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또 보자''라는 말은 위로이자 기도다

by 하루담은

7월에 미국에 사는 언니가 왔다. 엄마가 85세가 되던 해부터는 일 년에 한 번은 꼭 다녀간다.

언니가 엄마랑 같이 지내는 한 달여의 기간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11개월 동안 하지 못한 효도와 잔소리를 다 하고 가겠다는 듯한 언니. 그런 언니한테 어린아이처럼 짜증을 내는 엄마. 서로 아웅다웅하다가도 어느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웃음이 돌아오는, 이런 게 바로 모녀 사이의 오래된 방식이 아닐까 싶다.

한 달여의 시간이 훌쩍 지나고 언니가 돌아가는 날이었다.
''엄마. 나오지 마세요. 건강하게 잘 지내시고 내년에 또 올게요.''
''언제 또 보겠냐? 이번이 마지막이지.''
인사를 주고받는 언니와 엄마의 목소리에 울음이 묻어있었다.

1층으로 내려와서 언니랑 인사를 나누는데 아파트 베란다 창문을 열고 잘 가라며 손을 흔드는 엄마 모습이 보였다.
''들어가세요.''
손을 마주 흔들던 언니가 눈물을 닦으며 조카가 모는 차에 올라탔다.

실은 작년에도, 그전 해에도 떠나는 언니를 향해
'이번이 마지막이지'라고 엄마는 말했지만 그 말이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엄마 말씀이 이전과는 다르게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정말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엄마의 심정이, 떠나가는 언니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엄마가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고는 하지만, 엄마의 몸 상태가 조금씩 기울어가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100세 시대라 해도 구순이라는 나이는 결코 가볍지 않은 나이니까.

만약 엄마가 위독한 순간이 온다면 나는 금방 달려갈 수 있지만, 언니는 최소 16시간이 지나야 엄마를 볼 수 있다. 아무리 서둘러도 엄마는 이미 눈을 감으신 후일 수도 있다. 그걸 잘 알기에 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1년에 한 번은 엄마를 보러 오는 것이고 또 그만큼 헤어짐이 크게 다가올 것이리라.

''다음에 또 보자.''라는 흔한 말이 엄마에게는 위로이자 기도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떠난 후에도 한참 흐느끼는 엄마에게 애써 말했다.

''엄마. 내년에 또 언니 보면 돼요. 또 볼 수 있어요.''

나는 아직 엄마와의 이별을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 다가올 그 시간을 외면할 수도 없다. 엄마와 나누는 짧은 대화, 함께 먹는 소박한 한 끼, 그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한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엄마가 내년에도, 그다음 해에도 ''이번이 마지막이지''라는 말을 여전히 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그 말이 반복될수록 아직은 우리 곁에 계신다는 증거이니까.

언젠가 그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후에도 엄마와 나눈 보통의 하루들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반짝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