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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기정 Jun 08. 2021

낙동강 재첩은 사이즈가 달랐다

밥상 여섯

요리책은 아닙니다만
모두를 위한 밥상 이야기입니다


부산을 통째로 바꾸겠습니다.

2019년 2월 13일, 대통령님을 모시고 부산경제투어를 위해 부산에 갔다. 사상구에 있는 사상공단 폐공장 대호 PNC가 장소다. 이름하여 ‘부산 대개조 비전 선포식’. 행사장인 대호 PNC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일하던 생산현장이었다고 한다.  의례적인 장소가 아니라 퇴락한 공장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자리. 폐업한 공장에서 열린 부산 대개조 선포식은 그 발상 자체부터가 매력적이었다. 

대통령께서는 "광주형 일자리가 성공적인 첫발을 떼며 '상생형 일자리'로 포용 국가의 전환점이 된 것처럼, '부산 대개조'의 성공은 대한민국 '지역 혁신'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부산대 개조 선포를 격려하신다. 

부산시가 이날 선포한 ‘부산 대개조’의 방향은 ‘연결’, ‘혁신’, ‘균형’ 이 세 가지다. 수년 전부터 광주전남의 발전전략을 ‘연결의 시대’로 잡았던 내 구상과 상당히 일치한다. 연결을 통해 시민의 삶의 질 하락과 도심 쇠퇴의 근본 원인인 도시 내 단절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인데, 핵심은 경부선 철도의 전면 지하화다. 거기에 사상~해운대 구간에 지하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가슴이 뛰는 과감한 네이밍, ‘부산대 개조’ 

또한 부산을 ‘스마트시티’로 변모시켜 시민의 일상과 경제, 산업, 관광 등 전 분야에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구현하겠다는 야심 찬 구상이다. 지하고속도로 건설과 더불어 서·남해 고속도로와 동해고속도로를 U자 형태로 연결해 전국 고속도로 순환체계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거기에 24시간 이용 가능한 동남권 관문 공항 건설을 통해 동북아 물류거점이 되겠다는 포부는 원대하기까지 하다.      

부산을 통째로 바꾸겠다는 통 큰 구상에 가슴이 뛴다. 부산대 개조라는 네이밍 또한  충격적일 만큼 과감하다. 2025년에 결정되는 2030 등록박람회 부산 개최 계획도 벌써 이야기를 한다. 부산은 부산대로 이렇게 혁신적인 그림을 그리고, 김경수 경남지사는 경남에서 부울경 메가시티라는 큰 그림으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통이 크고 배짱이 두둑하다. 지역끼리 협력이 잘되니 중앙정부의 지원을 끌어내는 것도 한결 수월하다.      

왜 부산은 가능하고광주는 실패하고 있는가 

철도 고속도로를 모두 지하로 넣겠다는 부산의 혁신적 구상을 보며 광주역사를 옮기지 말고 반 지하화 하자는 2000년 나의 첫 출마 공약이 생각났다. 하남에서 광주역까지 반지하로 철도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그러면 광주역이 살아나는 것은 물론 도시의 흐름이 달라질 것이었다. 

도시를 연결해서 변화시키자는 획기적 상상력들이 왜 부산에서는 관철되고 광주는 실패하고 있을까. 

지난 2018년 내가 광주시장 후보로 나서면서 제안했던 500만 광역경제권 구상의 핵심 또한 광역교통망권, 광주전남북을 연결하는 철도와 도로, 무안공항의 관문 공항으로서의 강화, 이에 기반한 500만 빅사이즈 자립경제권이었다. 하지만 이 구상은 사장되고 있다. 

연결이 아니면 살 수 없는 시대건만, 지역은 연결의 시대로 진입하지 못한 채 어려움 속에 있다. 수도권이야 국가에서 GTX를 건설해주고, 지하철과 국철, 도시철도 또한 국가가 다 해준다. 하지만 그 외 지역에는 이러한 교통망조차 쉽지가 않다. 경제성을 먼저 따지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헤쳐나가려면 부산대 개조 구상처럼 지방의 권력이 지방과 협력하고, 의회 권력과 손잡고 중앙권력의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광주 전남 전북의 상생과 협치를 통해 지방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역의 미래를 바꿔내야만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낙동강 재첩 사랑

부산대 개조 선포식이 있던 날, 점심은 사상구에 있는 '할머니 재첩국' 식당이다. 초록색 부추가 떠 있는 뽀얀 국물 속에 제법 실한 재첩 살들이 들어있다. 재첩은 쫄깃하고, 국물은 시원하다. 조금 밍밍하다는 느낌도 들지만 밥을 말아 함께 나온 고등어조림을 곁들이니 궁합이 제대로다. 

내 고향에서는 재첩이 아니라 바지락을 잡아서 수제비나 칼국수를 자주 해 먹었는데, 재첩의 맛은 생소하면서도 속이 제대로 풀리는 맛이다. 해장국으로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속을 부드럽게 달래주는 순한 해장국이 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는 재첩국을 드시면서 낙동강 하구의 재첩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이야 섬진강 재첩만이 명맥을 잇고 있지만 사실 최초의 재첩 생산지는 낙동강 하구였다는 말씀이다. 낙동강에는 재첩을 잡던 재첩 배들이 참 많았단다. 씨알이 굵은 낙동강 재첩은 일본 수출 주요 품목이어서 지역경제에도 큰 보탬이 됐다. 하지만 1987년에 낙동강 하구둑이 생기면서 재첩이 사라졌다고 한다. 

재첩과 조개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동양 최대 철새 도래지였던 하구 갈대숲도 사라졌다고 안타까움을 표하신다. 사실 대통령이 되시기 이전에도 낙동강 하구둑 개방에 관심이 많으셨다. 2017년 대선에서도 하굿둑 개방은 공약이었다. 2015년 민주당 당대표 시절에는 낙동강 기수 협의회 등과 하굿둑 개방 토론회를 국회에서 열기도 했다.    

 

낙동강 재첩도 되살아나고지역도 되살아나길 

"재첩국 사이소, 재첩국!"

부산 토박이들은 이른 아침 골목에서 들려오던 재첩 장수 아주머니들의 외침에 아침잠을 깼던 추억이 있다 했다. 낙동강에서 잡은 재첩을 푹 고아서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행상들이 많았는데, 두부를 사듯 재첩국 한 봉지를 사면 온 가족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찹쌀떡이나 메밀묵 사라는 소리가 아니라 재첩국 호객 소리가 추억 속에 있다니, 부산 사람들이 얼마나 낙동강 재첩을 즐겨 먹었는지 짐작할 수가 있겠다. 

대통령님의 당부에 힘입어 부산은 2020년, 낙동강에 재첩을 방류하는 등 낙동강 재첩 복원을 본격화했다고 한다. 씨알이 굵고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낙동강 재첩이 부활하기를 소망해본다. 더불어 늘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우리의 지역들도 당당하게 부활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많던 재첩들이 사라져 갔듯, 지역은 꿈을 잃고, 전망을 잃고 젊음을 빼앗겨 왔다. 지역의 청년들은 오로지 인 서울을 꿈꾸며, 지방에서 탈출을 염원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서울과 수도권은 주택난이라는 위기에 빠지고, 지역은 지방 소멸이라는 극단적 위기 앞으로 내몰리게 됐다. 이토록 수도권과 지역이 균형을 잃기 시작하면 나라 전체가 건강할 수 없다. 지방 소멸은 국가 공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산-광주 열차두 시간으로 단축시켜야   

지방 소멸이 피할 수 없는 불행이 되도록 방관하는 것은 죄악이다. 부산이 대개조를 기치로 혁신을 향해 가는 것은 광주와 호남에 있어서도 기회이자 모델이다. 부산과 광주, 전남과 경남은 동반 성장해야 할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지금 광주에서 부산까지 한 번에 가는 기차는 하루 한 번 운행한다. 부산시장 선거 지원유세를 위해 가면서 일부러 이 노선을 가보았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순천에서 갈아타서 부산 부전역까지 걸리는 시간은 6시간 24분, 이것은 단절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추진 중인 부산~광주 남해안 고속철도 사업의 조기 완공을 통해 두 시간권으로 단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남해안 역사문화 관광벨트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한 부산과 광주 간 동반성장은 물론 국가균형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새로운 도시연합 중심의 호남광역 그랜드 비전

그렇다면 광주는 어떻게 가야 하는가. 새로운 도시연합 중심의 500만 광역경제권을 만들어야 한다. 첫 번째 사업으로는 공항 복합도시 특별지자체 구성이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2조에 따르면 특별지방자치단체 구성이 가능하다. 동남권 광역도시권이나 대구경북 행정통합 등 최근 지역별로 논의되고 있는 광역연합 계획과 궤를 같이 하는 호남지역의 해법과 방향이 나와야 한다. 

사실 2018년에 500만 광역경제권 그랜드 비전을 처음 제안했을 때는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이 부족했으나 지방자치법 전부 개정에 의해 이제는 광역연합을 구체화하고 실현시켜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연합과 연대를 통해서 새로운 광역연합 구상으로 지방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타 지역에 비해 광주전남은 갈등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역 최대 현안인 군 공항 문제만 해도 답보상태다. 공항 이전을 지역 간 갈등으로 놔둘 것이 아니라 호남의 관문을 조성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감한 결단을 해야 한다. 무안군수가 공항 복합도시 특별지방자치단체의 단체장을 맡고 특별 지차체 의회 구성 비율도 무안군이 50% 이상을 가져가는 구조로 통 큰 타협안을 제시한다면 분명히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다.      


호남권의 빅사이즈 자립생활경제권  

기존 광역자치단체를 폐지하고 광역 통합 자치단체를 신설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존 광역자치단체는 존치하면서 권한과 기능이 대폭 이양되는 광역연합으로 새로운 틀을 만들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광주 전남 전북 6대 권역 도시연합(CU)은 새만금권 도시연합, 전주 도시연합, 지리산-섬진강권 도시연합, 서남해안권 도시연합, 광양만권 도시연합, 광주 도시연합이다. 

기존의 행정 경계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권이 중심이 되는 구조다. 이런 생활경제권을 구축해서 호남권 도시들의 기능 연합을 바탕으로 하는 빅사이즈 자립 생활경제권을 조성해나가야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치는 희망을 말할 수 없다. 한 발 앞서가는 준비와 전구상만이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 소멸위기에 봉착한 지방은 그 지역에서 먼저 연결하고 연대한 다음, 다른 지역과 연결하고 연대해야 한다. 연결과 연대만이 막힌 미래를 열린 미래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강기정의 청와대 밥상 이야기>는 매주 화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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