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일자 : 2022.07.20
작년부터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실 어쩌면 단기간의 유행어를 넘어 시대의 유행어가 된 상태일지도 모른다. 언론에서나 유튜브에서나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수십수백,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결과가 나온다. 바야흐로 '대 가스라이팅'시대다. 맨 처음에는 나 또한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에 혹했던 기억이다. 서로 존중받아야 할 경계를 넘어서 상대방의 취향이나 인격적 특성, 관계 네트워크에 가치평가를 매기고 바꾸려는 행위가 사실은 '가스라이팅'이라니.
그런데 시간이 지나 다시 이성의 영역으로 돌아와 생각해보니, 가스라이팅이라는 현상이 의학적인 영역인가? 그렇지 않다. 정신의학의 교과서인 DSM-V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일부 임상의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만 학계를 비롯하여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 용어의 정체성에 의구심을 보인다. 언뜻 보면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적 용어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체가 불분명한 용어.
소위 '가스라이팅 행위'에 대한 연구가 없음에도 이 용어가 사회 전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지나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문가들이 이 용어를 쓴 적이 없다면 그 다음 의문이 "가스라이팅은 그럼 도대체 정의가 뭐야? 어떤 상황이 가스라이팅이고, 어떤 상황은 또 아닌거야?"로 이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사람들이 이 용어를 쓰는 상황을 다시 돌아보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관찰해보니,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 자체에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인간은 '되어가는 존재'이고 수없이 많은 사람과 상황의 영향 속에서 살아간다. 관계가 구성하는 네트워킹 속에서 인간이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유다. 사회 구성원간 상호피드백, 즉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건 충분히 있을 법하다. (물론 이를 수락할지 거절할지도 자유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현상을 보면 이런 변화 요구에도 일괄적으로 '가스라이팅'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마음의 문을 닫는 모습이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적인 상황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교류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실제로 우리가 이를 인간관계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형성하기에 권력이라고 할만한 부분이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쪽이 도덕이나 능력 등에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며 상대와의 관계를 수직적이고 불평등하게 설정한다면 권력의 평형은 깨진다. 수직적인 관계는 명령자와 복종자를 낳으며, 명령자는 복종자에게 자신의 내적 헤게모니를 강요한다. 복종자는 이때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 관계를 깨는 것이요, 두 번째는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명령자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다. 내 생각엔 이때가 바로 가스라이팅 현상에서 말하는 문제적 상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쓰이는 이 용어는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나타낸다기보단 '낮은 개방성'을 나타내는 지표인지도 모른다. 개방성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지 보여주는 Big 5의 지표 중 하나다. "Bipartisan Society"가 된 지금 우리는 흑백논리를 넘어서 나와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주고 있다. 다른 대상과의 피드백을 거부하는 과정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를 심심찮게 쓰고, 이는 우리의 닫힌 마음의 문을 합리화하는 데 쓰인다.
지금의 나는 가스라이팅 용어가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기존의 용어로 충분히 설명 가능한 현상과 전혀 문제되지 않는 현상을 한 데 묶어서 문제적 현상으로 정의한다는 게 과연 맞기는 할까?
어쩌면 우리는 '가스라이팅'에 '가스라이팅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불분명한 정의가 주는 바넘 효과 속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