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 시간은 10:30분, 분명히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10시 25분쯤 나갔고 운전하며 시간을 보았을 때 46분쯤 되어 일찍 도착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약속 시간이 10시 반이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맙소사!!
대체 내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지난번에도 시간을 착각해서 30분 일찍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30분이나 늦었다.
그러나 나에게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멤버들에게는 물론 미안했지만 예전만큼 자책하지 않는다는 데에 스스로 놀랐다.
케냐에 살아서 그런 건지(이곳의 시간 개념은 우리와 다르다.)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건지 잘 모르겠지만 날이 조금씩 무뎌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DNA에는 FM 유전자가 있다.
정해진 규칙을 벗어나는 일은 드물며 정확하고 확실한 것을 좋아하고 오류나 오차를 방지하려 애쓴다.
일할 때는 엑셀도 못 미더워 계산기로 다시 체크했다.
그렇게 해서 몇 번의 오류도 발견했기에 더욱 날을 세웠을 것이다.
얼마나 피곤한 인생이었는지 모른다.
항상 날을 세우고 살다 보니 피곤하고, 피곤하니 날을 더 세우고, 그렇게 악순환에 빠지지 않았을까?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가혹해서 실수라도 저지르면 며칠이고 그 일을 상기하며 스스로를 괴롭혔지.
작게는 카톡에 오타조차 남기지 않으려 했던 나였다.
내 엄지는 우렁손톱으로 이 뭉툭한 손으로 타자를 칠 때면 사람들이 신기해서 웃곤 했는데, 몇 해 전 교회에서 나이가 제일 적었던 집사님이 집사님은 톡을 정말 빨리 쓰는데도 오타가 하나도 없다고 말해서 어깨가 살짝 뽕긋했었다.
이 말을 들은 후 오타에 더 신경이 쓰였던 것 같다.
아니, 이때만 해도 오타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노안이 오니 맘은 급한데 엄지가 자꾸 다른 문자를 누르고 그래서 느려지고, 말도 안 되는 문장을 보내고,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 톡을 잘못 보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자책했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살기 위해 스스로 이해심을 키웠던 것 같다.
그러지 않았다면 자책감에 매일 몸살을 앓았을지도 모른다.
날이 점점 무뎌지고 내 손톱처럼 뭉뚝해지고 있다.
마음도 점점 편해지고 있다.
-글을 쓰다 내가 일을 두려워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물론 이곳에서는 여러 제약(워크퍼밋, 언어 등)이 있어 일을 하기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제일 두려운 것 같다.
열심히 잘하고 싶을 테니 분명 어떠한 이유로든 난 스트레스를 받을 테고, 그러면 가족들도 힘들어지겠지.
그런데 지금은 일에 대한 감각을 다 잊어버려서 그것도 두렵다.
말귀를 못 알아먹을까 봐, 업무를 제대로 이이해해하지 못할까 봐 두렵다.
시작도 안 했는데 지레 겁부터 내는 나, 이 두려움도 무뎌졌으면 좋겠다.
성격이 더러워서 살이 안 찐다는 언니의 말이 맞는 것도 같다.
그래도 많이 깨끗해지고 있다.
나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