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8 호수공원에 나왔다. 바람이 좀 불었지만 날씨가 좋았다. 주섬주섬 챙겨 온 화구를 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남녀가 바로 코앞에 자리를 펴더니 음악을 틀어 놓고 곧장 드러누웠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꿈지럭거리는 꼬락서니가 영 눈에 거슬렸지만 몹시 부러웠다. 그들의 형상은 풍광의 한 조각이 되어 그림으로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날아든 종이비행기의 뾰족한 끄트머리가 녀석의 목덜미를 콕 찔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순간, 목덜미가 근질거렸다. 으아 앗! 송충이가 툭, 투둑 떨어졌다. 이런.. 갓난아기의 손가락만한 송충이가 바짓자락이며 물감통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2022.12.3 창문을 사이에 두고 그것들이 하나 둘 동원됐다. 점토로 빚은 반인반수 미노타우르스와 춤추는 아이, 목각 분절 손, 귄진규의 테라코타, 노은님의 도기, 목각 냥이, 마티스의 브론즈 등등. 사건이 기억 속에서 소환될 때마다 그림은 조금씩 자라났다. 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