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이 나를 파이터로 만들었다.

by 손사쁨

비행기가 빌딩에 박히고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치 그림자처럼 날개와 몸체의 윤곽이 빌딩에 선명하게 남았다. 하늘도 공항도 아닌 곳에 비행기가 있을 수 있다니. 그 생생하고 생경한 충격이 지금도 또렷하다. 미국의 상징이 무너졌고, 그 현장의 먼지 구름이 전 세계에 그대로 전해졌다. 희생자는 말 할 것도 없었다. 아들 부시와 군수산업 사이의 은밀한 거래를 의심하는 여론도 있었지만, 전쟁은 당연했고 자연스러웠다.


jTBC가 없던 시절이다. mbc였을까 sbs였을까이다. 전쟁을 통해 미국이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보기 좋게 표로 정리해 보여주었다. 전쟁의 실리를 따져주는 앵커와 기자. 그 뉴스를 보고 깨달았다.


아, 싸움을 통해 얻는 것도 있구나.

싸움은 그렇게 하는 거구나.


테러와의 전쟁이 나를 불렀다. 링으로. 링 위로 옥타곤걸이 아닌 싸움꾼으로. 전문 격투기 선수의 자격으로 링에 올랐다. 장기전을 불사하는 내 전쟁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내 싸움은 치열하기 보다 치밀했고, 진정한 파이터이면서 사랑꾼으로 거듭났다.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싸움이나 힘겨루기와 달랐다. 내 맘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어서도 아니다. 정말 나를 위한다면 싸우지 않는 편을, 적당히 넘어가는 것이 나았을수도 있다. 무엇을 얻고 싶은가. 다시 말해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를 두고 항상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 두곤 했는데 나의 바람을 도출해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일단, 이 일이 이렇게까지 짚고 넘어갈 만한 일인지부터 분별해야 한다. 모든 일에 눈 까뒤집고 덤비면 남아날 남자가 없다. 핵심은 관계. 이런 표현이나 행동은 우리 관계를 해치며 이런 상황이 여러번 발생했을 때 나는 받아줄(참고 넘어갈) 마음이 없다. 이 두 가지에 해당되면 돌진이다.


필사의 각오로 덤벼야 겠다는 생각이 들면 '각종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내 감정이 건드려진 명확한 이유를 내 안에서 먼저 찾아야 한다. 문제를 수면 위로 띄우는 이유, 그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지 근본적, 본질적 원인도 충분히 고민해 보아야 하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만 상대를 설득할 수 있고 나의 요구사항이 명확해 진다. 말과 표현이 또렷해진다.


장기전이 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이 과정이다. 내가 바라는 것이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을 때 싸움이 길어지곤 한다. 내 감정의 이유 또는 이 기분 상함의 원인에 대한 분석이 끝나지 않았거나,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 길어진다. '내가 그걸 싫어해' 라는 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싫어하는 것이 너무 많아지면 그저 '싫어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 될 뿐이다. 짜증이든 화를 그저 내지르기만 하면 '짜증 많고 화 많은 애' 원래 그런 사람으로 끝나 버린다. 나의 감정은 상대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을 잃고 만다. '그냥, 내가 그걸 원한다니까' 이런 식이면 어느날 갑자기 이별장을 받아드는 비련의 여주인공이 되어버리고 만다.


상당한 집중력과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하는 힘든 과정이지만 이 단계가 단연코 가장 중요하다. 사랑과 감사를 표현하기 보다 어쩌면 더 중요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알게 되고, 상대방에게 정확히 나를 알릴 수 있다. 그렇게 서로가 조심해야 할 내용과 형식이 정리되고, 쌍방 협의된 관계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 무엇보다 싸움의 끝이 확실해진다. 말 그대로 '해소'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테러와의 전쟁 이후 만났던 남자친구가 유난히 지랄 맞기도 했다. 나보다 더. 나의 첫 눈물에 눈하나 깜짝 안 하던 놈. 피가 파랑색이나 검정색일 것 같았던 놈. 나보다 독한 상대는 나를 강하게 만든다. 덕분에 이 과정이 충분히 훈련됐을 뿐만 아니라 발톱을 감추고 싸우는 방법도 배웠다.


인생 선배, 결혼 선배 모두가 입을 모아 그러지 말라고 한다. 길게 가는 것 좋지 않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작년 1월에도 3주 짜리 전쟁을 치렀다. 연례행사인가.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그러지 말아야 할 나의 방법이 역설적이게도 내 사랑과 관계를 지킨다.


남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해갈수록 다행히 움의 빈도는 줄었다. 강도도 조금 낮아졌지만 기간 만큼은 제한을 두지 않는다. 행복은 빈도가 중요하다던데 잦은 싸움 대 긴 싸움. 무엇이 치명적일까.


이유와 원인이 분명하게 밝혀지면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온 이상한 주일. 묵직한 차분함으로 어두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열흘 뒤 설을 앞두고 시댁에 내려가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시댁에 못 갈 것 같다. 이미 13일 째이지만 열흘 이상 연장될 수 있다고 스스로 마음 먹은 상태인가 보다.


글로 쓰면 쓸수록 나는 참 질리는 스타일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역시 글쓰기의 최대 유익이다. 자아성찰. 내가 독자라면 너무 짜증이 날 것 같아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언니가 나에게 했던 말이 이제 이해된다.


넌 또라이는 아니고 음 뭐랄까.

그냥 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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