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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다보면 보인다 Oct 17. 2024

우리 집은 어디일까

정 붙이고 살다 보면 거기가 바로 우리 집이다

''나중에 늙으면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서 살자.''

서울의 번잡한 교통과 고단한 직장생활에 지친 탓일까. 예전부터 남편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나는 싫어! 가려면 혼자 가요!''

나는 그때마다 강력하게 고개를 젓곤 했다. 대도시 생활의 편리함에 물든 나에게는 허용 안될 일이었다.




2017년 4월 어느 새벽녘이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하고 뒤척이던 남편이 말했다.

''숨이 잘 안 쉬어져. 구급차 좀 불러 줘.''

잠이 덜 깨기도 했지만 내겐 구급차를 부를 만한 심각한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남편이 부르라고 하니 119를 눌렀다.


119 요원에게 남편의 상태를 설명하니 전화를 끊지 말라면서 주소를 물어봤다. 불과 3~4분여 만에 구급대원들이 들이닥쳤다. 그제야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좀 괜찮아진 것 같아요''

가슴을 문지르며 말하는 남편에게 한 구급대원이 말했다.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5분 거리의 종합병원에 도착하여 응급실로 들어갔다. 의사가 남편을 침대에 눕게 하고 검사 도구를 채웠다. 잠시 뒤였다.


두세 명의 의사가 뭐라고 소리치더니 남편을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 갑자기 분주해진 상황에 어리둥절해 있는 나에게 한 의사가 오더니 말했다.

''남편분이 심근경색입니다.''

의사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사망 원인 2위가 심장질환이고...... 스텐트 시술을 할 겁니다.''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한동안 얼이 빠진 듯 서 있는 내게 간호사가 입원 수속을 하라고 했다. 접수처에서 수속을 마친 다음 대기실로 가서 앉았다.


'사망원인 2위'라는 말이 맘에 걸리긴 했지만, 왠지 그냥 다 무사히 잘될 것만 같았다. 1시간여의 시술이 끝나고 나온 남편은 여느 때와 다름없어 보였다.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 어쩜 그리 침착해?''

얼핏 칭찬 같기도 했지만 서운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 드라마에서 흔히 본 것처럼 놀라 실신하거나 눈물 흘리는 상황을 떠올렸던 걸까?

나는 겸연쩍어서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침착한 게 아니라 실감이 안 나서 그런 거야.''


우리 집 바로 뒤편에는 119 안전센터가 있고 종합병원도 5분 거리에 있다. 덕분에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까지 가는 게 불과 몇 분 만에 가능했다. 남편이 원했던 '한적한 시골'에 살았다면 병원에 신속하게 가기 힘들었을 터다.


정년퇴임이 다가오는 남편은 요즘 더욱 노후 생활에 대한 생각이 많은 것 같다. 심근경색 이후로 '한적한 시골집' 얘기를 꺼내지 않는 대신 ''전주로 가서 병원 근처에서 살자''라고 한다.


예전에 전주에서는 3년 정도 살았었다. 음식이 얼마나 맛있던지 입맛 까다로운 나로서도 맛없게 먹은 적이 없었다. 길거리 아무 음식점에 들어가더라도 저렴하고 푸짐하면서 맛깔스러웠다.

'예향의 도시'라는 별칭답게 국악과 판소리 공연도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중소도시라 번잡하지 않고 차로 조금만 이동해도 자연을 만날 수 있어서일까. 사람들에게서는 여유로움과 정감이 묻어났다.




남편의 말에 세뇌당한 건지도 모르지만 나도 나이 들수록 전주에서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서울에서 비싼 집값을 깔고 앉아 있느니 지방에서 보다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을까?'

확실하게 정하지 않았기에 훗날 애들이 독립한 뒤 남편과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다.


걱정은 하지 않는다. 어디건 다 살만한 곳이고 다 살아질 테니까. 정 붙이고 살다 보면 거기가 바로 우리 집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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