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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갓구름 Mar 08. 2022

가족, 에대한 단문

굳이 말하기싫은 흉터같은 나의

    '항상 똑같지'

엄마에게 날돋힌 말을 듣고있으면 드는 생각이 울컥 올라왔다. 엄마는 항상 얘기가 하기어려운 주제라 느끼면 엄청나게 감정을 싫어 듣기싫게 빙빙 돌려말한다. 들으면서 내가 왜 이 얘기를, 저 표정을 참고있어야하지? 라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30쯤되면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것이, 옳다.


여느날처럼 엄마는 지방에서 올라와 우리집-이라 말하긴 그렇지만 무튼 가족이 모여서 생활가능한-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사는집은 매수인이름이 홍.길.동(가명), 즉- 친오빠의 집이다. 오빠와 나는 한 집에서 산 세월이 짧지않았다. 다만 단둘이 산것은 근 2년이 최초였다. 그것이 화근이었다.


엄마는 정년퇴직 이후 지방에 집을 구해 내려간 아빠를 따라 그곳에서 일자리를 찾으셨다. 부부로서 함께 사는것, 그리고 그곳에서 자리를 잡게만드려는 어느정도의 생각이 섞인 이주였다. 문제는 그렇게 엄마가 아닌 오빠와 단둘이 살면서였다. 나와 오빠는 아주 다른 생활습관 그리고 평행선에 놓여있었기때문인데, 오빠는 '안 어지르고 유지하기' 라면 나는 '먹고싶은것 먹고 어지른상태라도 치우는' 스타일이었다.

여기서 유치하게 누가 최악이였냐는 말로 꼬투리를 잡지는 않을예정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오빠는 집에서도 방에 상주하는 상위 집돌이 '방돌이'라 집에와서도 얼굴을 볼 틈이 없을 정도다. 집에서 마주칠수있는기회는 볼일을 보러 화장실을 나오는 때가 거의 유일하니까.

반대로 나는 해먹고 싶은것이 생기면 장봐와 손질하고, 부지런히 해먹고, 잠깐 어질렀다가 복구시키는 스타일이다. 따라서 평범한 집의 그 수준처럼 부엌은 언젠가 정체상태였다가 또 금방 원래 자릴 찾곤했다.


간단히 본론을 얘기하자면, 그 집의 전세이자를 내시던 실질적 집주인인 오빠께서 오래동안 그것을 못마땅해왔고 나 또한, 나를 못마땅해하는것을 못마땅해했기 때문에 서로의 사이는 이혼을 앞둔 냉전상태의 두 사람과 비슷한 감정선을 가지고있다.


문제는 그 둘의 사이를 중재한다고 나름의 노력을 해온 엄마가 어느날 나에게 하소연을 하시다가 나의 독립에관해 아주 나를 불편하게 만들면서 이전에 이렇게 하기로 했던 것을 하지말자고 이야기하면서였다.

참고로 나는 브런치에 발행하는 글의 횟수와 내용보다 훨씬 더 깊게, 그리고 자주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로 어떤 대화가 이루어질때 '이게 내가 겪어야만하는 상황인가?' 라고 멀리서 바라보면서 상황을 마주한다. 그리고 그 상황은 여러번 내 선을 넘어섰다. 남매간의 사이가 안좋은것이 결국 다 자기탓이라면서 '내가 너희들을 잘못키웠지'라는 한숨섞인 말을 내가 왜 여러번 들어야하는지? 물음표가 지난 주말간 세번 이상 불편하게했다. "왜 장남역할인 오빠가 들어야할 말을 내가 듣고있는가?" "이 감정적 하소연을 오빠도 들었을까?" "그래서 상대방이 원하는 답변을 내가 해주어야하는가?" 모두 아니오 였다.


답이정해진 대화를 할 자세가 없는 나에게 감정적인 하소연은 지나친 스트레스이자 신경이쓰이는 순간이었으며 함께 밥을 먹는 가족이라지만 주말간 응축되었다. 이유는 그런 하소연을 식당에서 아저씨가 서빙을 하는 순간에도 멈추지 않았으며 나로서는 '마치 장녀처럼' 그 상황을 참고 공용공간을 모두 청소해온 짜증 모두 폭발시키지 않은 이유에서일것이다. 이래서 가족은 입안의 가시처럼 불편하다. 겉으로 멀쩡해보여도 말하지않으면 계속 내안에서 찌르며 상대방은 가족이란 단어 안에서 선을 넘는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못한다.


어느순간엔가 빙빙돌려 말하는 그 말들을 내가 왜 짜증스럽게 듣고있어야하는가? 참을 수 없어 똑같은 말투로 말했다. "빙빙돌려서 얘기하지말고 결론은 이런거잖아! 왜 내가 엄마 화내는것을 듣고있어야돼? " 속에서 참았던 용암같은 감정이 터져나왔다.

나는 그 식당에서 서빙하는 사람이 있든말든 나한테 그딴소리를 할때부터, 그 사람은 없는사람인양 신경도쓰지않고 그 대화를 잘 마무리하는것에만 집중할정도로 내 감정을 skip하는 참을성을 가졌는데, 왜 내가 이딴식의 대우를 받아야하느냐말이야. 다시 말하지만 참고 이해하는 '장'남역할을 한건 나였다고. 


싫은 감정은 똑같이 지랄을 해줘야안다는 드라마 대사 '역지사지'가 생각난다. 항상 엄마를 대할땐 같은 말투와 같은 화법을 써야지만 알아듣기때문이다. 손등에 있는 흉터처럼 이 불편한 진실을 남에게 밝힐수도없고 혼자 생각정리를 해왔다. 남에게 보여줘야 '아이고 어떡한대요' 혹은 그 흉터가 있는 손이 결국 다른 손보다 못났다고 생각하게 될 남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았기때문이다.


그렇게 똑같이 말을하면서 엄마앞에서 평생 흘려본적없는 눈물이 차오르기시작했다. 항상 굳은얼굴로 자리를 피하기만했지 순식간에 막내가 본적없는 슬픈얼굴로 눈을 내리깔자 당황한 엄마는 '아니 내 말투가 원래 그런걸 뭐그래애~~'라며 당황하기 시작한다.


'항상 이딴식이었지'


지난 오랜세월 우리 가족은 화목한적 없었으며 평소의 내 표정이 무표정했단것도 왜 그랬는지 너무 잘 정리가 되어버린 연휴였다. 나는 내방에 들어가 집에 놀러온 남자친구를 등지고 책상벽면을 보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우는것 우는상황으로 방해를 하고싶지 않아 법문을 틀고 절을 하는 남자친구에게 티내고싶지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소리없이 울다가 손등으로 눈물을 계속 훔쳤다. 나중에야 내가 울었다고 말하니 알게된 남자친구 앞에서 나는 여러생각이 들었다. 성인은 성인에게 서로의 예의를 지켜야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한다. 가족이든, 가족이아니든.



이후 오랜세월 불편하고 싫었던 감정과 좋은 감정 그 사이에 무수히 얽힌 실타래같은 시간들이 어느정도 명료하게 내게 답을 주었다. 몸이 힘들어 표정이 안좋은 엄마를 데리고 마사지샵에 가고, 좋아할법한 햄버거집을 함께 데려가도 내게 불편한 감정을 주며 못느끼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낼필요가 없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선을 계속해서 일러주지 않는한 나는 이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성인은 성인에게 서로의 예의를 지켜야한다.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한다. 가족이든, 가족이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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