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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피 Sep 17. 2021

검찰 수습 일지, 갑자기 부산이요?(5)

누나 얼굴에서 광이 나요

 한 두어 시간 정도 지났을까, 8시 반으로 설정해둔 짱구 오프닝 알람 소리가 내 잠을 깨웠고, 억지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으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핸드폰을 니 미처 확인하지 못한 카톡 메시지가 수십 통 와있었다.





 야 도연아 너 죽었냐




 설마 벌써 그만둔 건가요?’




 그만둔 게 맞다면 당신의 옷장을 제가 써도 될까요?’





 모두 다 나의 관사 룸메이트인 박거북이 선배에게 온 카톡이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도 거북이 언니의 카톡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진짜 죽겠는데 그래도 웃음이 나기는 하더라고... 그리고는 우리 동기들이 있는 단체 메신방을 확인하니 다들 모텔 로비로 집합을 한 모양이었다. 나도 마음이 급해져서 후다닥 씻은 뒤 숙소 로비로 나갔고, 그곳에는 이미 김별희와 정진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누나... 누나 얼굴이...”





 정진웅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내 몰골을 보고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알게된 지 일주일밖에 안된 동기에게 나의 맨 얼굴을 보여준 순간이었다. 스킨로션도 못 챙겨 왔는데, 화장품을 챙겨 왔을리가 만무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누나 얼굴에서 광이 나요, 광이!!”





 정진웅은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애써 웃으며 내 얼굴에서 광이 난다고 둘러댔다.





 “응 나 아무것도 없어서... 이거 핸드크림 발랐어...”





 나는 가방에서 ‘록○○’ 핸드크림을 꺼보였고, 순간 정진웅의 눈빛이 상하좌우로 흔들렸다.




 “아... 어쩐지 누나 오는데 베이비파우더 냄새나더라”




 더 이상 대꾸할 힘도 없었다.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김대훈이 내려왔다. 그가 내리는 모습을 보고 ‘저 오빠 왜 저러고 오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고된 일정에 하루 사이 바지 무릎이 다 튀어나와 마치 무릎을 굽히고 오는 모양새였던 것이다. 정진웅과 김별희의 행색 또한 나와 김대훈보다는 나았지만, 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동기들의 모습은 말 그대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누가 우릴 업무 중인 검찰 수사관으로 보겠는가?





 부산 출장 이틀 차의 우리들은 2개 조로 나누어졌다. 피의자를 추적하는 추적조와, 대기조. 계장님 몇 분과 나를 비롯한 우리 동기들은 모두 대기조였다. 우리는 그저 추적조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됐다.





 대기조였던 우리는,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 기약 없는 대기에 지쳤지만, 그래도 우리는 잠복이다, 잠복. 이게 진짜 수사관의 일이구나’라는 생각에 즐거웠고, 조금은 설레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기들과 함께였기에, 의지하고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됐다.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한 동기 세명까지 함께 있는 단체 메신방에 현재의 진행 상황들을 시시콜콜하게 올렸다. 기약 없는 대기와, 그리고 혼자 보기 아까운 우리의 꾀죄죄한 몰골. 우리와 함께하지 못한 이연주, 박희중은 우리에게 아낌없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왔고, 우리는 그들의 응원에 신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썰을 풀어놨다.





 물론 나도 드라이기로 빨래를 말리며 폭풍 오열한 이야기를 웃으며 털어놨다.





 단체 메신방의 이야기가 잦아들고, 우리도 카페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각자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인천에서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는데, 부산까지 와서도 가만히 앉아 있다니... 다들 계속되는 대기에 지쳐서 말 한마디 안 하고 있던 중 단체 메신방에 알람이 울렸다. 그간 단체메신방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이주현이었다.






 ‘부산... 부럽다... 난 계속 검사님 눈치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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