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콩국수가 먹고 싶네. 먹으러 갈래요?”
올여름처럼 태양이 맹렬하게 빛을 쏘아댄 적이 있었던가. 에어컨 없이 지낸다는 건 상상도 못 하고 잠깐 바깥에 나갔다 오기만 해도 시원한 먹거리를 찾게 된다.
문득 콩국수가 떠올랐다. 얼음을 동동 띄운 고소하고 걸쭉한 콩 국물. 그걸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졌다.
“조오치. 유진 국시집에 갈까?”
콩국수 먹으러 가자는 내 말에 남편이 곧장 답했다.
집 바로 앞에 있는 그 국시집을 말하는 거라는 건 알았지만, 뭔가 이상했다.
“거기 이름이 유진이라고? 아닌 것 같은데...”
아닌 건 분명했지만, 정확한 이름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예전부터 식당이든 사람이든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 한 번만 들으면 애써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에 남았다. 그래서 남편과 TV를 볼 때면, 나는 반강제로 ‘이름 해설가’가 되곤 했다.
“저 여자 주인공 이름이 뭐지?”
“저 옆에 서 있는 남자 이름이 뭐더라?”
쉴 새 없이 묻는 남편 때문에 드라마를 제대로 보지 못할 때도 많았다.
“이름 좀 모르고 보면 어디가 덧나요?”
버럭 소리치며 구박이라도 하려 들면, 남편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름을 조합해 낸다. 성 따로, 이름 따로. 어찌 그리도 엉뚱하게 끼워 맞추는지.
잘 짜인 코미디 프로그램은 내 유머 코드와 맞지 않았다. 눈썹을 일자로 그리거나 이 빠진 자리를 시커멓게 칠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장에 유행어를 남발하는 그런 방식은 내겐 억지스러웠다. 그런 걸 보며 깔깔 웃는 사람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겐 남편의 말실수가 훨씬 웃겼다. 많지도 않은 세 글자 이름 중에 꼭 한 글자씩은 틀리는 그 방식이, 그렇게나 웃길 수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실컷 웃어젖히곤 했고, 남편은 말했다.
“웃겨주는 남편 만나서 좋지! 남편 잘 만난 줄 알아!”
기가 막혀 웃는 거지만 어쨌든 또 한 번 웃게 된다.
하지만 올해 들어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게 잘 기억하던 이름도, 적당한 단어나 표현도 쉽게 떠오르지 않을 때가 나에게도 찾아왔다.
나는 남편과 다르다고, 나는 안 그럴 거라고 속으로 자만하고 있었나 보다. 남편을 보며 그렇게 웃어댄 게 미안해졌다.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라 여기면서도 왠지 서글펐다.
얼마 전부터 우리 부부는 두뇌에 좋다는 견과류를 챙겨 먹고 외국어 공부도 시작했다. 나는 일본어를, 남편은 영어에다 일본어까지 두 마리 토끼를 쫓고 있다.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조금은 더디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한국말도 잘 안 떠오르는데 외국어 공부를 하다니, 참 내.”
남편의 말에 또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씁쓸한 맛이 따라붙는다.
나는 웃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기억력#나이#두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