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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 Coco May 10. 2021

독일 편-함부르크

2020.06.16 유럽 여행을 시작하다.

2020년 06월 16일   화요일   화창하게 맑음 


오늘 나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여행을 시작한다. 여권을 잘 챙겼고 덴마크로 돌아갈 증명서도 챙겼다. 어제부터 유럽 각국이 일부 국경을 오픈하면서 지금 독일로 떠날 수 있지만 여행하는 동안 언제 다시 닫힐 지 모른다. 그렇게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여행은 항상 그런 것 같다.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러 가는 듯한 흥분, 기대, 행복 심지어 이번엔 장엄함까지 든다.


아침 6시 20분, 코펜하겐의 집에서 출발하여 기차역으로 향했고 함부르크행 기차를 탔다. 코펜하겐에서 함부르크까지 기차 탑승권은 34.90유로였다. [여기서 팁: 나는 대부분 아침 일찍 이동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아침 기차는 오후, 저녁 기차보다 많이 쌌고, 아침 일찍 3~4시간의 이동 시간 동안 부족한 잠을 채울 수가 있었다. 많은 박물관들이 오전 늦게 오픈하기 때문에 방문하는 데 문제가 없었고 특히 유럽은 6~7월 썸머 타임 기간에는 저녁 10까지도 날이 밝기 때문에 오후부터 출발해서 여행해도 전혀 늦지 않았다. ]이날도 8시 반까지의 사진만 있는 걸 보니 아마 그 후로는 잠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4시간 반을 달려 드디어 나의 첫 목적지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함부르크 역은 참 공업 도시 다운 면모를 하고 있다. 전체가 트러스-Truss형 구조로 되어있는 기둥이 하나도 없는 확 트인 공간이다. 기차 트랙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상가들이 있는데 맥도날드, 버거킹 등 Fast food 말고도 독일 전통 빵인 프레첼 pretzel과 샌드위치를 파는 Taste of Hamburg와 같은 베이커리도 있다. 여기서 나는 얼른 점심을 챙겼다.



코펜하겐과 함부르크의 기차역을 비교해보면 덴마크와 독일의 건축 양식의 차이가 조금이나마 보인다. 청동색 지붕과 주황색 벽체는 북유럽 그중에서도 덴마크에서 많이 볼 수 있고 어두운 브라운색 브릭은 독일에서 많이 불 수 있다.


첫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로비와 룸이 따로 떨어져 있는 독특한 구조 때문에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깨끗하고 좋았다. 프레첼은 좀 짰는데 나한테는 오른쪽 빵이 훨씬 괜찮았던 것 같다. 이제 옷도 바꿔입고 출발하자. 이 하늘색 드레스는 프랑스에 가기 전부터 유럽 여행에서 입으려고 샀던 옷이다. 그동안 입을 기회가 없었는데 오늘 드디어 입는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이 맘에 들었는지 핸드폰을 꺼내 찰칵한다. [여기서 팁: 여름이라도 아침저녁 기온 차이가 꽤 있어서 항상 겉옷을 챙기고 모자, 선글라스와 선크림도 꼭 챙기자. ] 내 옆으로 Hopon-Hopoff 버스가 지나가지만 난 꿋꿋이 걸어간다. 오늘의 걸음 만 보 예약이다. 



Hamburg Kunsthalle는 첫 번째로 방문하게 된 박물관이다. 일정이 급해 이 박물관은 방문할 계획이 없었지만, 함부르크 기차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지라 지나가면서 잠깐 들러보게 되었다. 보아하니 포스트 카드에서와 같이 많이 알려진 그림인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가 소장되어 있는 꽤 유명한 박물관인 것 같았다. 세계를 정복하기라도 한 듯한 그림 속 주인공의 자태가 멋있다.


박물관 담벼락에 자란 핑크색 장미가 싱그러워 카메라를 켠다. 그 앞 벤치에는 한 독일 여자애가 책을 읽고 있었다. 참 한가해 보이는 오후 시간이다. 멋들어진 조각상으로 가득한 박물관 전면을 자나 로비로 들어가니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장식된 웅장한 계단이 보인다. 저쪽으로 올라가면 박물관인가 보다. 하지만 난 일정을 다그쳐야 하니 들어가 보지는 않기로 한다.


[여기서 팁, 실은 뮤지엄 샵에서 파는 포스트나 기프트를 보면 그 뮤지엄의 소장품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하고 인기 있는 소장품은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방문자들을 위하여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이다. ]


그래서 나도 뮤지엄 샵을 슥 둘러보고 이 뮤지엄의 소장을 어느 정도 요해하고 나왔다. 뮤지엄 앞에는 특이하게 리프트 된 광장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오후의 태양을 그 언덕에서 즐기고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 커피를 마시는 사람, 데이트하는 사람, 보드를 타는 사람들까지.



박물관에서 나와 계속 도시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독일 전통의상가게가 보인다. 유리창에 진열된 의상들이 화려하고 밝은 색상들도 아주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있다. 마치 인형 놀이 의상 같기도 하지만 일상 패션에서도 충분히 참고할 만한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한참 걷다 보니 아이스크림이 생각나 독일 슈퍼도 둘러볼 겸 근처 Rebe 슈퍼를 찾아갔다. Rewe는 독일에서 가장 많이 본 국민 슈퍼와도 같았다. [여기서 팁: 특별히 맛집을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빵이나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으면 슈퍼를 찾아라. 길거리 베이커리나 아이스크림 가게보다 훨씬 싸고 맛도 나쁘지 않다. 심지어 일부 슈퍼에서는 갓 구운 빵도 많이 나온다. ] 슈퍼에서 나오면서 Rewe 모자를 쓴 아저씨 모형이 재밌어 아이스크림과 같이 찍어 본다.


알스터 호수는 함부르크 시 중심에 있는 가장 큰 인공호수라고 한다. 탁 트인 수면과 분수 그리고 멀리서 보이는 함부르크 시청과 예쁜 유럽풍 건축들이 참으로 아늑하다. 날이 화창하게 맑은 하루다. 



계속 걷다 보니 멀리서 한눈에 봐도 오래된 고딕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뾰족한 종탑이 하늘을 찌를 듯 높았고 전통 고딕 양식이 아닌 독일식 고딕 성당이었다. 붉은 브릭으로 장식된 벽체는 간단하면서도 웅장함이 엿보였다.


성당 정면 파사드를 살펴보면 팔면체 원추형 지붕 아래에 종이 하나 있고 그 아래 원형 시계가 있고 그 아래에 다른 하나의 종이 있고 그 아래쪽으로 네 개의 창이 나 있다. 그리고 그 아래는 모든 고딕 양식 성당에서 볼 수 있듯, 세 개의 입구가 높은 창과 함께 서 있다. 성당 안쪽으로 들어가 보니 높이 솟은 화려한 창 앞에 온화한 색의 조명이 십자가가 있는 애프스 Apse를 비추고 있다. 이 조명으로 인해 어두운 성당 내부에서 가장 안쪽만 빛나니 더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성당 모형을 잘 살펴보면 성당 주변에 다른 주택식 건축이 함께 붙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성당은 처음 보는 양식이라 좀 특이했다. 근데 저 멋진 모형을 둘러싸고 있는 유리막은 다른 형식으로 바꾸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 앞 벽면에 있는 문구에는 성당의 역사가 적혀있다. 1195년에 처음으로 건축을 시작하여 14세기에 재건축을 하였고 15세기에 증축을 하였는데 1842년 큰불로 인해 파괴되었다가 1844년부터 1849년까지 본래의 사이트에 재건축하였고 1866년부터 1878년까지는 탑을 건축하였다.평면도에서 보면 전형적인 고딕 성당이라기보다는 개조된 새로운 고딕 양식을 하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평면 오른쪽에 증축된 건축들인 것 같다.



함부르크 시청사는 생 피터 성당 바로 앞에 있다. 행운스럽게도 오후 3시 정각이어서 시청사 종탑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소리가 맑고 청량했다. 그 소리는 함부르크 브이로그 영상으로 들어볼 수 있다. 사진은 3시 3분을 가리키고 있는 함부르크 시청사의 시계다. 청동색 지붕에 베이지색 브릭이 아주 잘 어울리는 산뜻하고 예쁜 시청사 건물이다.



St. Nikolai Memorial 성당은 아주 특별한 장소였다. 멀리서는 높은 종탑이 보이니 성당이구나 하고 갔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진짜 종탑만 있었다. 알고 보니 제2차 세계대전의 폭탄으로 인해 파괴된 성당의 잔해들이었다. 로마에서도 도시 곳곳에 몇천 년 된 건축들의 유적 Ruins를 많이 보긴 했지만 근대 사회 그것도 몇십 년 안된 아픔을 가진 유적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남달랐다. 예전에 예배를 드리던 장소에는 조각상들이 서 있었고 종탑 지하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검게 퇴화한 웅장한 종탑과 창만 남은 벽체를 바라보고 있으니 갑자기 슬픈 감정이 올라와 숙연해졌다. 이것이 바로 이 장소가 갖는 영혼인 것 같았다.


함부르크는 독일에서 가장 큰 항구 도시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다리가 있는 도시라고도 한다. 다리가 2500개로 또 다른 유명한 항구 도시들인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이탈리아의 베니치아의 다리 개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도시 속에 운하가 많고 멋들어진 브리지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함부르크는 아마도 공업도시였던 것 같다. 포스트 인더스티얼 유산들이 도시 속 이곳저곳에 분포되었다. 햇빛에 밝게 빛나는 주황색 브릭을 보고 있노라면 새삼스럽게 진짜 독일에 온 듯하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실은 함부르크 여행은 이 건축이 가장 큰 이유였다. 건축학도의 여행 흐름을 조금 엿볼 수 있는 이유인 것 같다. 건축 중심의 여행. 내가 관심 있는 건축들을 구글맵에 저장해 두고 여행 시 그 건축들을 모두 이어주는 하나의 곡선을 그리면 여행 계획이 완성되다. 쇼핑이나 맛집 탐방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겠지만, 이 책에도 쇼핑몰이 등장하니 (그것도 건축 보러 간 것이긴 하지만 쇼핑도 했다는) 나와 함께 다양하고 재밌는 여행을 해보시길 바란다.


아무튼, 엘프필하모니는 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오히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멋있었다.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디자인이야 워낙에 유명하고 혁신적이지만 그것을 현실에 구현해냈을 때 이토록 디테일이 잘 된 건축은 처음 보았다. 보통 유명한 건축가가 아무리 디자인을 열심히 해도 시공 시 모양만 남고 디테일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엘프필하모니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화창하게 갠 오후 햇빛에 빛나는 저 파도 같은 파사드를 보라. 음악과 파도가 건축이라는 매체로 표현된다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있을까.


거의 세 시간 동안 엘프필하모니만 방문한 후, 이 아름다운 건축은 단연 내 최애 건축으로 등극했다.



엘프필하모니 프라자는 구건축과 새건축의 경계에 있는 전망대이다. 티켓가격은 2유로밖에 안 하고 특이한 곡선형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에스컬레이터 안쪽 인테리어는 원형 유리로 장식되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디테일이 살아있다는 말이 너무나도 어울리는 건축이다. 파도형 유리문을 회전하는 위쪽 디테일, 함부르크 항구를 바라보는 커다란 창, 그리고 프라자를 올라가는 계단과 그 위쪽 콘서트홀로 향하는 나선형 계단까지, 건축 디테일과 시공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엘프필하모니의 가장 극적인 디자인은 단연 파사드이다. 어느 쪽에서 바라보나 너무나도 예쁘고 아름다운 파사드 디자인이다. 동일한 창은 거의 하나도 없지만 바로 옆 항구의 파도와 매치되는 칼라와 모듈이다. 헤르조그 앤 드뫼롱만이 창조할 수 있는 건축이다. 


프라자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함부르크의 항구는 탁 트이고 아름답다. 많은 선박과 요트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공업도시인지라 항구에도 공업 구조물들이 많이 보인다. 바람이 싱그럽게 불 던 기분 좋은 장소였다. 그리고 나한테 와서 먹이를 달라고 하는 귀여운 참새도 있었다. 


책자에서 엘프필하모니의 단면과 평면으로 건물의 구조를 더 잘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곡선형 튜브-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도시 항구가 보이는 큰 창을 지나 윗쪽 콘서트홀의 로비에 도착한다. 로비에서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콘서트홀로 올라갈 수 있다. 구건축과 신건축 사이의 틈은 함부르크 항구를 360도 돌면서 볼 수 있는 프라자 및 전망대가 된다. 레스토랑, 카페, 샵 등도 이 층에 위치하여 있다. 



이제 함부르크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워터프론트 프로젝트도 둘러보고 반대편에서 함부르크 시청사도 다시 한 번 봤다. 함부르크 기차역도 다른 시각에서 보니 더 멋지다.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근처 슈퍼에 들러 소시지와 맥주가 유명한 독일인지라 귀여운 곰돌이 소시지와 레몬 맛 맥주 그리고 빵을 샀다. 아침 6시부터 시작된 여행 첫날의 피로를 풀어줄 고마운 아이템들이다. 숙소에 돌아오니 8시가 넘었다. 얼른 먹고 내일을 위해 일찍 자야겠다. 내일도 6시에 일어나 8시 기차를 탈 것이다. 다음 목적지는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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