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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이 Sep 16. 2022

인내의 레진

취미일기, 네 번째 취미 ~ 레진 아트 ~

자타가 공인하는 취미러인 나에게도 장벽이 높은 취미가 있었다. 바로 레진 공예. 레진 아트라고도 불리는 이 취미는 레진이라는 일종의 플라스틱 물질을 이용해서 다양한 작품을 만드는 활동을 가리킨다. 레진은 만들 수 있는 작품의 형태가 무궁무진하여 공예인들에게 없어선 안 되는 필수 요소로 오래전부터 사랑받아온 공예 재료이기도 하다. 그렇다, 치아 레진 치료할 때 그 레진이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활동을 쉽게 구경할 수 있다. 요즘 유행하는 레진 작품들은 하나같이 조그맣고 반짝여서 소장 욕구를 자극한다. 작가의 유명세나 작품의 난이도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지는 작품 치고는 저렴한 작품들이 시중에 많이 판매되고 있다. 하나 사볼까, 아니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는데 내가 하나 만들어볼까, 정말 오랜 시간을 고민하게 했던 레진 아트.



레진 아트의 시작은 돈, 그리고 시간이다. 초기에 투자해야 하는 자본의 규모가 큰 편이고 내가 경험한 다른 어떤 취미보다도 시간이 많이 들었다. 일단 레진이 필요하다. 용량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당연하게도 비쌀수록 좋다. 레진과 더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몰드. 액체 상태의 레진을 틀에 부어 굳히고 모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몰드가 있어야 한다. 일부 작가들은 이 몰드를 직접 만들기도 하지만 몰드 제작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고수들의 영역이다. 플라스틱은 녹아 버리므로 쓸 수 없고 열에 잘 견디는 실리콘 재질이어야 한다. 그리고 레진 교반(섞기)을 위한 용기와 용액을 젓기 위한 막대가 필요하다. 레진은 액체 상태인 주제와 경화제가 섞이면서 열을 내며 굳어지는데 이 과정에서 인체에 유해한 유기 증기가 발생한다고 하므로 장갑과 마스크, 보안경까지 갖추는 것이 좋다. 꼭 필요한 것만 해도 이 정도다. 예쁜 색을 내기 위한 조색제, 반짝임을 더하기 위한 글리터, 장식을 위한 스티커 등은 선택이지만 부자재는 무조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나의 레진 상자


여기까지 필수 재료들을  갖추었다면 이제 레진을 교반  차례다. 주제와 경화제로 구성된 2액형 레진이 주로 쓰이는데 2액형 레진에도 부피 비율로 교반 하는 종류의 레진이 있고, 무게 비율로 교반 하는 레진이 있다. 정해진 비율을 제대로 맞추지 않으면 레진이 굳지 않는다. 여기서    장벽이다. 나는 뭐든지 대충대충 하기 때문에,  비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깨달았다. 아무리 기다려도 레진이 굳지 않고 끈적끈적 물렁할 때의  빡침이란. 그걸 몰드에서 억지로 꺼내어 버릴 때의  죄책감이란.


교반한 레진에 조색제를 넣어 색을 내고, 글리터까지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면 몰드에 부어 굳힌다. 기본적으로 레진은 굳으면서 열을 내기 때문에 실리콘 몰드도 영구히 사용할 수는 없다고 하나, 판매할 상품이 아니므로 나는 그냥 해지고 구멍 날 때까지 쓴다. 굳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3시간에서 48시간, 최대 72시간까지도 걸린다. 이 시간이 가장 고되고 힘들다.


굳히는 과정에서 먼지나 이물질이 들어가면 끝장이다


이렇게 인내의 시간을 거쳐 몰드에서 굳어진 레진을 꺼내면, 그게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다. 정말 너무 신기하다. 잘 굳어진 레진을 탈형할 때의 쾌감도 끝내준다. 오죽하면 탈형(디몰딩)하는 장면만 모아 놓은 영상이 유행할 정도다. 모양을 갖춘 레진 작품은 스티커나 비즈를 이용해 꾸며주면 된다. 꾸미기 작업이 가장 공이 많이 들어가지만 재밌다. 그동안 목적 없이 모아 둔 스티커들을 여한 없이 쓸 수 있다.


매번 엉망진창이 되고 마는 작업


꾸미기까지 끝났다면 이제 도밍(Doming)을 해 줄 차례다. 도밍이란 작품의 표면에 다시 한번 투명한 레진을 부어 마무리 코팅하는 작업을 말한다. 통통하고 부피감 있게 코팅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 도밍이라고 부른다. 이 단계도 꽤 까다롭다. 욕심내서 부피감을 주려다 주변으로 다 흘러넘쳐 버리기 일쑤다. 다 만들어놓고 마무리 단계에서 삐끗하면 그냥 망하는 거다.


처음 만들었던 것들


누가 봐도 멋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얻기 위해선 인내와 고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단계에서도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 장인 정신이 필요한 것이다. 이 정도는 대충 해도 되겠지, 게으른 마음을 먹었다간 반드시 후회한다. 내가 어느 단계에서 마음이 풀어졌는지, 내가 마음을 다 한 결과물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사실 남이 보면 잘 모른다. 실제로 주변에 선물하면 -앞에서 대놓고 지적할 수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들 반응이 좋다. 하지만 나는 안다. 결과물이 가진 흠결은 오직 나만 알아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나만이 그 흠결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나는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절대로 속일 수 없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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