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왔는데, 몇 층이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지하 2층에 내려가 습관처럼 자동차 키를 눌렀다. '빽' 귀를 찌르는 내 차의 경적 소리가 어디에선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2층이 아니었네.' 싶어 3층으로 내려갔더니 소리가 오히려 더 멀어지는 듯했다.
다시 계단을 올라가며 연신 차 키를 눌러댔다. '빽! 빽!' 거리는 소리를 따라 주변을 살피다 보니, 내 차는 지하 1층 구석에 서 있었다. 그 크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차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난 내 차 경적 소리가 싫었다. "빽" 크고 날카로운 경적 소리는 마치 화를 내며 "비켜!"라고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렸다. 소리가 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휙 돌아보며 눈총을 쏘는 듯했고, 그럴 때면 나는 딴청 피며 그 자리를 피하곤 했다.
그렇게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늘 거슬렸던 소리가 언제부턴가 나를 구원하는 소리가 되었다. 아파트나 복잡한 마트에서 주차한 곳을 잘 잊어버리는 요즘에는 그 소리가 어찌나 반갑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같은 소리인데도, 내가 처한 상황과 마음의 여유가 달라지니 전혀 다르게 들리게 된 것이다.
수많은 강연 속의 지혜들도 이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설거지할 때마다 이어폰을 꽂고 강연을 듣는다. 강연자의 메시지는 변함이 없는데, 그 말을 듣는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 울림의 정도가 꽤 다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들이 예전에는 그저 ‘듣기 좋은 이야기’로 스쳐 지나가거나 식상하게 들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야?’ 싶었던 것이 어느 순간엔 가슴을 찌르는 깨달음으로 다가오는 경험. 아마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
“자신에게 집중하세요”
난 요즘 이 한마디에 꽂혀있다. 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말인데 왜 지금에 와서야 이렇게 강한 울림을 주는 걸까.
인생의 많은 것들이 이런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책 속의 한 문장도, 노래의 한 구절도, 가까운 사람의 한 마디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그저 표면적으로만 이해했던 문장이 어느 날 갑자기 깊이 공감되기도 하고, 가볍게 흘려들었던 노래 가사에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왜 진작 알지 못했을까?’하고 자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나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 메시지를 온전히 품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그때는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의 귀는 언제나 열려 있지만 마음의 문은 때로 굳게 닫혀 있다. 아무리 좋은 말도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냥 공기 속으로 흩어질 뿐이다. 내 안의 문이 살짝 열리고 그 틈으로 말이 들어온다면, 마침내 그 지혜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쳤다는 신호가 된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준비되어 있을 때, 그 말은 비로소 제 힘을 발휘한다. ‘이런 뜻이었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 순간이야말로 내 삶이 한 뼘 더 성장했음을 증명하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자동차 경적이 불쾌했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그 소리가 나를 도와주는 고마운 신호가 되었듯이, 우리 주변의 모든 소리와 이야기들이 또 다른 시간 속에서 새롭게 들리게 될 시간을 기대해 본다.
#마음#준비#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