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님과 차은우와 송강이 알려준 것
손가락은 손바닥과 함께 있어야 아름답다.
부부싸움 12일 차, 오늘 참 이상한 주일이다.
남편과 단절되고 두 번째 맞는 주일. 보통 아들은 유치부, 남편은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는 같은 시간 유아부에서 율동 보조 교사를 한다. 각자의 예배가 마치면 교회에서 공짜로 제공해 주는 국수를 함께 먹고, 나는 1시에 시작하는 청년부 예배를 드리러 두 변 씨는 자모실에서 신나게 놀며 나를 기다린다.
그런데 오늘, 침묵의 국수 먹기 시간이 끝나고선 아기변이 엄마와 같이 있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참 뜬금없다. 자모실에 가지 않고, 놀지 않고, 내 옆에 있겠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 예배가 마칠 때까지 잠도 자지 않고 나와 남편을 오가며 아들은, 아니 세 식구는 예배당에 함께 있었다.
청년부 해외 단기 선교를 앞두고 선교팀을 이끄는 전도사님이 말씀을 전하셨는데 세상에. 대형 스크린에 사진 세 장이 올랐다. 동글동글 귀여운 외모의 전도사님 얼굴에 차은우의 코가, 다른 한 장은 송강의 눈이, 마지막 한 장에는 박서준의 입이. 전도사님 얼굴에 차은우와 송강과 박서준이 더해진 결과는 처참했다. 기괴하달까. 전도사님 얼굴에 부분적으로 참여한 차은우와 송강은 힘을 못 썼다. 그 잘생긴 이목구비가 무용지물이 될 줄이야. 처참한 결과물에 청년들은 웃음을 터뜨렸고 나도 웃었다. 근처에 남편이 앉아 있는 걸 알고 있었지만 참기 어려웠다.
서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는 '공동체 됨'이 오늘의 주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없애고, 좋아 보이는 것을 어거지로 욱여넣은 그 볼성사나운 결과물로 조화와 공존의 가치를 단박에 이해시켜 주셨다. 이것이 MZ의 감성, 아니 영성인가. '쟤만 없으면 돼'라는 생각을 할 수 없는 하나의 몸 그 자체, 그것이 공동체라고 하셨다. 그리고 연합에 대한 말씀까지.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새끼발가락이 의자 모서리에 찧었을 때 온몸이 오징어처럼 오그라드는 것 이것이 바로 연합이라고 하셨다. 저 사람이 기쁘면 나도 즐겁고, 이 사람이 아프면 나도 고통스러운 것. 그것이 공동체요 연합의 모습이라고. 공동체의 가치이자 본질은 연합하는 것이라고. 연합. 이거였다. 드디어 찾았다.
남편은 나와 연합하지 못하는구나.
내 발가락이 아파도 남편은 오징어가 되지 않는다. 나의 약함과 부족함은 남편과 상관이 없다. 나의 모자람이 비난과 공격의 대상이 될 거라면 난 이 남자와 살고 싶지 않다. 홧김이 아니다. 궁서체였다. 연합하지 못할 거라면 난 이 사람과 함께 살 마음이 없다.
두 음절 단어 하나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일순간 스르륵 풀려버렸다. 명확하고 명료하며 그야말로 명쾌한 응답. 분노를 따라 정말 끝까지 다 온 기분. 분석과 추적은 끝났다. 물꼬가 트이지 않는 그 답답함은 해소되었지만 잔잔하게 슬프다. 예배를 드리고 같이 살 수 없다는 결론이라니. 무슨 이런 주일이 다 있나.
한 공간에 있지만 나란히 앉을 수 없는 사이, 연합인가 안 연합인가. 둘 사이를 오가는 아들 덕분에 시야에 한 번씩 걸려드는 남편은 핸드폰을 하는지 몸을 웅크리고 있다.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