의 격차를 줄여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었다.

정부가 미온적 태도를 보이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도 지지부진했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는 해상풍력에 대단한 강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는 제대로 된 해상풍력 시설이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관심을 모았던 서남해 해상풍력단지 건설 계획도 진도가 나가지 않는 실정이었다. 신재생에너지로 보기 어려운 폐기물이나 바이오 연료 등만으로 신재생에너지 성과 부풀리기를 하고 있었다. 세계는 앞으로 신재생에너지 중심이 되어갈 텐데,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는 신재생에너지 관련 부품이나 기술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게 되겠구나 싶어 답답했다.      



원전은 에너지 문제를 넘어 도덕의 문제 

노무현 정부 시절,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가 만들어지고 공공기관 이전이 시작됐을 때 우리 에너지의 상징인 한전을 나주로 오게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빛가람 혁신도시에 에너지 기업 한전이 들어온다면 광주전남은 에너지 신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필리버스터를 마지막으로 재충전의 기회가 왔을 때, 독일을 선택한 것도 에너지가 컸다. 탈원전을 넘어 신재생에너지의 선두주자가 된 독일의 변화과정을 직접 보고 싶었다. 그래서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방문학자(Visiting scholar)로 있는 동안, 메르켈 정부의 원자력 윤리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미란다 A. 슈로이어 교수를 만났다.

“어떤 에너지든 족적을 남깁니다. 원전은 에너지 문제를 넘어 도덕의 문제입니다. 핵발전소로 챙길 이익은 현세대가 누리지만 부담은 후손의 몫입니다. 위험천만한 핵폐기물을 다음 세대에게 전가하는 것은 심각한 윤리적 문제입니다. 원전의 경제성을 말하지만 발전소 해체와 폐기물 처리 비용까지 포함시키면 가장 비싼 에너지로 돌변합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싸지도, 안전하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아요.”

미란다 교수의 말에 ‘위험하지만 싸고 효율적’인 에너지라 생각했던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편견이 깨졌다. 에너지 문제에 대한 고민과 결정은 다음 세대까지를 생각하는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태양광 도시 프라이부르크와 함부르크 풍력 박람회

사실 얼마 전 페이스북에 샤워시간은 짧을수록 좋겠다는 의견을 올린 적이 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했던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였다. 독일 가정에서는 대부분 작은 냉장고를 쓰고 필요한 식료품도 매일 조금씩 사다 썼다. 냉난방도 최소로 하고  출근길 등굣길도 자전거를 애용한다. 창틀에는 열 차단 막이 이중으로 설치되어있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일상의 절제력에 공감을 했다.

세계적인 그린시티 프라이부르크에 갔을 때는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 사실 이 지역도 원전 건설 예정지였지만 포도농사를 짓는 주민들과 전문가들이 나서서 변화를 주도했다. 시는 주민들과 협력해 신재생에너지를 정책화했고, 그 결과 프라이부르크에는 솔라타워가 들어서고 집집마다 태양광 집열기가 설치됐다. 세계 최고의 태양광 기술을 보유한 프라운호퍼연구소도 들어섰다. 태양광 전기를 판매한 수익은 주민들에게 매우 소중한 수입원이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함부르크 풍력 박람회장을 찾았을 때, 풍력을 비롯한 재생에너지가 이미 독일의 주력산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전 기업인 지멘스와 에너콘, 센비온 같은 기업들이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었다. 탈원전과 재생에너지가 독일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 한 메르켈 총리의 말은 현실이었다.

정책과 시민의 협력이 이뤄진다면 새로운 에너지 시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독일에서 확인하면서 광주를 생각했다. 조건만 마련된다면 어느 지역보다 똘똘 뭉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광주가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대선공약, 에너지 밸리 확대  

전남도청의 블루 이코노미 전략보고회를 보고 나주 혁신도시 전망대를 향했다.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를 오르는데 2017년 광주전남의 대선공약을 만들던 때가 떠올랐다. 광주 전남을 에너지 신산업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나의 오랜 구상을 더 구체화할 수 있었다. 나주를 중심으로 한 전남 중부는 한전 에너지 공과대학 설립을 통해 에너지 크러스터로, 목포를 중심으로 한 서남권은 해상풍력의 메카로, 여수를 중심으로 한 동부권은 LNG 허브로 하는 삼각축을 구상했다.  

그것은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광주·전남 혁신도시로 보내주신 한전의 ‘제2의 도약’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와 연안의 풍력발전을 통해 에너지 허브가 조성되고 이곳 혁신도시와 한전 공대는 에너지 관련 연구 클러스터로 기술력을 뒷받침한다면 광주 전남을 넘어 우리의 에너지 전환이 속도를 내게 될 것이다.

신안 앞바다에 조성하게 될 해상풍력단지는 8.2GW다. 원전으로 치면 6기에 해당하는 설비투자다. 실현만 된다면 꿈이 현실로 바뀌는 엄청난 성과다. 일단 작게 시작하더라도 목표를 가져야 한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어민들에 대한 보상이 잘되어야 하는데 신안군처럼 발전 수익을 주민께 돌려주는 협동조합 방식이 좋다는 생각이다.     



슬로푸드이면서 패스트푸드인 나주곰탕  

열 번째 경제투어 오찬 메뉴는 나주곰탕이다. 전남의 중소기업 경영자들을 비롯한 경제인들 50여 명과 나주읍성 앞 곰탕거리로 향하는데, 대통령을 향한 환호가 엄청나다. 작은 한양이라 불리는 나주의 한 중심에 자리한 나주읍성과 읍성을 중심으로 발달해있는 곰탕거리의 풍경이 정겹다. 나주의 명물인 곰탕을 먹으러 온 사람들은 물론 주변에 사는 분들까지 나와 문재인 대통령을 함성과 박수로 맞아준다.

곰탕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곰탕이라는 음식은 슬로푸드이면서 패스트푸드라는 사실이다. 곰탕을 끓여내는 사람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고기를 손질하고 핏물을 빼고 오랜 시간 고아낸다. 삶아진 고기는 먹기 좋은 크기로 썰거나 찢어야 한다. 하지만 장터에서 발달해온 음식답게 손님에게는 어떤 패스트푸드보다 빠르다. 자리에 앉기가 바쁘게 상에 올라오는 초스피드 음식이다.

곰탕 국물은 시원하고 맑다. 대파가 숭숭 썰어져 올라가고 계란지단이 고명으로 올라간다. 여기에 잘 익은 깍두기가 빠지면 서운하다. 무로 만든 음식은 뭐든 좋아하는 편인데 그중 깍두기가 일등이다. 나주읍성에 있는 곰탕집은 어디든 기본으로 김치와 깍두기가 맛있다. 순하고 속도 편하고 개운한 음식이다. 나주곰탕 한 그릇이면 고기에 대한 욕구도, 국물에 대한 욕구도 다 풀리니 더 바랄 것이 없다. 전국적으로 나주라는 이름이 붙은 곰탕집들이 성업하는 이유일 것이다.      



인공태양은 정말 불가능한 꿈일까  

얼마 전 인공태양을 만드는 비전을 품은 한전 공대의 착공식에 초대를 받았다. KTX를 타고 나주역으로 가서 빛가람 혁신도시에 있는 착공식장을 향하는데 가슴이 뭉클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혁신도시로 첫걸음을 내디뎌주신 후 문재인 정부에서 에너지 신산업의 미래를 꿈꾸며 만들어낸 결실이다.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있는 동안에도 한전 공대 설립은 가장 무거운 숙제였다.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고, 그 공약의 태동에서 과정까지를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쉬운 길이 아니었다. 2018년 문재인 후보의 공약을 준비하면서 한전 공대 설립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학령인구가 줄어 대학이 사라지고 있는데 또 무슨 대학이냐! 찬반이 뜨거웠다. 하지만 문재인 후보는 결단을 했고, 공약화하였다. 한전 공대는 그냥 또 하나의 대학이 아니라 청년들이 미래 에너지라는 도전과제를 수행해갈 새로운 꿈의 터전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그 꿈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KENTECH·켄텍)는 말 그대로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 대학이다. 착공식의 케치 프레이즈는 '에너지의 미래를 품다'다. 이곳에서 스페이스 X 대표 일론 머스크처럼 새로운 미래를 실험하고 연구하는 이들이 나올 것을 상상해본다. 한전 공대 윤의준 총장님은 학생 모집 요강 인사말에 인공태양을 만들 대학이라는 표현을 쓰셨다. 정말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인공태양의 꿈이, 아니 그보다 더 위대한 꿈들이 이곳 한전 공대에서 실현되길 바란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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