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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의 황당한 죽음(1916)

by 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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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러시아 말기의 파계 수도자이자 예언자인 그리고리 라스푸틴(Grigori Rasputin)의 죽음은 1916년 러시아 제국에서 벌어진 가장 극적이고 논란 많은 사건 중 하나로, 그의 죽음 과정은 역사적으로 여러 소문과 과장이 섞여 있습니다. 라스푸틴은 니콜라이 2세 황제와 알렉산드라 황후의 신뢰를 받았던 신비로운 인물로, 황실 내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그의 죽음은 혁명 전야의 러시아에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야기를 낳고 있습니다.


라스푸틴의 암살 계획은 왕실 내부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었습니다. 그들은 라스푸틴이 황실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력을 우려하여 제거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히, 펠릭스 유수포프 공작, 드미트리 파블로비치 대공, 블라디미르 푸리시케비치 의원 등이 암살 계획에 가담했습니다.


1916년 12월 29일 밤, 라스푸틴은 유수포프 공작의 저택으로 초대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독이 든 케이크와 포도주를 제공받았지만, 예상과 달리 독은 그에게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에 암살자들은 당황했고, 유수포프 공작은 라스푸틴을 총으로 쏘기로 결정했습니다. 총격을 받은 라스푸틴은 쓰러졌으나, 놀랍게도 다시 일어나 도망치려 했습니다.


라스푸틴이 다시 움직이자 암살자들은 그를 다시 붙잡아 총격을 가했고, 이후 곤봉으로 그를 공격하여 결국 그를 제압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공격으로도 라스푸틴은 완전히 죽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그를 모스크바강으로 던져 익사시키기로 했습니다.


라스푸틴의 시신은 나중에 강에서 발견되었고, 부검 결과 익사가 사인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총격과 물리적 폭행을 견뎌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가 얼마나 강인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죽음 과정은 라스푸틴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더욱 강화시키고, 그의 죽음에 대한 전설을 낳았습니다.


라스푸틴의 죽음은 러시아 황실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의 죽음은 혁명이 임박한 시점에서 발생하였고, 이는 황실의 불안정성을 더욱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라스푸틴의 죽음은 혁명 이후에도 많은 논란과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으며, 그의 영향력과 최후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전설을 낳았습니다.


결론적으로, 라스푸틴의 죽음은 그 자체로 하나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여러 차례의 암살 시도와 최후의 익사로 인한 사망은 그의 신비로운 이미지와 강인함을 보여주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러시아 황실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긴장을 반영하는 중요한 일화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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