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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다보면 보인다 Nov 07. 2024

나는 초롱이에요

안녕하세요? 내 이름은 초롱이예요.
나이는 여덟 살이에요. 아직 어린아이라고요? 아니에요. 이래 봐도 사람으로 치자면  중년의 나이랍니다.

 
어디서 태어났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사방이 투명한 벽으로 둘러쳐진 곳에서 살고 있었어요. 그 벽을 사이에 두고 몇몇 친구들도 있었지요. 밥 먹고 응가하고 자는 일밖에 할 게 없었어요.

어느 날 머리가 하얀 할머니랑 아저씨가 찾아왔어요.
''아휴, 예뻐라!''
저는 할머니 품에 안겨 아저씨가 모는 차를 탔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차를 탔지요. 달리는 차 창 밖으로 수많은 차와 사람이 보였어요. 추운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몸이 덜덜 떨렸어요.
한참을 달린 차가 마침내 한 아파트 앞에 멈춰 섰어요. 저는 그날부터 할머니랑 살게 되었지요. 벌써 7년이 지났네요.

나는 장모 치와와 종이랍니다. 다 자라도 다른 개들에 비해 몸집이 작고 털이 길어요. 몸통 전체적으로 흰색이지만 연한 갈색 털이 조금씩 섞여 있고요.
사과같이 동그란 두상에 쫑긋한 귀와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답니다. 할머니랑 길을 갈 때면 ''아이고, 예쁘게 생겼네''하며 저를 만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요. 헤헤

할머니는 혼자 살고 있어요. 곧 아흔이 된다고 했어요. 내가 강아지였을 때는 노래교실에도 다니고 장 보러도 다니던 할머니가 어느새 많이 쇠약해졌어요. 허리는 구부정해졌고 천천히 걷는데도 잘 넘어졌어요. 이상하게도 제 밥은 잘 챙기면서도 할머니는 하루에 한 끼도 안 먹을 때가 많았어요. 나는 할머니가 걱정됐어요.

아저씨랑 아주머니가 그런 할머니를 위해 주간 돌봄 센터에 보내드렸어요. 아저씨,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아들, 딸이에요. 주간 돌봄 센터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가는 유치원 같은 곳이래요. 그곳에 다니게 된 이후로 할머니 얼굴이 밝아지고 건강해졌답니다.

그래서 좋기도 하지만 싫기도 해요. 할머니 없이 종일 혼자 집에 있어야 하니까요. 할머니가 고무공 장난감을 꺼내놓고 가지만, 가지고 놀고 싶지 않아요. 간식이랑 밥이 앞에 놓여 있어도 왠지 먹고 싶지 않아요. 그저 방석 위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할 뿐이지요.

자다 깨다 하다 보면 어느새 깜깜해져요. 몇 시간이 지났을까요. 할머니 냄새와 기척이 느껴지면 저는 쏜살같이 일어나요. 현관으로 가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할머니를 맞이하지요. 꼬리가 떨어져 나갈 듯이 흔들면서요.

''혼자서 심심했지?''
할머니는 저를 안아주고 뽀뽀도 해줘요. 기분이 좋아진 저는 콩콩 뛰면서 할머니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요. 그러고는 그제야 밥도 먹고 간식도 먹고 시원하게 똥도 싼답니다. 이게 요즘 저의 일과예요.

할머니가 없는 집 안에 혼자 있는 게 심심하고 어떨 땐 무섭기까지 하지만,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참아야겠죠?

저는 할머니를 부축할 수도, 식사를 차려드릴 수도 없어요. 가끔 웃음 짓게 할 수 있을 뿐이지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많이 웃게 해드리고 싶어요.


''할머니, 사랑해요!''






엄마가 혼자 되시고 키우게 된 초롱이에요.  실제로 말할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하고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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