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이 Sep 03. 2022

나는 매일 하굿둑을 건너 출근한다

2021년 4월 21일의 기록

나는 매일 하굿둑을 건너 출근한다. 이력서를 제출하기 위해 처음으로 하굿둑을 건너던 날, 눈앞에 펼쳐진 반짝이던 낙동강의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정장을 꺼내 입고 덜덜 떨며 최종 면접을 보고 돌아오던 길에도 하굿둑을 건넜다. 드넓은 바다 너머로 저녁놀이 지는 장면을 보며 버스 안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 매일 강을 보며 출근하고 바다를 보며 퇴근할 수 있다면 꽤 낭만적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뒤 합격 통보 전화를 받았고, 나는 기간제 계약직 노동자가 되었다. 기간제지만, 계약직이지만, 어쨌든 매달 월급을 받는 어엿한 노동자.


어느덧 3년 차에 접어든 매일 같은 출퇴근길. 이제는 하굿둑을 건너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 되어 버렸고, 강과 바다를 가로지르며 달린다는 감동보다 아, 오늘은 제발 앉을자리 하나만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더 커졌다.


하굿둑을 넘어 을숙도를 지나 강서구로 진입하는 찰나에 저 멀리 보이는 강서 30리 벚꽃길. 빼곡하게 우거진 벚꽃나무의 행렬은 마치 줄지어 선 솜사탕 같다. 몽글몽글하고 후 불면 날아갈 듯, 마음을 동하게 하는 벚꽃. 올해도 코로나 때문에 저 길을 걸을 수 없겠지, 나는 아쉬워한다. 그리고 문득 너를 떠올린다. 너도 이걸 보면 참 좋아했을 텐데. 언니, 진짜 너무 예뻐요, 순수하게 감탄하며 사진을 마구 찍었을 텐데. 그리고 어김없이 그 사진은 너의 카톡 프사가 되었겠지.


최근 부쩍 네 생각을 많이 한다. 이렇게 날씨가 좋은 요즘 같은 때, 이맘때쯤 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 시작해서일까. 서로 다른 학부를 전공하고 교육대학원에 와 만나게 된 너와 나는 대학원 수업과 별개로 학부생들과 교직 과목을 들어야 하는 동지였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대학원에 진학한 나, 그리고 학부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원에 들어온 20대 초반의 너. 나는 너의 그 계획성과 야무짐을 본받고 싶었고 너는 곧 서른을 앞둔 나의 나이를 부러워했다.


학교가 장전동에 있던 탓에 우리는 온천천을 자주 걸었다. 온천천의 벚꽃도 함께 보고, 온천천을 따라 즐비한 카페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언젠가는 맛있는 마카롱을 먹기 위해 남산동까지 간 적도 있었다. 온천천의 끝이 이 근처 어딘 것 같은데, 마카롱을 사들고 지도를 보며 우리는 온천천의 끝으로 거슬러, 거슬러 한참을 걸어 올라갔었다. 그곳에는 장전동 근처에서 보던 유속이 느리고 얕았던 온천천의 모습과는 다른, 거세게 흐르는 온천천이 있었다. 우리가 친구로 지내던 3년 남짓한 시간 동안 온천천은 여러 얼굴을 보여주었다. 어느 날은 말끔하게 단장된 산책로였다가 또 어느 날은 비릿하고 역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고, 여름 장마를 지내고 나면 범람으로 인해 뭍으로 올라온 잡초와 쓰레기로 엉망이 되었다. 온천천이 맑은 물을 유지하며 흐를 수 있도록 낙동강의 물을 매일 가져다 부었다는 사실은 훨씬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온천천을 걸으면서, 때로는 자전거를 타고 누비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라는 실개천과 너라는 개울이 만나 하나의 강이 되어 신나게 흘렀다. 지금 돌이켜보면 너는 그때 이미 깊은 강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너라는 강에 그저 올라탄 것뿐일지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나는 기간제 교사 원서를 넣기 시작했다. 운 좋게 합격한 곳이 있었고, 나는 졸업하던 해에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너는 고시생이 되었다. 매일같이 만나던 우리는 이제 매일 만날 수 없었고, 함께 하자던 스터디도 한 달에 한 번이나 겨우 할까 말까였다. 그래도, 그때만 해도 우리는 꾸준히 만났다. 일은 힘들지만 아이들로부터 이렇게 큰 에너지를 받을 줄은 몰랐다고, 생각보다 할 만하다고, 꼭 현직에서 함께 하자고 우리는 만날 때마다 다짐했다.


이듬해, 너는 임용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취준생, 고시생이라는 지긋지긋한 옷을 벗고 넘실대는 저 푸른 바다로 헤엄쳐 간 것이다. 너의 합격 소식에 나는 자다가도 기분이 좋았다. 너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나 그래도 1년 짬바 있잖아, 모르는 거 있음 언제든 물어봐. 고작 1년 일했을 뿐이지만 뒤죽박죽 어느새 이만큼이나 쌓인 자료들도 나는 너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그런데 너는 그걸 열어 봤을까? 이제 나는 잘 모르겠다.


구미로 발령받은 너와 나는 당연히 자주 만나지 못했고, 네가 합격한 시점에 스터디라는 핑계도 사라져 버렸다. 기약 없이 언제 한번 보자, 라는 메시지만 주고받다 어느새 너와 나는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아무렇지 않은 척 너에게 메시지를 보내볼까 가끔 고민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건 먼 훗날이 되리라고 예감한다. 나는 이제 하굿둑에 가로막혀 고여 버린 강물이 되었고, 너는 바다가 되었으니까. 너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날은 나도 바다가 된 어느 날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막연히 생각한다.


그런 날이 오긴 올까?


내가 저 하굿둑을 넘어 너를 따라 바다로 바다로 헤엄쳐 갈 수 있을까?


퇴근길 바다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너를 생각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커피밭 사람들을 읽으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