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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다보면 보인다 Sep 30. 2024

두부 예찬

담백함의 극치

작년 겨울부터 우리 집 냉장고에서 항상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있다. 어느 날엔 네모난 통에 담긴 채로 또 어느 날엔 길쭉한 비닐에 담긴 채로.
우유와 두유를 반반 섞어놓은 듯한 색상과 그 이름이 서로 닮아있다. 두부와 순두부.
생김새와 품고 있는 성격이 조금 다를 뿐 한 부모를 가진 형제다. 두부 형제는 식탁 위에서 우리 가족 건강을 위한 주요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다. 식단 관리를 시작한 아들 덕분이다.

말라 보인다는 학교 선배의 말에 자극받아서 헬스클럽에 등록한 아들은 턱걸이 운동기구까지 제 방으로 들여놓고는 발 디딜 틈도 없게 만들었다. 닭가슴살과 두부, 계란 같은 고단백 식품을 챙겨 먹으며 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몇 개월이 지났을까. 몸이 단단해지는 듯싶더니 말랐던 팔에 근육이 생기고 어깨도 넓어졌다. 바로 눈앞에서 달라진 변화를 실감하니 놀라웠다.

아들을 보며 감탄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나도 챙겨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운동이 제일 중요하겠지만 나이 들수록 단백질 섭취에 신경 써야 한다고 각종 매체에서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육류나 계란은 누린내 때문에, 우유는 소화가 잘되지 않아서, 생선류는 구울 때 비린내 때문에...
이런저런 이유로 거르고 나니 고단백 식품 중에 제일 만만한 게 바로 두부였다.

사실 두부는 내가 싫어하는 식품 중의 하나였다. 물컹물컹한 식감부터 맘에 들지 않았고 심심한 그 맛이 영 별로였다. 몸에 좋다는 건 알고 있지만 손이 가지 않는 먹거리였는데.
언제부턴가 자극적인 맛보다 담백한 맛에 점점 끌린다 싶더니. 이제야 진정한 두부의 맛을 알게 된 것일까? 물컹함이 아니라 부드러움이었고 심심함이 아니라 고소함이었다. 담백함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두부와 순두부는 콩에서 태어났다. 불린 콩을 갈아서 비지를 짜낸 후 가열한 콩물에 응고제를 첨가하여 물기를 빼어 굳힌 게 두부다. 콩물이 조금 덩어리 진 상태로 응고되었을 때 그대로 윗물과 함께 떠서 먹는 게 순두부다.
큰 네모로 와서 잘려도 웬만하면 네모 모양은 고수하려는 두부와는 달리 말랑말랑한 제 살을 어떻게 해도 좋다고 턱 맡기는 순두부. 물기를 많이 품고 있기에 그만큼 유(柔)한 성품이리라.

나는 네모 납작하게 썬 두부를 들기름에 부쳐서 양념간장에 찍어 먹는 걸 좋아한다. 노릇하게 부친 두부를 파 송송 썰어 넣고 식초를 넣어 새콤하게 만든 양념간장에 찍어 먹으면 어찌나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지. 밥도둑이 따로 없다.

냄비에 양파와 두부를 깔고 멸치육수에 양념장을 넣어 만든 두부조림은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다. 한 번에 거의 한 모 분량을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운다.

매콤한 게 당길 때는 순두부찌개를 끓인다. 뚝배기에 고추기름으로 양파를 볶다가 육수 넣고 숟가락으로 순두부를 뚝뚝 떠 넣어 끓이면 온 가족 한 끼 식사 뚝딱이다.

두부는 어떤 국이나 찌개에 들어가도 잘 어울리고 풍성함을 더해준다. 육수를 머금으면 맛이 조금은 화려해지지만, 본래의 고소함과 담백함을 잃지 않는다.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기 그지없다.

나무위키에 의하면 두부는 양질의 고단백 식품으로 혈압과 혈관 관리, 탈모 예방과 뇌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니 나이 들수록 더 친해져야 할 먹거리임이 틀림없다. 가성비도 최고인 데다 설령 이가 다 빠졌다 해도 잇몸으로 씹을 수 있을 만큼 부드러우니 이보다 좋을 순 없으리라.

오늘은 어떻게 조리해서 먹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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